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호 스페셜 PLUS

건강한 학술연구 토양 구축의 첫 걸음,
학술지평가 인증제

한국연구재단 학술총괄실장 권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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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학술연구 토양 구축의 첫 걸음, 학술지평가 인증제 한국연구재단 학술총괄실장 권기환

07 The leader's message.

연구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종종 ‘즐겁고 보람된 순간이 언제인지’ 묻곤 한다. 십중팔구 대답은 하나다.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고 학회에서 동료 연구자들과 소통하는 순간을 꼽는다. 자신의 연구가 학술 커뮤니티에서 인정받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 자체로도 보람이며, 이를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연구자의 소명이자 긍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학술지는 연구자가 이뤄낸 학문적 성취와 결과물을 오롯이 세상에 보여주는 창구이기에 학술지평가의 전문성과 운용의 투명성은 건강한 학술연구 생태계 조성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보다 건강한 학술연구 토양 구축이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학술지평가 재인증 제도를 도입하였다. 학계의 자율성을 담보하며 학술지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평가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최근 주요 이슈 중 하나인 학술연구 윤리문화 조성에도 일조하리란 기대이다.

“국내 연구 능력 낙제점...”, “우리나라 연구 능력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처져...”, “국내 교수들의 연구 실적 형편없어...”, “전체적인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연구에 보다 획기적인 투자 대책을 마련해야...” 오래전 일이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언론 지면에는 우리의 학문 수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쓴소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한국 대학의 빈약한 연구기능과 연구투자가 한국의 선진국 진입에 중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말은 1996년 OECD 교육위원회의 한국교육 종합평가 지적사항으로 당시 R&D예산 증액 논리로도 많이 인용되었으며, 학술지평가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낙후된 국내 학문 수준 향상과 국내학술지에 대한 질적 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1998년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지평가제도가 태동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학술지가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각 학문분야의 연구자들과 연구재단(舊 학술진흥재단)이 함께 만든 제도였다.

하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학술지평가제도는 학술지가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순수한 도구로서 기능하기보다 과제 평가 시 객관성을 부여하는 형식적 도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또다시 비판을 받았다.

정·관·학계는 한목소리로 학술지평가가 초심을 잃었으며, 수준 미달 학술지의 무분별한 증가를 종용한다고 비판하였다. 실제 학술지평가제도가 폐지되던 무렵 등재지 수는 2,121종에 달했다. 이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8년 56종보다 약 38배가 증가한 수치다. 결국 2012년 학술지평가제도는 운영 15년 만에 폐지가 결정되었다. 학술지의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연결지 못하고 운용의 내실을 도모하지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막상 학술지평가제도 폐지가 결정되자 ‘객관성 부여’ 같은 제도의 순기능이 주목받았고, 학술지 체계와 형식 확립에 기여한 공도 모두가 인정했다. 결국 학계를 중심으로 학술지평가를 다시 재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고, 2013년 학술지평가는 다시 재개됐다.

재단은 우리나라가 1998년 학술지평가를 시작한 이래 학술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혁신적 제도 개선을 모색해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학술지평가제도에 관한 학계의 주요 비판은 학문별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 평가기준의 적용, 학술지의 질보다는 수치 중심의 계량평가, 그리고 학술지 편집의 자율성 훼손에 있다.

새로 시행하는 재인증제도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을 적극 개선하고, 학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평가구조와 평가항목을 대폭 개선하였다. 『학술지평가 재인증제도 기본계획』은 전체 학회대상 설문조사와 각 학문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회의 그리고 학술지발전위원회 최종심의를 거쳐 최종 수립되었다.

개선 요지는 학술지 등재제도가 학술지의 역량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등재 인증을 철저히 하되, 엄정한 검증을 통과한 학술지는 평가주기를 기존의 3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여 믿고 맡기자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가지표는 핵심적인 지표 위주로 평가항목을 간소화하였고, 학술단체의 일탈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지표는 기준을 완화하였다. 그리고 학술지 운영상의 부정행위와 부실학술지 난립을 근절하기 위해 연구윤리 평가항목을 강화하였다.

‘재단의 행정편의를 위해 학계 사정은 무시한다’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일례로 학회가 논문 무료공개를 희망하더라도 민간업체와의 잔여 계약이 남은 경우 학술지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문원문 무상제공 전환약속 의향서’ 제출이라는 구제책을 마련하였다. 학회가 원문공개 의향을 표명할 시 무상공개에 준하는 점수를 부여하여 보다 많은 학회를 논문 무료공개에 동참시키고, 나아가 국내 학술지의 원문공개 혜택을 보다 많은 연구자들과 나누고자 하였다. 학술지평가를 학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문도 반영하였다.

연구자가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비옥한 학술연구 토양 조성을 위한 힘찬 발걸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재단은 앞으로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학술지평가제도 운영을 위해 학계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다. 학계도 새 옷을 입은 학술지평가 사업이 올바르고 신뢰받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우리나라의 학술연구 생태계는 더욱 건강해 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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