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호 스페셜 PLUS

향(香)과 바이러스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은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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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香)과 바이러스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은경 교수

위기는 향을 만든다 수백 년, 수천 년을 거쳐 무성해진 숲은 사람에게 건강한 향을 내뿜는다. 피톤치드이다. 그러나 이 자연 향은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자연 항균 물질이다.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비바람과 기온의 변화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내뿜은 물질이다. 나무의 위기는 인간에게 치유의 향을 제공한 것이다. 위기는 천상의 향을 만든다 용이 승천하듯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향이 있다. 특유의 오묘한 내음을 풍긴다. 바로 침향(沈香)이다.

침향(좌 : 해상무역품, 우 : 베트남산 침향)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다 하여 침향이라고 불린다. 예부터 아주 고가의 귀한 향목으로 왕실을 비롯한 제한된 일부 특수층에서만 사용하였으나, 요즘 일반인들에게 꽤 많이 알려진 약재이자 향재이다.

침향원목은 동남아시아에서 자생하는 나무이다. 자연재해나 병충으로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그 부위와 주변에 점액성 물질을 분비한다. 바로 침향나무의 수지이다. 나무 내부에서 수지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외부의 자연 재해로부터, 외부의 인위적인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지를 만들어 낸다. 수백 년, 천 년 이상을 견디면서 각종 위기 속에 생명을 다해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토해낸 분비물 덩어리가 침향이다. 나무를 베어 두면 껍질은 썩지만 물속에 가라앉는 것은 단단한 덩어리이다. 침향에 열을 가했을 때 그 안에 존재하는 수십 가지 물질의 조합으로 입과 코가 느끼는 향은 몸과 마음을 정화시킬 뿐만 아니라, 너무나 오묘하여 천상의 향이라 일컫는 것이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일본 大德寺 소장

천상의 향, 침향(沈香)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공양물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고려 14세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도이다.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화려한 채색으로 그린 화격이 뛰어난 그림이다. 화면 가운데 관음보살이 천연 동굴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관음은 세상의 소리를 관(觀)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관세음보살이라 한다. 이 같은 관음은 중생들의 외침에 응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관음의 진신(眞身)은 신비로운 진신처에서 깊은 명상에 잠기거나 설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하기도 한다.

이 그림은 관음의 진신처인 보타락가산의 자연 동굴과 쌍죽을 배경으로 관음이 크게 그려져 있다. 몸을 사선 방향으로 틀어 바위 위의 풀방석에 한쪽 다리를 풀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향한 얼굴은 자애로움과 근엄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몸에는 아름다운 채색의 옷을 입고, 영락과 팔찌,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걸치고 있다. 특히, 머리에 쓴 투명한 베일은 전신을 감싸고 아래로 길게 흘러내렸는데, 흰색 바탕 문양에 금색의 둥근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투명한 베일, 관음의 두부와 전신을 둘러싼 커다란 둥근 빛은 신비로운 관음의 이미지를 장엄하게 연출하였다.

관음의 시선이 가는 아래쪽에는 출렁이는 해수면 위로 용왕을 비롯하여 총 13명의 무리들이 관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수월관음보살도 화면 하단의 공양인물군

반대편 가장 우측에는 수면에 뜬 연잎 위에서 관음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우러러보는 선재동자를 그리고 있다. 선재동자는 보살의 도를 얻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인(善知識人)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28번째 방문한 곳이 바로 관음의 진신처 보타락가산이다.

그리고 수면으로부터 솟은 만개한 연꽃이 관음의 왼쪽 발을 받쳐주고 있다. 그 옆에 솟은 연봉오리는 다른 한쪽 발이 내려오면 받쳐줄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암반 주변에 장식된 홍산호와 보주 등이 꽃과 향기로 가득한 관음 진신처의 이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13명의 무리들은 제각각 손에 다양한 공양물을 들고 있다. 이들 무리의 선두에 선 용왕은 손에 손잡이가 달린 병향로를 쥐고 있다. 관음에게 향을 피워 공양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 무리에 속하는 사람과 동물이 3명 등장한다. 보주가 담긴 항아리, 대형 홍산호, 대형 진주 등을 이고 있다. 그 중 가운데 동물형상의 인물은 어깨에 울퉁불퉁한 옹기가 있는 커다란 목재를 짊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귀한 침향목으로 보인다. 이 침향목을 관음보살에게 공양물로 바치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수월관음보살도 하단의 공양인물과 침향(가운데 인물이 들고 있는 물건 )
구례 화엄사 괘불탱 부분, 조선 1653년 (좌 : 보탁, 우 : 보탁 위의 향목)

침향의 냄새를 맡고 향물을 몸에 바르면 오근(五根)이 청정해져 무량한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침향의 연기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며, 그 매개체를 통해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는 침향원목의 자생지가 아니다. 왕실을 비롯한 특수층만이 침향을 겨우 접할 수 있었다. 실제 『고려사』에 의하면 의종 5년(1151) 4월 8일에 침향목으로 관음상을 만들어 내전에 두게 하고 승려에게 음식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고려후기에 왕실에서 매우 귀한 침향을 중국으로부터 유입한 사례들이 여러 차례 확인이 된다.

고려후기에는 침향에 대한 열망으로 향목을 묻어 침향의 수지를 얻는 매향신앙이 있었다. 이 같은 매향의식은 때로는 마음을 한데 모으는 신앙 결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매향의 최적지로 알려진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나 뻘에 땅을 파고 향나무를 묻었다. 수십 년, 수백 년, 천 년 이상 묻어 있던 향목은 불필요한 부분은 썩어 없어지고 향이 깊이 스며든 수지만 남아 침향이 된다는 열망이었다. 이 같은 매향 행위를 하면서 그 주변에 세웠던 매향비나 매향암각이 실제 남아 전하고 있어 당시의 매향신앙을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고려 우왕 13년(1387)에 조성된 경남 사천 매향비(보물 제614호)가 전해 온다.

향과 바이러스 자연의 향은 외부의 바이러스로부터 나무가 스스로 일구어낸 자생 물질이다. 위기로부터 천상의 향을 만들어내었다. 우리는 최근 외부의 바이러스에 너무나 지쳐있다. 게다가 짧은 시간에 성과를 서둘러 내는 조급성에 익숙되어 있다. 천연 내음은 오랜 시간과 틈 없는 정성으로 쌓인 익은 향과 같다. 지금, 우리는 인간 숲의 다양한 위기로부터, 생명력이 강력히 배어든 어떤 휴먼 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박은경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사진출처 : 고려시대의 불화(시공사), 성보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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