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호 스페셜 PLUS

인문학의 위기와
인문학자의 깊이와 넓이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이창봉 교수

이전호 목록보기 다음호

인문학의 위기와 인문학자의 깊이와 넓이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이창봉 교수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 현상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교류와 융합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초점을 두고 기존의 순수 인문학만을 고집하는 방식의 인문대 운영 모델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로 인문학이 ‘깊이’만이 아니라 다른 학문과의 ‘통섭’과 ‘융합’을 이끌고 아울러 사회적 적응도도 높여야 한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 되었다. 필자는 대학의 중심인 교수들이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이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최근 학내외에서 인문학 전공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겪은 경험과 개인적 활동을 소개하고 함께 성찰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변화의 시작은 ‘소통과 융합과 실천’

인문학 분야 교수들은 누군가 말했듯이 ‘독립과 고독’ 속에서 한 우물만 깊이 파는 고립된 연구 전통을 오래 고집해왔다.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CORE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인문대 교수들의 마인드를 변화시켜 온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CORE 사업 단장직을 맡으면서 교수들의 변화를 촉발하는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 ‘소통과 융합과 실천’이다. 인문대 교수들은 다양한 학문끼리 소통하고 융합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직시하고 융복합 전공을 위한 새 교과목을 개발하며 팀 티칭을 적극 활용하는 등 인문학을 새로운 학문과 융합하는 시도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왔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학문의 실천이다. 이제까지 인문학은 학문의 대중적 호소력과 광범위한 응용력에 비해, 그것을 주변 사회 속에 실천하는 데에 소홀했었기 때문에 학문의 참 가치와 공헌에 대한 인식이 낮았었다. 이제 교수들은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성과를 지역 사회는 물론 세계 각국 학문공동체와 교류하며 실천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시행하고 있다.

은유 현상 연구로 인문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다

CORE 사업 경험을 통해 ‘소통과 융합과 실천의 인문학’의 의의를 성찰하기 전에는 필자의 연구 성과는 언어학자로서 깊이만 추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은유(metaphor) 현상을 연구하면서부터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필자는 영어와 한국어의 은유 현상을 비교하여 인간 감성의 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연구하고 각 언어문화권의 사회정치적 특성을 연구하는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함으로써 언어 연구를 기반으로 사회와 문화 연구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연구로 지평을 넓혀 왔다.

교육에서도 소통과 융합의 정신을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이전에는 강의 시간의 대부분을 이론 설명으로 보냈었는데 이제는 학생들이 수업 중 언어학 이론과 개념을 이해한 것을 토대로 성찰의 글을 쓰거나 이론을 사회와 문화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 적용하는 발표를 부과하고 함께 토론함으로써 더욱 동적인 지적 교류의 장이 되도록 운영하였다.

필자의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삶과 활동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소통과 실천의 인문학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하면서였다. CORE사업 추진 중 많은 학자들과 협력하여 한국학의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글로벌 한국학 온라인 특강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한 글로컬(Glocal) 맥락과 환경에서 지역 시민과 소통하고 실천하는 인문학을 추구하기 위해 ‘소통과 평화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해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CORE 사업 종료 이후로는 코로나 사태 등의 이유로 각종 미디어를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실천하는 인문학자로서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다. 중기이코노미에 “이창봉 교수의 ‘미국을 읽다’” 칼럼에 정기 투고 하고 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사 투고와 Facebook 포스팅 활동을 통해서 언어학자로서 한국 사회와 정치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여론을 올곧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이 글에서 필자는 흔히 인문학의 위기라고 표현되는 현상의 참 모습은 실상 인문대의 위기이며 인문대 교수들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노력 사례를 함께 성찰해 보았다. CORE사업 단장직 수행 경험을 토대로 ‘소통과 융합과 실천’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연구와 교육과 사회 참여 분야에서 개인적인 경험과 활동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소통과 융합과 실천의 인문학으로 사회적 응용력 높여야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더 이상 인문대 교수들이 ‘독립과 고독’ 속에서 인문학 본령의 학문적 깊이와 고답적 교육 내용과 방법에 머물도록 허용하고 있지 않다. 교수들은 이제 소통과 융합과 실천의 인문학으로 자신의 연구 성과의 교육적 및 사회적 응용력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축적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대중화하여 다양한 방식의 나눔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권위만 내세우고 대우받는 요구를 하는 ‘누리는 자(taker)’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나누는 ‘주는 자(giver)’의 모습을 보일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권위와 존경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참된 존경을 받는 교수들이 인문대학의 학문과 교육의 중심을 잡고 올곧은 방향으로 학생들과 대중들을 이끈다면 아무리 외부의 파고로 대학을 흔들려고 해도 대학의 대학으로서의 인문대학의 위상과 가치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한국연구재단 정보
  • 대전청사

    (34113)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로 201

  • TEL

    042-869-6114

  • FAX

    042-869-6777

  • 서울청사

    (06792)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25

  • TEL

    02-3460-5500

  • 간행물 심의번호

    20141223-2-17

한국연구재단 웹진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홍보실
  • 홍보실

    TEL 042-869-6111
    FAX 042-861-8831
     

웹진에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의견을 기다립니다.

Copyright © 2021 NRF all rights reserved.

당신의 공감talk

글 작성
  • - -

개인정보 수집·이용안내

  1. (수집·이용 목적) 한국연구재단 웹진 이벤트 당첨자 경품발송을 위한 연락처 확인을 위해 수집 · 이용하며,
    경품발송을 위한 목적 외로 사용하지 아니합니다.
  2. (수집항목) 필수항목 : 성명, 핸드폰번호
  3. (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기간)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되면 지체 없이 파기합니다.
  4. (동의 거부권리 안내) 본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한 동의를 거부할 수 있으며,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유의사항 안내

  1. 당첨자 발표 후, 등록한 연락처로 모바일 쿠폰 발송 예정입니다.
  2. 잘못된 연락처로 인한 경품 발송 실패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3. 문의: pr@plani.co.kr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유의사항을 숙지하였으며 위 사항에 동의하십니까?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