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논단 > 이인재 교수 어느 학문분야를 막론하고 연구자들은 정직하고 책임 있는 연구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연구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부정, 연구관행의 잘못,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는 고스란히 연구자 자신과 그가 속한 학문 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사회 공동체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2005년 말에 터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연구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예외적인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연구분야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을 등한시 했고, 연구자로서 견지해야 했던 "책임 있는 연구수행(responsible conduct of research, RCR)"의 기준을 충분히 인지하지도 않았으며, 더불어 주요 연구결과를 위조(fabrication)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위 "황우석 사건"은 국내·외에서 연구윤리의 전형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들을 위반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는 우리나라 연구 공동체의 연구진실성(research integrity) 확보를 위한 관심의 촉발과 제도화를 앞당기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우리의 연구 공동체가 소위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당연하게 해 왔던 일들이 연구윤리의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의식 수준을 높이고 국제적 수준(global standard)의 연구윤리를 확립하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실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학계와 정부는 우리의 연구윤리를 확립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왔으며, 이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07년 2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과기부 훈령)을 제정하여 국내 대다수의 연구기관에서 연구부정행위를 예방하고 처리하기 위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구성 및 연구윤리 관련 규정을 제정하게 되었다. 특히,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내에 연구윤리 전담 부서가 설치되어 연구윤리 업무를 종합·체계적으로 담당하게 되면서 정부 차원의 연구윤리 활동 지원 사업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추진한 내용을 보면 ① 2006년부터 2년 간격으로 대학·학회·출연(연)을 대상으로 국내의 연구윤리 활동 전반에 대한 실태 조사 ② 연구윤리를 모범적으로 실천해 온 해외 연구기관의 연구윤리 활동 우수 사례를 소개하는 책 발간 ③ 2007년부터 권역별 연구윤리 포럼을 개최하여 학계의 연구윤리 실천 방안 모색과 그 경험을 공유 ④ 대학·학회·출연(연)의 연구윤리 교육과 확산 활동을 위한 연구윤리활동 지원사업 추진 ⑤ 2007년 초·중등 연구윤리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이를 토대로 초·중·고 교사 대상 연구윤리 직무연수 과정 운영 ⑥ 학술지 관리지침에 연구윤리 관련 조항을 신설(현재 1,880개 이상의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는 연구윤리 규정 제정하여 운영함) ⑦ 연구윤리 관련 정보의 수집 및 바람직한 연구문화의 확산을 위하여 2008년 3월에 온라인 연구윤리정보센터 "좋은연구" 사이트를 구축·운영 등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각 대학이나 학회, 학계 자체적으로 연구윤리 헌장이나 규정을 제정하고, 학술세미나, 특강, 포럼, 정규 강좌 등을 통해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전문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구윤리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학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2009년에 국내의 연구자들에게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과 중복게재에 관한 연구윤리지침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의 연구윤리 활동에 있어 2007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연구윤리를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학계 내외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연구윤리의 문제에 대해 정부에 의한 Top-down방식으로 먼저 추진되었고(연구윤리 확립 초창기에 이러한 접근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 이로 인한 정책의 효과와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있었지만,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제도 및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상당히 기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기간에 추진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연구윤리에 관한 제도 및 시스템은 연구윤리에 관한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급하게 추진하기도 했고, 또 정부 주도에 의한 top-down방식에서 비롯될 수 있는 연구자 및 연구 공동체의 연구윤리 의식의 미흡과 자율적인 실천의 부족은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10년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 연구진실성에 관한 회의(The 2nd World Conference on Research Integrity)에서는 연구진실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각국은 연구에서의 진실성 확보만으로도 경쟁력이 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연구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연구진실성 교육 시스템을 통해 연구자뿐만 아니라 행정 직원에게까지 연구진실성 교육을 하고 있고, 중국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논문 대필과 조작에 대응하기 위해 학술부정검사 프로그램(www.global.cnki.net)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은 유럽차원의 연구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윤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하는 것이다. 세계의 연구윤리 동향을 볼 때, 우리가 이미 갖추었거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연구 공동체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것도 많다. 첫째, 지나친 양적 위주의 업적 평가는 연구자에게 연구부정행위를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질적 평가의 결과가 반영될 수 있는 합리적인 업적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연구윤리의 정책은 처벌이나 규제 위주보다는 예방이나 올바른 가치 중심의 접근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연구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타율보다는 자율, 처벌보다는 예방 또는 바람직한 연구의 실천이다. 특히, 연구 공동체가 연구윤리 확립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여 자율적으로 필요한 규정이나 제도를 만들고 자율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현재 각 대학이나 연구 기관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규정을 만들었거나 연구윤리교육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 내실 있는 연구윤리 확립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람직한 연구를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갖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윤리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구자가 연구 수행시 어떻게 해야 연구윤리에 저촉되지 않을지 잘 모르거나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지 가까이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연구윤리 관련 실행 지침 등을 제공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연구자의 바람직한 연구실천을 촉진하고 연구부정행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 및 관련 규정, 연구윤리교육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제공하면서도, 이를 위반하였을 때는 투명하고도 공정한 처리 과정에 의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경우 엄격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 명백한 연구부정행위에 대하여 온정주의 등에 의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은 연구윤리에 대한 경시 풍조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각 연구기관에서 제정한 연구윤리 관련 제 규정은 각 기관의 특성이나 실정에 부합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관련부처의 훈령인 "연구윤리지침"을 거의 맹목적으로 반영하여 운영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아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연구 공동체의 특성과 실정에 부합되게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조정하여 운영해야 한다. 넷째, 미국의 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와 같이 국가의 연구비지원을 받은 연구가 연구부정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때 이를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종적 심급 기관을 교육과학기술부 내에 설치하고, 관련 전문가를 확보하여 연구윤리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 그리고 다양한 연구윤리 정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의 의견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