04월호 신진연구자 “톡”

세포의 죽음 방식에서 찾는 생명의 열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대사제어연구센터 이은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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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만큼 웰다잉이 중요한 시대이다. 세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몸에서는 매일 500억 개의 세포가 사멸하고 또 그만큼 새로운 세포가 탄생한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다시 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사는 것이 좋고, 죽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적절하게 잘 살고 잘 죽는 균형이 중요할 뿐! 세포가 이상증식하면 암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살아야 할 세포가 죽으면 장기 손상 등 다양한 질환을 야기한다. 생명공학자 이은우 박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포사멸 과정에서의 대사경로와 신호전달 경로를 이해함으로써,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나선 젊은 과학자이다.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세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세포사멸과 대사경로에 담긴 생노병사의 비밀

연구주제가 세포의 죽음이에요. 사뭇 철학적입니다.

세포는 매 순간 죽을지 살지, 죽는다면 어떻게 죽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요. 2000년대 전까지는 세포가 스스로 죽는 ‘세포자살’은 아폽토시스(Apoptosis:세포자연사)로 설명했어요. 반대로 상처와 같은 외부 요인으로 야기되는 수동적 세포사멸은 네크로시스(Necrosis:세포괴사)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무렵 네크로시스 또한 세포가 특정 환경에 반응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세포자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관련 증거도 속속 밝혀졌어요. 이러한 방식의 세포사멸은 예정괴사(programmed necrosis)라 불립니다. 예를 들어 병원균이 침범했을 때 면역세포가 잡아먹으면 아폽토시스로 염증반응 없이 죽지만, 네크롭토시스(necroptosis)는 세포사멸을 유도해 염증반응을 일으켜 병원균에 대응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네크롭토시스는 패혈증과 같이 개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도 있어요. 이 같은 원리를 항암치료에 이용할 수도 있죠. 따라서 세포가 어떤 방법으로 죽고, 얼마만큼의 강도로 세포사멸을 유도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세포사멸 과정의 다양한 신호전달 경로와 대사경로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질환예방과 치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암은 세포의 이상증식으로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인데요. 세포사멸과정과 대사경로에서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암 치료는 크게 외과적인 수술과 약물을 이용한 항암치료로 진행됩니다. 수술이 불가능한 암을 비롯해 수술 후에도 재발방지를 위한 항암치료가 필요해요. 또한 항암치료는 암세포분열을 억제하는 표준항암제와 특정 암의 성장인자를 타깃으로 하는 표적항암제 치료로 나뉘죠. 하지만 항암제에 선천적저항성을 갖고 있는 암과 한 번 치료 후 재발하여 후천적저항성을 가지는 암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항암제가 듣지 않는 이들 내성암은 대부분이 악성암이란 점입니다. 많은 연구진이 내성암 치료법을 찾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면역항암제이고, 다른 한 축은 암대사저해제입니다.

암은 위암, 간암, 폐암 등 종류별 특성과 치료법이 다르지만, 무한증식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성장과 분열을 위해 포도당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질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죠. 암이 빠르게 증식해 해당 기관이 저산소, 저영양 상태의 극한환경에 이르러도 암세포는 활발히 대사활동을 하며 증식하고, 전이합니다. 이 같은 암의 대사과정을 이해하고, 에너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대사약물은 새로운 항암치료법입니다. 표준항암제, 면역항암제, 대사항암제 모두 궁극적으로 세포사멸을 유도하기 때문에, 저는 다양한 항암치료법과 세포사멸의 관계를 이해하여,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완벽하게 죽이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을 통해 대사경로 및 신호전달 경로 발굴을 통한 페롭토시스 제어전략 개발에도 속도를 내셨어요.

지난해 연구재단 신진연구자사업을 통해 페롭토시스(ferroptosis) 제어전략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페롭토시스는 2012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새로운 세포사멸 방식이에요.

세포 내 세포막을 이루는 인지질 분자는 쉽게 과산화가 되는데, 여기에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e species)가 발생하게 되면서 결국 세포가 사멸하는 메커니즘인데, 이 과정에 2가 철 이온(ferrous iron, Fe2+)이 필수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페롭토시스라불립니다. 발표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페롭토시스가 항암제 내성암에 더 민감하다는 논문이 네이처(Nature) 지에 두 편 연속 발표되며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회참석전 벨기에로 초대해주신 피터 교수님 and 매튜교수님 파리에서 만난 젊은 연구자들

이를 통해 새로운 페롭토시스와 여러 질환의 상관관계가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작용기전이나 조절기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페롭토시스는 아직 뚜렷한 분자 마커(mRNA나 단백질)가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대사물질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최근에 위암세포주의 분자타입에 따라서 페롭토시스의 반응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분자타입별 유전자 발현 차이를 바탕으로 페롭토시스와 관련된 대사경로나 신호전달 경로를 발굴하고, 조절기전을 확립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의 세포사멸 연구 경험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사체 전문가의 경험을 더해 페롭토시스 제어전략을 찾고자 합니다. 발굴된 조절기전을 바탕으로 페롭토시스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궁극적으로 항암제나 심혈관질환 치료법 개발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Scott J. Dixon, 2012년 ferroptosis 첫 논문의 1저자 (현재 스탠퍼트 교수) Guido Kroemer 교수님

기초연구와 항암치료 현장을 잇는 중개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석사과정을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담도암에 걸리셨고, 몇 달이 안 돼 돌아가셨어요. 학부연구생 때부터 암억제유전자 p53을 연구했지만, 당시 병원 치료는 암 유전자 타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어요. 반응률이 5% 미만임을 알면서도 표준항암제만 썼죠. 실험실의 기초연구와 임상현장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효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연구자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어요.

사실 그때는 당당하고 씩씩했을 때라 제가 기초연구를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초 배경 없이 임상연구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후 박사후과정까지 달려오며 세포사멸을 이용한 질환치료법을 찾기보다 세포사멸의 조절기전을 이해하는 연구에 더 매진했던 것 같아요. 생명연에 입사하며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한 중개연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연구성과가 과학자 개인의 만족이나 유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더 커졌고요. 기초연구부터 항암치료에 필요한 중개연구를 목표로 환자의 항암제 반응성을 예측하고 적합항암제를 찾아내는 환자맞춤형 치료, 정밀의료에 관심을 갖고 세포사멸을 이용한 새로운 항암치료약물을 찾고 있습니다.

출연연은 전문가 집단인 만큼 연구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과학자로서 출연연 연구원은 대학 교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요. 개인 연구실이 아닌 센터나 연구단에 소속돼 있고요. 그 안에 세부 팀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대학보다는 연구자 개인의 독립성은 낮지만 입사와 동시에 세팅된 실험실과 다양한 연구장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생명과학 분야 전반의 연구자와 함께 협업하고 공동연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생명연은 국내 생명공학연구의 허브로 대학을 비롯해 유관 기관, 나아가 산업체와의 협력연구도 활발합니다. 신진연구사업을 연세대 의대를 비롯해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성균관대 약대 등 우수한 연구그룹과 협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죠. 작년에는 구조생물학 분야의 김승준 박사님, 구본수 박사님 팀과 협업해 Plos Biology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지금은 저희 연구소에 계신 여러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암대사와 페롭토시스를 연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생명연 외 다른 출연연 신진연구자들 간의 공동연구를 통한 도전적인 연구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주관하는 신진연구자들의 과제발굴사업의 연구책임자로서 주변 출연연 신진연구자들과 함께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연구 결과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연구자로 살아가기

생명공학, 그중에서도 세포사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까지 암기가 많은 생물보다 논리와 수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어요. 수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수능점수가 안 좋았어요.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유망한 분야라며 생명공학을 추천해주셨죠.(웃음) 1학년 때만해도 적성에 안 맞아 방황했는데 2학년 때 유기화학과 생화학 수업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수업이 끝나면 혼자 복습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교수님을 찾아가곤 했어요. 학부연구생으로 분자생물학 실험실에 지원했고요. 그때 만난 분이 학부부터 박사후과정까지 지도해 주신 송재환 교수님이세요. 박사과정 때 암억제단백질인 p53의 유비퀴틴화를 연구하면서, 세포사멸에 관심을 가졌어요. 세포 외부의 요인에 의한 외인성 세포사멸(extrinsic apoptosis)을 연구하던 중 네크롭토시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박사후과정에서 약 5년간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독립된 연구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생명연에 입사하고 페롭토시스와 대사질환을 연계한 연구테마를 정하기까지 적잖은 고민을 했어요. 한국에서는 제자가 지도교수님과 동일 주제로 연구하는 걸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같은 분야에서 협력하면서도 독립적인 연구테마를 찾기란 쉬운 과정은 아니에요. 생명연 입사 초기 지방대사에서의 유비퀴틴화 조절과 심혈관 질환을 연구했어요. 그러던 중에 제 전공과 대사연구를 연계한 페롭토시스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어요.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페롭토시스는 작년에만 네이처지에 관련 논문이 5편 소개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이 폭등하고 있어요. 시작은 빠르지 않지만 페롭토시스와 지질대사 관계를 연구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초연구가 응용연구로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우리나라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구를 했더라도 결과가 안 좋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결과중심의 연구 풍토가 만연해 동료간 경쟁과 스트레스도 큰 편이고요. 박사후과정 중 4개월간 세포사멸 분야의 권위자 피터 반데나빌레(Peter Vandenabeele) 교수님이 있는 벨기에 겐트대학에 방문연구원으로 다녀온 적이 있어요.

학회에 초청으로 오신 피터 교수님이 벨기에에서 초콜렛을 선물로 사 오심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세포사멸학회에 연자로 발표

피터 교수님은 네크롭토시스가 인정받지 못하던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한우물을 파신 분인데요. 현대 생물학에서 기존 가설에 배치하는 연구를 밀고 나가는 부담이 적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논문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네거티브한 데이터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연구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피터 교수님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반적인 연구실이 성과보다는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고, 연구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어요. 이후 저도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사진 Marcus Conrad 교수님 (Ferroptosis 대가)와 사진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아직 어린 마음이 있어서, 제가 수행한 연구가 좋은 논문으로 발표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학회에서 발표할 때 다른 연구자들에게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면, 이제는 제 연구가 다른 분들의 연구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돼요. 더불어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은 다른 연구자들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요. 제 연구결과가 기반이 되어 유의미한 임상결과를 얻고, 신약개발의 단초가 되면 좋겠지만, 제가 발견한 지식이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일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된 일입니다.

연구자의 길을 준비하는 제자들, 또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저도 아직 신진이지만, 연구의 즐거움을 끝까지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에서는 당장의 성과가 경력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은 부담에, 같은 랩 안에서도 경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점점 연구의 범위는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같은 분야는 물론 이웃 분야 연구자들과의 교류도 협력연구도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연구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협력도 연구도 효율적이고 즐겁게 할 수 있어요.

대통령Post-Doc펠로우십부터 신진연구사업에 이르기까지 연구재단과 인연이 깊습니다. 신진연구자에게 연구재단은 어떤 의미인가요?

연구재단은 신진연구자가 실질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원해주는 후원자와 같아요. 연구비가 없는 연구자는 독립적인 연구 수행이 어렵습니다. 저는 박사후연구원 때, 대통령Post-Doc펠로우십에 선정돼 지도교수님 배려 하에 연구책임자로서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세포사멸 관련 학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관련 분야의 대가부터 신진까지 다양한 연구자들과 직접 교류하고, 벨기에에 4개월간 방문연구원으로 다녀올 기회도 이때 주어졌고요. 연구자로서 독립할 수 있는 발판과 같았죠. 그렇다고 쉽기만 하진 않았어요. 지금 수행하는 신진연구과제도 3수 끝에 수혜를 받았거든요. 이제 그 발판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벨기에에서 열리는 TNF학회 벨기에 연구실 앞 흔한 맥주파티

연구 신호등

추천하는 연구자의 마인드는?

생명의 신비에 경이감을 갖고, 그것을 찾아내 지식을 나누는 것, 즉 연구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중요해요. 더불어 가설은 소설과 같아요. 가설을 짜는 것은 재미있지만, 사실 가설은 틀릴 확률이 훨씬 더 높아요. 실험결과 가설이 틀렸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며 연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좌절했을 때 극복법은?

제가 생각하는 좌절은 연구성과가 생각처럼 안 나 올 때인데요. 대부분 욕심이 과했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기도로 마음을 추스르거나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하며 풀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진짜 해결하기 위해 욕심은 내려놓되, 다양한 논문을 읽고, 생각하고, 다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며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피해야 하는 습관은?

지나친 욕심과 그로 인한 내부 경쟁을 피하세요.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융합의 시대입니다. 연구실 동료와 또 주변의 연구자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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