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스페셜 PLUS

청렴한 연구생태계가
국가 혁신역량의 원동력이다

한국연구재단 감사실장 김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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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연구생태계가국가 혁신역량의 원동력이다 한국연구재단 감사실장 김기형

09 The leader's message.

“청렴? 그게 연구와 무슨 상관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청렴 내지 부패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늦은 밤에도 불이 꺼질 줄 모르는 연구실,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 준비에 여념이 없이 열정적인 연구원의 모습에서 ‘청렴’ 또는 ‘부패’란 단어를 연상하기 어렵다. 올바른 상식을 갖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정청탁금지법의 필요성은 남의 얘기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규범으로 함께 인식하고 존중해야 할 규칙을 정의하고, 이에 무관심한 구성원이나 후속세대를 위해 모범을 보이고, 사회적 규범의 맥락을 유지하는 매커니즘은 어느 사회나 필요하다.

연구활동 역시 이를 규율하는 법과 제도,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와 집행하는 전문기관, 학술 공동체인 학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체들 간의 역할과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지속성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관계가 연구의 출발, 성장과 확산, 사회혁신, 새로운 인재의 창출 등 지적 탐구와 재생산 활동을 끊임없이 가능하게 하는 연구생태계를 형성한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려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경영의 투명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 인간존중의 조직문화, 사회적 책임의 실천 등 그 범위도 넓다. 연구생태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청렴수준과 제도 우리나라에서 청렴처럼 한 가지 이슈가 국가차원의 실천과제로 공직사회부터 민간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직장과 가정에서의 생활양식을 크게 변화시킨 사례도 드물다. 2016년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제정된 후 한국사회는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019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59점을 받아 180개 국가 중에서 39위를 기록하였다. 우리사회의 변화를 압축·대변하는 결과이다.

한 국가의 청렴수준은 경제, 사회, 이미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다. 부패가 사회시스템, 제도, 리더십의 신뢰를 훼손하여 국가체제의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구성체계의 일부인 연구생태계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부패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지위나 권한을 남용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이와 같은 행위를 강요, 권고, 제의, 유인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2019년도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던 이해충돌방지법안이 지난 6월 다시 국회에 제출돼 법제정이 추진됨에 따라 청렴사회 퍼즐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연구개발과제 수행, 무엇이 청렴을 위협하나? 연구활동에서의 청렴은 연구결과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 연구방법, 연구절차의 투명성이나 논문표절과 같은 연구윤리가 중심이나 연구펀딩 과정이나 펀딩기관 정책에서의 투명성도 중요한 논의 대상이다. 연구개발 활동의 세부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청렴과 부패방지라는 거창한 주제가 연구개발 활동과 무관지 않고 오히려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연구개발 활동은 과제계획서 작성에서 출발한다. 특히 전문기관에서 공모하는 국가연구개발과제지원 사업은 과제계획서의 작성, 제출, 평가, 선정, 협약 및 연구과제 수행, 종료·결과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연구과제 수행이 완성된다. 해당 연구개발 활동이 청렴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프로세스에 잠복해 있는 청렴 위협요인들에 달려있다.

즉, 연구자가 위협요인을 무시하고 경계를 넘어 부패의 영역으로 진입하면 한 과제와 연관된 연구활동은 부패한 활동으로 평가될 수 있다. 연구활동의 부패성은 연구생산성 저하나 연구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사회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례로 연구과제 신청단계에 내재된 청렴위협요인 중 하나는 연구계획서의 중복제출이다. 이미 수행 중인 연구내용이나 남의 연구내용으로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연구자의 기본 양심과 윤리를 저버린 행위이며, 이로 인한 국가행정과 재정 효율성의 훼손은 국민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연구과제 평가의 투명성은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연구자, 전문기관의 정책,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평가위원으로 연구과제 선정평가에 참여한 연구자가 학연, 지연 등 사적관계를 고려하여 평가를 진행한다면 불공정한 평가자로서 국가재정의 비효율을 조장하고 연구생산성을 훼손하는 부패행위자에 해당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기관의 개방, 소통, 책임에 기반을 둔 연구사업과 평가의 투명한 운영이 청렴한 연구생태계를 만드는 필수조건이다. 선정평가 과정에서 이해충돌의 문제가 심각히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과제의 평가와 관련한 청렴성 제고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연구자(평가위원), 전문기관이 함께 노력 할 때 실현 가능한 미션이다.

연구과제 수행단계에는 더 다양한 청렴위협요인이 내재한다. 연구비 집행, 논문발표, 학회활동, 협약이행, 연구성과물 사용 등에서 청렴을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학생인건비 등 연구비를 부정사용하는 사례는 인권침해 이슈를 포함해 복합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논문표절, 데이터조작, 논문저자 부정표기, 생명연구 규정위반, 개인정보 부적정사용과 같은 윤리적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돼 최근 연구재단에 연구윤리센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얼마 전엔 부실학회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연구성과물인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분쟁도 연구자의 부도덕한 사례다. 모두 연구생태계의 청렴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청렴한 연구생태계, 주인의식에서 출발 ‘청렴’, 반부패’는 공동체가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낸 제도를 통해 기준을 제시하고 구성원을 가이드할 수 있으나 실천은 구성원 개개인의 몫이다. 따라서 나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애정과 주인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연구생태계는 선진국에 비해 늦게 형성됐지만, 정부의 과학기술 진흥 정책에 힘입어 꾸준히 성숙해왔다. 1990년대부터 기초연구 투자와 함께 글로벌 수준의 연구개발 활동과 고급두뇌 양성을 위한 노력이 추진됐다. 현 정부는 2025년까지 기초연구예산을 2.5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과감한 정책이다. 투자확대와 더불어 연구수행 관련 제도도 연구자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신청 간소화, 연구비 규제완화, 보고서 간소화, 의무의 완화 등 연구과제수행 프로세스의 형식보다는 연구에 필요한 실질적 여건마련에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의 자율성 강화와 책임 완화는 역설적으로 연구활동의 청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자율, 창의와 함께 청렴의식 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청렴하지 못한 연구생태계에서 생산된 연구결과는 노벨상은 고사하고 신뢰라는 명예조차 얻을 수 없다. 청렴하고 건강한 연구생태계에서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연구계의 신뢰가 배양된다. 연구공동체에 대한 주인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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