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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피터 힉스가 주장한 가상의 입자 ‘힉스 입자’는 현대 이론물리학에서 질량을 부여해 지구상의 모든 물질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신의 입자’로 불린다. 2013년 CERN 연구소에서 과학적으로 그 존재가 증명됐다. 가속기에서 인공적으로 충돌시켜야 관측할 수 있을 만큼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지만, 만물의 근원을 담고 있는 이 입자들은 회전하는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지난 2014년 대통령 Post-Doc.에 선정된 정의헌 연구교수는 힉스 입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밝혀진 스핀*이 0~2인 입자들보다 더 큰 스핀의 입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입자 연구를 비롯해 그가 대통령 Post-Doc.에 선정되기까지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 보았다.

* 스핀 : 기본 입자가 갖는 성질 중 하나로, 몇 바퀴 회전시켜 같은 모습이 되는가를 나타내는 양자수. 스핀이 s인 입자는 1/s번 회전하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PART 1 연구이야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고에너지 이론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정의헌입니다. KAIST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후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NS)와 파리7대학 석·박사 과정으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국립핵원자력연구소(INFN)와 피사 고등사범학교(SNS di Pisa),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Post-Doc. 펠로우십을 거쳤습니다. 임페리얼 칼리지에 있던 중 2014년도 대통령 Post-Doc.에 선정되어 서울대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 주된 연구 분야이자 펠로우십 연구과제는 ‘고차스핀이론’과 ‘홀로그래피’입니다.

스핀 입자가 만들어내는 힘

박사과정을 끝낼 무렵부터 지금까지 제가 연구해온 고차스핀이론은 스핀이 2보다 큰 입자들의 동역학과 이들의 물리적 의미를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스핀이 0인 입자는 모든 방향에서 보아도 똑같은 모습이고, 스핀이 2인 입자는 반 바퀴만 돌려도 같습니다. 스핀이 1인 입자는 한 바퀴 돌려야 같은 모습으로 보이고, 스핀이 ½인 입자는 두 바퀴를 돌려야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고차스핀이론은 스핀이 큰 입자들을 무한히 포함하고 있다는 면에서 끈이론*과 여러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지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즉 중력·약력**·강력***·전자기력은 모두 질량이 0인 입자들이 매개체가 되는데, 중력의 경우 스핀 2인 중력자, 나머지 세 힘은 스핀 1인 게이지 보존(gauge boson)이 매개체입니다. 기본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페르미온’과 힘을 전달하는 ‘보존’으로 나뉘는데, 입자를 주고받으며 힘을 만드는 게이지 대칭성과 관계있는 입자들을 게이지 보존이라 합니다. 광자, W입자, Z입자, 글루온이 게이지 보존으로, 광자를 교환하면 전자기력이 발생하고, 강력은 글루온, 약력은 W입자와 Z입자를 교환하며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직 실험적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중력은 중력자를 교환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끈이론 : 만물의 최소 단위가 점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라는 물리이론으로 입자의 성질과 자연의 기본적인 힘이 끈의 모양과 진동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끈은 흔히 분자로 이루어져 눈에 보이는 끈이 아니라 더 이상의 세부구조를 갖고 있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말한다.
** 약력 : 원자핵의 붕괴에 관련된 힘
*** 강력 :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나 중성자 등의 핵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으로 핵 크기 정도의 매우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함

스핀이 0보다 큰 질량 없는 입자들이 정합성(Consistency)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정 대칭성이 만족되어야만 하며 입자의 상호작용도 이 대칭성에 위배되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질량이 없는 스핀 2짜리 입자가 만족해야 하는 대칭성은 시공간을 좌표계에 무관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리만기하학*의 성질에 해당하며, 이를 통해 중력장의 효과가 시공간의 휨을 결정하고 이 휨이 물체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스핀이 2보다 큰 질량 없는 입자가 매개하는 힘이 존재할 경우, 그에 해당하는 대칭성은 일반상대성 이론 기하학을 새로운 수학으로 확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수학과 물리가 요구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질량 없는 고차스핀입자를 다루는 이론은 상대적으로 그 이해도가 낮은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끈이론 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무거운 고차스핀입자들의 경우도 구체적인 분석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아직 많은 연구가 되어있지 않은 이 분야가 고차스핀이론 그 자체 뿐 아니라 끈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주제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 리만기하학 : 유클리드의 평행선의 공리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성립하는 직선, 평면, 공간 등의 유클리드공간에서 확장된 개념인 리만공간에서의 기하학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자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양자장이론의 한 종류로 모든 물질은 6개 쿼크*와 6개 렙톤**, 총 12개의 기본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본입자 사이에는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입자물리 표준모델’이 보여준 바에 따르면, 에너지가 높은 영역으로 갈수록 더 많은 대칭성이 드러나게 되며, 또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던 이론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중력과 표준모델을 통합하는 가장 유력한 후보인 끈이론 상의 무수한 입자들의 경우도 아주 높은 에너지 영역에서는 모두 질량이 없는 입자로 간주할 수 있게 되어, 끈이론은 일종의 질량 없는 고차스핀이론이 될 것이라 추론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대칭성이 드러난 상태가 이론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고차스핀이론은 끈이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중력을 포함하는 통일 이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리만기하학을 고차스핀 버전으로 확장시키는 등의 수학적 탐구 또한 많은 부산물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더불어 제가 연구하는 또 다른 과제인 홀로그래피를 이용하면 고차스핀이론은 고에너지물리학을 넘어선 물리영역과도 관련을 맺게 됩니다. 홀로그래피는 서로 다른 시공간 차원에서 정의된 두 이론이 같은 물리량을 준다는 추론으로, 지난 20년 가까이 고에너지 이론물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되어온 영역입니다. 4차원 고차스핀이론은 홀로그래피를 통하여 3차원 상의 특이현상을 기술하는 이론과 대응할 것으로 추론되는데, 그에 따르면 임계점 상태의 물(H₂O) 또한 고차스핀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쿼크 : 대부분의 물질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성요소. 6종류로 알려진 쿼크는 up/down, charm/strange, top/bottom 등 3개 쌍으로 분류하고 있다.
** 렙톤 : 원자핵 바깥에 있는 입자로, 원자핵 속의 양성자, 중성자 등에 비해 가벼운 입자를 가리킨다. 전자(electron), 뮤온(muon), 타우온(tauon)과 각각에 대응되는 3개의 중성미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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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

고차스핀이론은 최근 들어서야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분야라 저도 지난 몇 년간 연구에 있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간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자부하지만 Post-Doc.으로서의 한계를 느껴왔습니다. 제가 Post-Doc.으로 있던 곳의 박사과정 학생이나 다른 더 젊은 Post-Doc.들과 주로 해오던 연구도 2~3년을 주기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고에너지 이론 분야 Post-Doc.의 특성상 꾸준히 진행시키기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애써 쌓은 전문성이 흩어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아쉽게 생각하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Post-Doc. 선발은 과학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가 연구하고 있는 이론적 기초물리학이 선정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초물리학이야말로 연구재단과 같은 공적 기관에서 지원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선정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나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아주 기뻤지만, 12년간의 외국 생활을 갑작스럽게 정리하고 짧은 시간 안에 연구 그룹을 꾸며야 했기에 힘든 점도 있었습니다. 초기 정착 과정에 서울대학교 이수종 교수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와서 여러 Post-Doc., 학생들과 제가 갖고 있던 분야의 전문지식을 나누고 또 함께 발전시킬 수 있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의욕에 찬 주위 연구자들 덕분에 고차스핀 연구에 관한 여러 프로젝트를 병렬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조만간 논문으로 결실을 맺게 될 것 같습니다.

엄격한 검증 통해 기른 연구능력, 고차스핀이론에 집중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연구자로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던 지하드 무라드입니다. 평소 아주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시지만 연구실에 둘이 함께 있을 때면 아주 공격적으로 제 연구 진행과정을 검증하셨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칠판 앞에서 검증을 당하고 방어했던 경험이 제 연구능력 형성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수종 교수님도 무궁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제게 많은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제가 집중적으로 연구 중인 고차스핀이론을 충분히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론 제가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에 몰두해 저만의 분야를 개척해보고 싶고, 기존 틀을 벗어난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국내의 선·후배 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를 적극 추진해 한국 과학계의 역동성 증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