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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연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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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정감사에서는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질의에 나선 한 의원이 소형 드론을 국감장 안에서 날아다니도록 시연한 것. 이 의원은 “장난감 같은 저 물건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드론 시장 규모가 10년 안에 1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며 정부의 관련 산업 활성화 방안을 물었다. 무인항공기와 자율주행자동차까지 최근 한두 해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무인화 기술에 대한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융합·진화 거듭하는 한국 무인화 연구의 산실

많은 이들이 해외발 무인기·무인차 관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무인화 연구 역시 무척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2007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 무인시스템제어연구실이다. 연구실 책임자인 심현철 교수는 현재 KI 필드로보틱스 센터장도 겸임하고 있다.

지난해 KAIST 교정에서 열린 봄 축제에서는 이들이 제작한 무인자동차 유레카와 전자동비행 드론이 잔디밭에 모여 앉은 학생들에게 싱싱한 딸기를 배달하는 모습을 연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인자동차와 무인항공기를 결합한 배달 시스템은 해외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로 한국의 무인화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됐다.

심현철 교수는 석사 과정생 때인 1991년부터 이미 무인화 연구에 발을 디뎠다. 기계설계를 공부하다 처음 접한 무인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자비로 헬리콥터 실내비행기구를 직접 공수해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처럼 좋은 센서나 GPS도 없었던 시절, 막대기로 만든 로봇 팔 끝에 기체를 매달아 조종술을 익혔다. 명실상부한 국내 무인화 연구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당시는 국내 항공산업이 성숙하지 않았던 때라 심 교수는 자동차회사에 입사했다. 자신의 관심사인 무인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분야였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심 교수가 거꾸로 훗날 이질적인 기술들을 뒤섞고 조합하고 연결하는, 이른바 융합연구의 밑거름이 됐다. 젊은 시절부터 남들이 힘들다고 피하는 것에 오히려 더 매력을 느끼곤 했던 심 교수의 기질은 미국 버클리공대 유학 시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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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퍼지로직의 대가인 자데(Zadeh) 교수님의 특강을 듣다가 다른 친구와 의기투합해서 무인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미국도 무인기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이고 논문도 쓰기 어려운 분야라 지도교수님 역시 무인기를 만들어보겠다는 우리의 계획에 시큰둥했지요. 하지만 한참 얘기를 듣더니 무언가 감이 왔는지 한번 도전해보라며 지원을 약속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5000달러의 지원을 받은 그와 동료는 1999년 드디어 무인기의 자동비행에 성공했다. 현지 미국방송이 취재를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에 탄력을 받아 당시 이미 요즘 등장하는 드론 편대비행과 자동착륙, 충돌회피 기술까지 연구 분야를 넓혔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좌절도 경험해야 했다.

실리콘밸리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와중에도 주말마다 자비로 120㎞의 거리를 왕복하며 무인기 연구를 놓지 않았던 심 교수는 2007년 KAIST에 둥지를 틀며 비로소 무인화 연구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 더 즐겁다”

심 교수와 연구원들이 동고동락하는 무인시스템제어연구실은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반듯반듯하게 놓인 책상 대신 지그재그 사선으로 연결된 책상들이 큰 공간을 메우고 있다. 개인 영역은 보호받으면서도 언제든 동료들과 토론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구조다. ‘논문편수보다 창의성’ ‘눈앞의 현실보다 미래’를 강조하는 심 교수의 연구철학이 연구실 곳곳에 배어 있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연구를 연구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테스트해보며 결과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덕분에 쌓여 있는 각종 조립공구들 사이로 드론이 날아다니고 로봇이 팔을 휘젓는 연구실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시험장소가 주로 야외인 까닭에 연구원들은 여름이면 대개 농부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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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맨 땅’에서부터 기초를 닦은 심 교수와 무인시스템제어연구실의 연구는 여러 인근 학제들과 결합하며 지상차량과 무인항공기, 로봇, 나아가 우주 분야를 넘나드는 중이다. 시속 130㎞ 주행에 성공한 무인차 유레카를 비롯해 자율비행자동차, 행성채굴로봇, 최근 미국 전기전자학회 잡지에 ‘드론과의 전투 준비 중인 한국’이란 제목으로 소개돼 비상한 관심을 모은 무인항공기 경비시스템까지 실로 다양하다.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원전 상공을 비행하는 헬리콥터를 보고 조종사의 안전을 걱정하다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다. 비행기를 직접 모는 로봇조종사가 그것. 작년 가을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로봇조종사는 각종 재난 현장에 사람 대신 투입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고 경제성도 뛰어나 빠른 실용화가 기대되고 있다.

“우리 실험실이 보유하고 있는 무인화와 자동제어 기술에 여러 가지 요소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섞어보는 하이브리드 연구라고 할까요.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것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융복합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일이라 즐겁습니다.”

연구원 안에 설치된 국내 최초의 뇌은행과 투명화 기법과 3차원 영상으로 세밀한 뇌 관찰이 가능한 첨단장비 등도 역시 그동안 좀처럼 모이기 쉽지 않았던 국내 여러 뇌 연구자들의 공동연구와 융합과제를 촉진시키게 될 전망이다.

무인시스템제어연구실은 최근 그 영역을 우주로까지 넓히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추진 중인 우주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인공위성 근접운용을 위한 영상라이다(LIDAR) 통합 자율항법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인공위성 편대비행, 우주정거장과 탐사선 또는 위성 간의 자동랑데부와 도킹에 필요한 기술이다.

이에 더해 심 교수는 요즘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드론의 법제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제도 마련이 시급한 사안이다. 해당부처와 함께 초안 작업에 나선 심 교수는 “미국도 아직 손대지 못한 일”이라면서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것이 즐겁다”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