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호 생생 연구현장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
“죽·목간(竹·木簡)으로 지형 바꾼다”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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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중국 후베이성 운몽현 옛 무덤에서 진나라 시대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죽간(竹簡)이 대량으로 출토됐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우리나라의 경주 안압지에서도 신라 시대의 궁중 모습을 알 수 있는 목간(木簡)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일본에서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목간이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기록매체의 주류를 이뤘던 죽·목간의 대규모 등장은 동아시아 역사학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후대의 사서에 의존해야 했던 각국의 고대사와 한·중·일 삼국의 상호관계에 보다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뿌리에서부터 재검토되고 있는 동북아 고대사 연구의 중심에 경북대 인문학술원이 있습니다.

고대국가의 기록매체

“지난 세기부터 최근까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죽·목간은 고대사 연구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사기, 한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처럼 후대에 쓰인 2차 자료가 아니라 당대인들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원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우리가 첨삭이나 가공의 가능성이 있는 2차 자료를 통해서만 이해해왔던 고대국가들의 실체를 원형에 가깝게 재구성해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윤재석 인문학술원장, 경북대 사학과 교수

고대 중국인들은 거북의 배 껍질과 짐승의 어깨뼈, 비단, 그리고 규격에 맞춰 잘라 다듬은 대나무 등에 그들의 사상과 문화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각종 사서들에 따르면 죽간은 기원전 은·주 시대부터 종이 사용이 보편화된 기원후 4세기 무렵까지 장장 이천 년 넘게 이어진 중요한 기록매체였습니다. 신라와 백제, 일본 등에서는 죽간이 아닌 목간을 7~8세기까지도 사용했습니다. 내용도 당시의 법률과 제도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공문서와 제자백가의 경전, 소소한 생활 메모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죽·목간에 대한 국내외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며 기존에 알았던 고대사 지식을 뒤엎을 만한 파격적인 주장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후베이성 운몽현 수호지에서 출토된 진대의 목간 경주 안압지 출토 목간

지난 30여 년 간 중원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 시대 연구에 천착해온 윤재석 원장 역시 “죽간 연구는 진시황의 전국통일이 사서를 통해 보듯 단순히 정치적 술수와 군사적 우위의 결과물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며 “복잡한 현대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체계적인 정책과 문서 기반의 표준화된 행정업무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새삼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합니다.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죽·목간 연구가 활발해지며 실제 자료의 출토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안압지와 월성, 함안 성산산성 등 옛 신라 지역에서만 출토됐던 목간이 1990~2000년대 들어 충청도·전라도의 백제 세력권과 평양 낙랑군 유적 등지에서도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국들의 부러움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죽·목간 연구의 중요성이 고조됨에 따라 한국연구재단은 2019년 경북대 인문학술원을 인문한국플러스 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해 동아시아 지역의 죽·목간 자료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원류와 지적 네트워크’를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경북대 인문학술원의 활동은 학술사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중·일 3개국 중 최초로 동아시아 죽·목간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 연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 인문학술원 개원식

이에 따라 경북대 인문학술원은 국제적인 협력연구를 위해 국내의 우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망한 인재들을 물색해 다국적 연구진을 구성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중심을 자처했던 중국과 일본의 학계에서도 좀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시도인데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연구재단의 지원 규모에 해외 연구자들로부터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사곤 한다는 게 인문학술원 연구진들의 전언입니다.

경북대 인문학술원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동아시아 기록문화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학계가 한국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윤 원장은 “죽·목간 연구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과 마찬가지”라며 “주변국들에서도 보기 드문 자원과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성공을 자신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학술대회 현장

지역에서 세계로

‘동아시아 목간 총람’과 ‘동아시아 목간 사전’ 완성을 기념하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연구진들

‘지역을 넘어 국제학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경북대 인문학술원의 꿈은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관련 연구 가이드북 <동아시아 목간 총람>을 완성한 데 이어 한·중·일 3국에서 발굴되고 있는 목간의 고문자들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동아시아 목간 사전> 출간에 박차를 가하며 사업 시작 2년 만에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국내외 50여 명의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대형 국제학술대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술대회 현장 연구성과 지역사회 확산의 일환으로 열리고 있는 청소년 인문학 추적놀이

한편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2007년부터 대학 내 인문학 연구소의 육성을 위해 인문한국(Humanities Korea)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은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환경 구축과 인력양성을 위해 7년 간 지속적으로 우수 인문학 연구소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HK+ 사업을 통해 창출된 인문학적 성과를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안으로는 각종 교양강좌 및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사회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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