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호 스페셜 PLUS

정근모 박사에게 듣는
집단연구지원사업의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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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연구센터는 장기적·안정적인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선도 과학자 그룹을 육성하고, 새로운 기초과학 지식과 원천기술 확보에 기여하고자 각 대학의 우수 연구인력을 분야별로 조직·체계화해 집중 지원하는 대규모 기초연구지원사업입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해, 오랜 세월 걸어온 길을 웹진 8월~12월에 걸쳐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사업 탄생의 역사적인 순간과 그 의의를 역대 센터장들에게 직접 들어보고,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수많은 우수성과와 과학계가 꿈꾸는 미래 선도연구센터의 모습을 조망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일할 때 과학기술센터(STC) 사업을 지켜봤는데, 그때 규모나 지원하는 방식을 보면서 한국에 이런 사업을 만들면 과학기술에 도움이 되겠다고 싶었거든요. 마침 귀국 후에 이런 문제를 연구해달라고 하니까 반가웠죠.

출연연구소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져 대학의 연구기능에는 큰 기대가 없던 시절, 정근모 박사는 최순달 한국과학재단(KOSEF) 이사장으로부터 한가지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국 대학의 기초연구능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달라는 겁니다. 이렇게 척박했던 국내 기초연구 토양에 한줄기 단비처럼 등장한 우수연구센터 육성사업, 그 탄생의 순간을 정근모 박사에게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대학의 연구기능을 깨운 첫 순간

안녕하세요 박사님. 집단연구지원사업의 첫 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 국내연구는 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대학의 연구기능에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우수 인력이 모인 대학의 연구기능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획기적인 집단연구지원사업 모형을 구상하며 연구보고서를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순달 이사장님이 당시 한국과학원(KAIS) 교수로 부임하면서 제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게 됐는데요. 보고서의 내용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죠. 그렇게 한국과학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던 기금을 가지고,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한 우수연구센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의 연구기능을 깨운 역사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학에서 연구를 한다’는 게 당시엔 무척 생소했을 텐데요. 반응은 어땠나요?

1989년, 한국과학재단의 우수연구센터 지원사업 내용은 이공계 대학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기초과학 연구진흥을 목표로 한 과학연구센터(SRC)와 산학협동연구의 핵심체로 공학연구센터(ERC)에 선정되면 최대 9년간 매년 10억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 때문이었죠. 단, 교수들 간에 협동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5개 대학, 20명 이상이 참여하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전의 개인중심 연구에서 탈피하기 위한 조치였는데요. 돌이켜 보니 그 해 여름이 한국 이공계 대학의 과학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과학연구센터(SRC)와 공학연구센터(ERC)로 나눠서 각 분야별로 새로운 연구과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교수들이 여름방학을 포기하고 서로 만나기 시작했을 정도였죠.
우수연구센터 선정 토론 평가

위기를 돌파한 결정적인 순간

기반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우수연구센터 사업공모는 잘 진행됐지만 자금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재단의 자체 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조순 경제부총리를 찾아가 호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경제부총리 앞에서 열정적으로 우수연구센터 사업의 필요성을 브리핑 했어요. 그러자 조순 경제부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이런 사업제안서라면 필요한 예산을 특별지원하겠다고 말이죠. 사업 설계는 제가 했지만 우수연구센터 사업진행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분은 바로 조순 경제부총리 입니다. 단기간의 연구 지원만으로는 대학의 연구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없고,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없으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을 격상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1990년, 144개의 지원서가 준비됐고 치열한 경쟁 끝에 총 13개(SRC 6, ERC 7)의 우수연구센터가 탄생했습니다.

이 사업의 방향과 체계는 어떻게 확립해나갔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학교 우수연구센터 개소식
당시 국내연구는 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대학의 연구기능에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우수 인력이 모인 대학의 연구기능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획기적인 집단연구지원사업 모형을 구상하며 연구보고서를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순달 이사장님이 당시 한국과학원(KAIS) 교수로 부임하면서 제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게 됐는데요. 보고서의 내용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죠. 그렇게 한국과학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던 기금을 가지고,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한 우수연구센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의 연구기능을 깨운 역사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도 과거에는 기술직업학교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벨상이 시작됐고 전세계 과학발전도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죠. 그때 MIT가 물리, 수학 등 기초과학을 대폭 도입하면서 교육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초공학(Engineering Science)이 생겨나고 MIT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대학의 연구역량을 강조하면서 새 시대가 열린 거죠.

새 시대를 고민해야 할 순간

이 대규모 기초연구지원사업의 설계자로서 30주년을 맞은 소감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굉장히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대학 연구 분위기를 살리지 않으면 한국과학이 조기에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대학의 교육과 연구기능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수연구센터 사업으로 대학의 연구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젊고 유능한 인력을 키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한국과학재단이 지금의 건물로 이사한 것도 그때쯤이었어요.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앞으로 선도연구센터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수연구센터 소장 간담회 생물공정 연구센터 6년차 중간평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을 많이 양성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시대가 시작되길 바랍니다. 이제는 논문 숫자가 아니라 개방된 마음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육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야에 따라 천 편의 논문보다 한 편의 논문이 더 가치 있을 수 있거든요. 그걸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혁신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기계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는 신축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한 평생 과학자로, 때로는 미래를 내다보는 과학기술행정가로서 기초연구 강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정근모 박사.
그의 바람처럼 30년 전 이공계 대학에 불었던 혁신적인 변화가 오늘날 다시 일어나길 기대해봅니다.

정근모 박사

  • - 前 과학기술처 장관
  • - 前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 - 前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 - 前 명지대학교 총장
  • - 現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국제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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