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구독 신청

인문학 산책
사진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어떻게 살고 싶나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가 있다. 삶의 연륜이 쌓일수록 지혜의 깊이도 깊어지기 마련이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이미 어릴 적부터 동화를 통해 그 답과 함께 성장해왔다. 신데렐라의 구두와 도로시의 구두, 장화신은 고양이, 빨간구두, 콩쥐팥쥐 등 오랜 옛날부터 신발을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구두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인생의 단면을 함께 살펴보자.

구두는 또 다른 자아, 정체성을 상징한다

많은 작가들이 구두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다. 쓸모없는 동물이라고 취급받았던 고양이는 장화 한 켤레와 긴 끈이 달린 자루를 받은 후 주인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냈다. 동화 속 장화는 행운과 행복을 가져온 매개체였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도로시가 동쪽의 못된 마녀가 남긴 은구두를 신자 마자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발에 꼭 맞았다. 도로시는 경쾌하게 딸각거리는 소리를 내는 은구두를 신고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빨간 구두로 재탄생한 구두는 도로시 구두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어 스트랩 슈즈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신발은 정체성이다. 사람은 자기 신분에 맞는 신발을 신으며 신발은 자신을 통해 주인을 드러낸다.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길이다.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일이다. 재투성이 부엌데기에서 왕비로 재탄생하는 매개물이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어야 왕자의 아내가 되고 콩쥐는 꽃신을 신어야 원님의 아내가 된다. 신데렐라의 구두, 콩쥐팥쥐의 꽃신 이야기는 동서양에서 비슷한 원형으로 구전돼 왔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소녀다. 부잣집 미망인의 양녀가 된 소녀는 빨간 구두를 얻어 신은 뒤 양모의 장례식 날에도 그 구두를 신고 춤을 추기에 이른다. 결국에는 구두를 신은 채 발목을 자른 다음 죄를 뉘우치고 경건한 생애를 보내 구원을 받는다는 그리스도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빨간 구두는 허락되지 않는 욕망을 상징한다.

사진

인류와 함께 발전한 구두의 역사

구두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대 이집트·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샌들 형태의 신발을 착용했으며, 이후에 구두의 형태를 한 것으로 본다. 이들 시기 샌들을 만들었던 재료는 가죽이나 파피루스 등으로 주로 귀족·승려·군인들이 착용했으며 서민들은 맨발로 다녀야 했다.

구두는 발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됨과 동시에 사회적 기호로서 이용되었다. 구약성서의 「룻기」(4:7)에 구두를 벗어서 건네주는 것은 양도의 상징이며, 「시편」에 구두를 토지에 던진 것은 소유의 상징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관은 파피루스나 감자 잎으로 만든 샌들을 신어서 속인과 구별하였다. 로마시대의 재판관은 붉은 구두를 신고, 황제는 물레우스(mulleus)라는 슬리퍼를 신었는데 희극배우와 비극배우도 신발로 구별되었다.

신발의 대중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이후로 추정된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신발의 목적이 ‘발의 보호’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발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전쟁이었다. 전쟁심리 내지 군사심리전의 대응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신발이었다.

전쟁장비로 만들어진 신발은 계급 또는 신분처럼 독점되고 세습되었다. 신는 자와 신지 않은 자, 신을 수 있는 자와 신을 수 없는 자로 나뉜 신분으로서의 신발은 이제 실용이 아닌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신발이 대중화된 중세나 근대 이후에도 신발은 그 모양과 색깔, 재료와 문양에 따라 신는 사람의 격을 달리 구분하는 상징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왔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후 기사가 장화를 신게 되자, 장화는 귀족의 상징이 되었다. 6세기에 북프랑스를 선교한 성 크리스피누스와 성 크리스피니아누스는 구두가게를 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하며, 오랫동안 구두직인의 수호성인이었다. 하이힐이 유행하기 시작한 17세기 프랑스, 작은 키에 열등감이 있던 루이 14세는 굽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 이제 하이힐은 단순히 오물로부터 발을 지키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감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