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탐방

각종 디지털 기기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21세기형 신인류인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가 등장하면서 유목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노마드란 원래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며, 디지털 노마드는 자동차와 휴대폰, 노트북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떠도는 이들을 가리킨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태초의 인간은 정착민이 아니라 노마드였고, 실제 전 세계의 60억 인구 중에 6분의 1 이상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민과 출장, 여행 등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유목이 단지 사라져가는 과거의 유산이 아닌 21세기의 필연적인 패러다임인 이유다.

그중에서도 몽골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유목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IMS, Institute for Mongolian studies) 동북아 유목문화 대사전 편찬사업단을 찾아가 단장을 맡고 있는 이성규 교수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사전 편찬을 매개로

사라져가는 동북아 유목문화를 되살리다

‘동북아 유목문화 대사전(東北亞 遊牧文化 大辭典) 편찬 사업’은 한국연구재단 토대연구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몽골지역을 포함해 동북아 유목문화의 유산을 정리해 사전으로 출간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해 오는 2015년까지 총 5년에 걸쳐 동북아 유목문화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전문백과사전 식으로 간행하는 게 사업단의 목표다.

사업을 맡은 단국대학교 부설 몽골연구소는 몽골 관련 언어와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1993년에 몽골학과와 더불어 국내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몽골어 대사전을 편찬하는 등 몽골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몽골연구소 내 동북아 유목문화 대사전 편찬 사업단(이하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유목문화와 관련된 약 1만 여 가지의 어휘를 정리해 사전 형태로 만듦으로써 절멸 위기에 놓인 유목문화를 보존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또한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은 동북아 유목문화 사전을 향후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의 유목문화 연구의 토대로 활용할 예정이다.

문화의 본질을 탐색하고 세계문화의 다양성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성규 교수는 현재 단국대 몽골연구소장으로, 몽골어와 동북아 고대 언어 및 문자를 전공하고 한국몽골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몽골 전문가이다. 최근에는 몽골을 비롯한 동북아 문화의 한 축인 유목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은 총 20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뤄져 있다. 공동연구원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장장식, 중앙대 민속학과 박환영, 영남대 국악과 박소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의 장두식, 단국대 컴퓨터과학과 박용범 등이 속해 있으며 전임연구원은 몽골 역사와 민속을 전공한 박원길 박사 외에도 현재 단국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몽골국립대의 몽골어과 간치멕 교수, 원전학과 뎀치그마 교수 그리고 다수의 박사 과정생이 함께 참여 중이다.

이성규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민국과 몽골이 수교를 맺은 1990년 이래로 몽골의 300만 인구 가운데 유목민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목문화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현대 문화론에서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할 만큼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으며, 수많은 유목문화 가운데 최근까지 그 면모를 비교적 다양하게 보존하고 있는 몽골 및 동북아 유목문화에 대한 기초자료 수집과 정리는 무엇보다 시급하고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목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를 통해 동북아 문화의 본질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세계문화의 다양성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의 궁극적인 목표다.

동북아 지역의 유목문화 요소를 세계 최초로 집대성하기까지

유목사전 편찬 사업단의 세부과제들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1년차에는 유목민들의 신화와 전설, 속담이나 민담을 다루는 유목문학을, 2년차에는 출생의례 및 관혼상제부터 사회구조, 가족제도 등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유목생활의 특징을 다뤘다. 3년차에는 의복과 음식, 주거를 포함해 유형문화유산을 이루는 유목 물질문화를, 4년차에는 무속, 서낭당과 수호신, 몽골 토착불교와 민간신앙을 다루는 유목종교를 탐구하고, 마지막 5년차에는 음악과 미술, 회화, 공예 등에 걸친 유목예술에 집중할 예정이다. 특히 4년차를 맞이한 올해의 중점적 계획은 몽골 현지조사 및 현지인과의 접촉을 통해 유목신앙과 종교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연구진들은 가장 먼저 자료를 수집해 표제어를 추출한 뒤, 표제어의 층위를 구별하고 주석과 설명을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관련 사진자료를 보충해 표제어를 완성하며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시범적으로 웹에 가동시키고 있다. 향후 일반인들도 쉽게 구독할 수 있도록 인쇄 매체를 통해 사전이 편찬되면 동북아 문화권 내에서 유목문화의 위상을 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목문화 사전 편찬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문화 역량을 제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국내 비교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동북아 문화와 관련된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수백만 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잊혀져가는 문화를 발굴한다는 것

‘왜 하필 지금 이 때, 그것도 몽골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유목문화를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에 이성규 단장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인의 문화 기저에는 대표적인 농경문화와 해양문화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유목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고. 고구려 사람들은 물론,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유목문화의 전통이 잘 유지됐고 현재도 우리 문화의 바닥에는 이러한 습성이 남아 있다고 말이다. 그 예로 대표적인 한국의 수출품에 휴대폰과 자동차, 배, 라면처럼 편리한 휴대성을 앞세우고 이동과 관계된 상품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유목문화 사전을 국내에서 제대로 편찬하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적지 않다. 유목문화와 관련된 무수한 표제어들을 전체 틀에 맞추어 조정하는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은 것. 이러한 점을 감안해 연구진은 내년 5차년도에는 수정과 보완 작업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전을 간행하기 위해서는 출판사와의 조율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 출판 사정상 5~6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사전을 간행하는 일이 어려울뿐더러 출판 예산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이처럼 수많은 난제들을 뚫고 유목문화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 나가면서 오늘도 사전 편찬 작업에 땀 흘리고 있는 연구진들의 바람대로, 몽골 문화권의 유목문화를 이해하고 토대자료를 구축하는 것에서 나아가 단국대 몽골연구소가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몽골학 연구 센터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 홈페이지: http://im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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