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자연현상에 대한 근원적 탐구

그리스 자연철학은 탈레스가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아카데미아학원이 폐쇄되기까지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학문이다. 또한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이성적 원리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녁 하늘이 붉은 이유가 에스페리데스(Esperides:저녁)의 장밋빛 피부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번개와 천둥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제우스(Zeus:천공)의 노여움이라 생각하였고, 장마와 홍수는 포세이돈(Poseidon:해신)의 화라고 여겼다.

이처럼 모든 자연현상을 신의 감정으로 얘기하던 시대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밀레토스에서 모든 자연현상을 자연적인 원인으로만 설명하려는 철학자가 나타난 것이다. 탈레스, 아르키메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수많은 자연철학자는 기존의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인 그리스 과학의 개념을 바꾸게 된다. 이러한 변화로부터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이 개화되었다.

자연철학자는 세상 만물이 존재하는 근거와 원리를 연구했다. 즉, 만물의 근원이라 불리는 아르케(arche)를 보편적인 원리로 설명한 것이다. 자연철학의 발달은 신화적 사고에서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많은 자연철학자는 경험적인 논리를 통해 모든 우주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 아님과 인간의 존재 의의를 설명했다. 이는 신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 학문이 철학적인 방법을 통한 학문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의 근본을 주장한 탈레스와 피타고라스

‘탈레스’는 그리스 과학과 철학의 시조이다. 그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여행하면서 기하학과 천문학을 습득하여 일식을 예보한 최초의 그리스인이다. 또한, 기하학을 이집트로부터 수입해왔다.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의 근원을 ‘물’이라 하였다. 이 물은 경험적으로 파악된 물질적 질료이며, 스스로 변화하여 다양한 만물을 형성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학설은 자연의 다양성을 유물론적 관점으로 연구한 것에 의의가 있다. 그의 학설과 더불어 처음으로 신화적 개념에 대해 철학적 사고와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수의 다른 자연철학자가 질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두었다면, ‘피타고라스’는 양적인 요소에 초점을 두었다.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수’라고 표현한 그는 처음으로 직각삼각형 세 변의 길이를 이용하여 a²+b²=c² 라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수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 정리는 무리수의 발견을 초래해 피타고라스학파를 소멸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수’라는 사상은 유리수 세계에서만 가능했고, 무리수의 발견은 ‘수’가 근원적이지 않음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피타고라스학파의 지적(知的)전통과 직관적 사고를 중시하는 경향이 플라톤에 의해 계승 되었다.

인간중심의 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의 본질에 대해 다루는 자연철학이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바뀌면서, 그리스 자연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다양한 철학사상에 정통하고 웅변술과 대화법에 능통한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이다.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 등 많은 명언을 남긴 그는 자신의 철학사상이 아테네 시민 모두가 발전하는 데 쓰이길 원했다. 또한 그는 제자 플라톤과 달리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의 사상은 제자인 플라톤의『대화』와 크세노폰의『회고록』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전부이다.

그의 철학 사상은 ‘보편적 진리’, ‘절대미’, ‘절대선’의 개념을 인정하고, 이런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분석, 비교, 변증, 종합을 바탕으로 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현대에서도 그의 방법론 중 ‘산파술’이란 대화법을 중요하게 바라본다. 이 대화법은 대화를 통해 상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막연하고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명확한 개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즉,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대화자에게 개념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표적인 제자, ‘플라톤’은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철학 세계를 열어나간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오르페우스교와 관련이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처럼 절대 불변론 이면서도 약간의 신비주의적 관점이 들어있다.

그의 사상은 이데아(본질)론으로 유명하다. 이데아론은 플라톤이 처음 주장한 형이상학 이론이다.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는 현실 세계 밖의 세상이며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또한 추상적인 완전한 존재이며 이데아가 투영된 곳이 인간이 사는 현실세계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의 바탕에는 모든 사물을 이데아의 일부와 이성으로 인식함으로써 그곳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카데메이아’라는 교육기관을 건립했다. 아카데미이아는 기숙사, 강의실, 박물관 등을 갖춘 일종의 종합대학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약 20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출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 것’이란 문구를 새겼다. 이를 통해 철학뿐만 아니라 기하학 또한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 아카데메이아가 배출한 최고의 수재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고, 모든 지식 분야에 개척을 이룬 선구자로 표현된다.

그는 플라톤의 수제자였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에서 ‘보편적 진리’라는 부분만 같을 뿐 진리를 바라보는 입장은 앞선 스승들과는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적 진리를 ‘도덕적 선’에서 찾았고, 플라톤은 ‘관념적 이데아’에 진리가 있다고 말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주장을 넘어 ‘사물의 질량’ 속에 불변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했다. 즉, 사물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며, 이데아가 아닌 사물의 질량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본질과 관념적 이데아가 분리되어 있기에 <이원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에 본질이 내재 했다고 하여 <일원론>이라 명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 학교를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직접적인 관찰법을 강조하였고 특히 경험을 중시하였다. 또한 그는 집단적인 교육보다 개별적인 교육이 좋다고 하였다. 교육에 있어 획일적인 집단교육보다 개인마다 차별을 둔 개별교육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생각하며 넘겼던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스 자연철학자가 진리에 대해 탐구했듯이 끊임없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영원한 진리는 없지만, 그에 대한 물음마저 없다면 고인 물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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