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호 포커스 人

위기를 기회 삼아
글로벌 원천기술 확보한다

한국연구재단 소재·부품단 이영국 단장(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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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사태 발발 당시 많은 이들은 우리나라가 급소를 찔렸다고 분석했습니다. 주요 수출규제 품목들이 한국의 주력산업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해 뒤인 지금, 국내외의 평가는 당시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급선을 다변화하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한국이 내친 김에 구조적으로 취약했던 관련 산업과 연구개발 생태계를 건강 체질로 바꾸는 데 주력하는 사이, 독점하다시피 해온 소재·부품 산업에 더해 관광·패션·자동차 등에서도 불매운동의 역풍을 맞게 된 일본에서는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내부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수출규제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언제든 또 다른 경쟁국이 자원과 기술을 무기로 발목잡기에 나설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이영국 소재·부품단장이 “눈앞의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며 미래 원천기술 개발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어야 할 때라 역설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허와 실 분명해진 1년”

올해 초 부임한 이영국 단장은 지난 30여 년 간 쿼츠(Quartz) 등의 무기재료 단결정과 반도체·태양전지·연료전지·열전소자 등을 연구해온 소재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기술 사업화를 중시하는 국책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으로 실험실 수준의 연구를 대규모 양산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R&D 과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Q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소재·부품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높은 분야에서 연구를 해오신 만큼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작년 7월 초였지요. 수출규제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무력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간 소재·부품 국산화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20년 전인 2001년에 소재·부품·장비산업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적잖은 투자 속에서 선진국의 기술 수준을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 몇 개의 핵심소재와 부품만으로도 하루아침에 한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Q당초의 우려와 달리 한국은 전화위복, 일본에게는 자충수가 되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행히 지난 1년 간 정부와 국회, 기업, 정부출연연구원과 대학을 가릴 것 없는 범국가적 협력 속에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그간 범용제품 위주의 외형적 성장에 가려져 왔던 낮은 기술자립도와 만성적인 대일적자 등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허와 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 수출규제가 오히려 국내 소재·부품 산업 생태계의 혁신을 추동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Q연구재단 소재·부품단장에 지원하시게 된 계기도 이와 관련이 있으신지요?

네. 결정적인 이유였지요. 연구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저는 이제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맞게 되었고 관련 연구에 평생을 몸 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자괴감과 함께 분한 마음이 들어 며칠간 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연구재단에서 소재·부품단이 새로 출범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우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해 흔들림 없는 소재 주권을 확보하는 일에 남은 시간을 바칠 수 있다면 제 연구인생의 좋은 마침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앞의 위기를 넘어”

일본 수출규제 사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여온 소재·부품 산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핵심소재 하나가 R&D로부터 사업화에 이르는 데는 평균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상당히 긴 호흡의 연구와 경험,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관련 기술 개발과 양산은 대부분 거대 설비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자립화를 논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Q국책과 민간연구기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 관계부처 등을 가릴 것 없는 전방위적 협력이 사태 초기의 혼란과 우려를 빠르게 종식해 가는 분위기입니다.

위기 앞에 똘똘 뭉치는 우리 민족의 특성처럼 지난 1년 간 국내 산학연관은 보기 드문 대동단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욱 긍정적인 점은 조기 확보가 시급한 수출규제 품목의 안정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대일 무역전쟁을 계기로 위험성을 고스란히 노출한 대외의존형 산업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마련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등의 수립 과정에서 국내 연구자들의 의지와 능력을 새삼 재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정말 짧은 시간 내에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부족했고 더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을 잘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Q소재·부품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좀 더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지난 1년간 위기 극복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한편으로 우리의 안목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음도 자각하게 됐습니다. 이게 비단 일본만의 일일까, 한국의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를 달갑지 않게 여길 나라를 통해 이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 학계와 산업계는 일본 수출규제 사태와 같은 자원과 기술의 무기화가 언제든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당장의 위기 극복을 넘어 ‘글로벌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Q어떤 종류의 원천기술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핵심이 되는 소재·부품의 개발은 정말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확보가 되면 그 파급력은 실로 대단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21세기 인류의 삶을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은 세기의 발명품입니다. 이 기술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투명전도막 재료인 ITO(Indium Tin Oxide, 산화인듐주석)입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ITO란 소재가 없었다면 스마트폰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소재의 원천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강수를 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검승부는 이제부터”

현재 전 세계의 산업구조는 거대한 가치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소재, 부품, 완제품 제조와 유통, 판매, 서비스의 분업화와 효율성 제고를 통해 국제적인 공동번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중·일 동북아 3개국 역시 이런 삼각 분업체제를 통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소재와 중간재를 공급하고 한국이 부품과 반제품 제조를 담당하며 중국이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가공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수출규제 사태로 촉발된 동북아 분업체제의 균열이 완전히 복원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Q소재·부품단과 단장님의 연구지원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새로 출범한 소재·부품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매년 2~3개가량의 글로벌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비이성적인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나아가 세계 경제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원천기술 몇 가지는 우리나라가 보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AI, 5G 이후의 통신, 자율주행차 분야의 미래 소재·부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초소재이면서도 논문이 잘 나오지 않아 등한시해온 경향이 있는 금속·세라믹 분야도 주요 관심사입니다.

Q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함께 소개해주세요.

소재·부품단은 현재 3가지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보수집 활성화 및 최적화’입니다. 소재·부품은 기술 선진국들이 연구동향을 잘 밝히지 않는 분야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 학회가 거의 올 스톱돼 정보 수집이 더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정보수집기관과 각국 주재원 등의 휴먼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국내 전문가 집단의 재정비입니다. 그간 학연산 전문가 20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기존 16명의 전문위원들과 함께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이 분들이 각국에서 수집된 연구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해 우리나라의 중장기 연구개발 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세 번째는 협업의 활성화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글로벌 원천기술도 상용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담당하는 부처들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긴밀히 공조할 수 있는 ‘함께 달리기’ ‘이어달리기’ 등의 협업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요 연구개발 사업은 어떤 것들인가요?

소재·부품단의 연구개발 사업은 크게 ▲기술개발 ▲기반구축 2개의 큰 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술개발 분야는 원천기술의 창출 시점에 따라 단기적인 ‘기술자립사업’과 중장기적인 ‘미래준비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술자립사업’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은 ‘상용화 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이전이 중요한 성과지표이고, 기존의 연구개발 사업들과 달리 기업 참여도가 높아야 합니다. 기반구축 분야에서는 미래소재 개발에 최적화된 데이터와 공정설계, 측정·분석 플랫폼 구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구자와 산업계가 이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Q끝으로 웹진을 통해 연구자와 재단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까지,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세상에 저절로 그냥 되는 일은 없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지루하고 꾸준한 연구개발이 필요한 소재·부품 분야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겹고 티 안 나도 근면하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이 돌아오는 게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소재·부품단은 그 기간 발생할 수 있는 국가공동체의 요구와 연구자, 산업계 사이의 간극을 잘 메우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동료 연구자 여러분들께서도 좋은 주제를 많이 발굴해 우리나라가 소재·부품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함께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About the interview

이영국 소재‧부품단장

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사해 정보전자소재연구센터장, 화학소재연구본부장 등으로 일했으며 한국결정성장학회장, 연구재단 공학단 전문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세계일류소재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오래도록 나라를 빛내라’(永國)는 이름처럼 30여 년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글로벌 소재·부품 원천기술 탄생에 일조하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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