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호 스페셜 PLUS

대학의 안정적·지속적
연구지원을 위한 제언

한국연구재단 국책사업기획실 이한진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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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안정적·지속적 연구지원을 위한 제언,
일본의 ‘기반적 경비’ 지원을 중심으로

한국연구재단 국책사업기획실 이한진 수석연구위원

한국연구재단의 동경사무소장 근무(2014–2017)를 마치고 복귀한지 벌써 4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 파견 전에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을 중심으로 연구지원기관의 조직·평가·운영체계 등을 조사·분석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3년 근무기간 동안 그들의 과학문화, 과학기술 전통, 연구현장 방문 및 과학기술 정책의 전개 등을 경험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7)부터 메이지 유신(1868–1912)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인(匠人) 존중 정신 및 한 우물파기 연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또한 덴마크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1922년)인 보어(Bohr)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협력적인 연구 환경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런 전통은 이화학(연)과 교토대학 등의 과학계에도 뿌리를 내렸다. 이 외에 일본이 기초연구 및 노벨강국이 되기까지의 과학기술 행정개혁과 과학기술정책의 변천 등을 조사하면서, 일본 과학사와 제도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유용할 것 같은 제도 중 하나가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기반적(基盤的) 경비’ 지원시스템이다.

기반적 경비, 장기간 동안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

일본의 연구지원시스템은 ‘경쟁적 경비’와 ‘기반적 경비’의 이중(dual)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 ‘경쟁적 경비’ 시스템은 일본학술진흥회(JSPS) 혹은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와 같은 연구지원기관에서 연구자 간 경쟁을 통해 과제를 지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 ‘기반적 경비’ 시스템은 정부(문부과학성 등)에서 대학에 지원하는 경상비 중 총(학)장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을 대학 자체 연구비로 활용하는 것이다. ‘경쟁적 경비’와 비교하여 연구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대학으로부터 매년 안정적·지속적으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와 같은 지원을 통해 대학 연구자는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평가에 크게 구속받지 않고, 장기간 동안 창의적·도전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기반적 경비’와 관련한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청색 LED 개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2014년)한 나고야 대학의 아카사키 교수(2021년 4월 1일, 92세로 별세)를 손꼽을 수 있다. 아카사키 교수는 19년(1967-1985) 동안 나고야 대학의 ‘기반적 경비’를 기반으로 제자인 아마노 교수와 함께 청색 LED를 개발하였다. 적색과 녹색 LED가 발견된 1960년대 이후 청색 LED 개발은 과학계의 난제였다. 아카사키 교수의 연구 성공으로 빛의 삼원색(적색·녹색·청색)을 통하여 모든 색을 LED로 구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청색 LED 개발 이후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의 산학협력연구사업(A-STEP)을 통해 실용화·상용화를 이룰 수 있었다. 「축적의 길(2017)」 저자인 이정동 교수는 ‘지속’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10억 원을 한 번에 지원하기보다는 5천만 원씩 20년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카사키 교수의 연구는 ‘지속’의 모범사례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개발비, 아직 열악한 편에 속해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번째로 정부와 민간 연구개발(R&D)을 합쳐 100조를 이룩한 국가이다. 이 중 기초연구비는 약 15조 정도이지만, 기초연구 비중은 17.2%(2015년)에서 14.7%(2019년)로 감소하고 있다. 특정 국가의 연구개발(R&D) 경쟁력을 결정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학의 기초연구가 얼마나 탄탄한지에 대한 현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개발(R&D) 현황은 아직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대학의 등록금은 13년째 동결된 상태이고, 총 연구개발비 대비 대학연구 비중(2019년 기준)을 보면 우리나라는 8.3%로 OECD 평균인 16.6%의 절반이다. 네덜란드(26.7%), 영국(23.1%), 독일(17.3%), 미국(12.3%, 2018년), 일본(11.7%) 등에 비하면 매우 낮다.*

* OECD, MSTI 2021-March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에는 대학을 비롯한 국내 연구자의 기본적인 연구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기본연구’ 사업이 있다. 2019년에는 3,384건의 신청 중 1,711건이 선정되었고, 2020년에는 4,242건의 신청 중 1,767건이 선정되었다. 각각 50.6%와 41.7%의 선정 비율로, 기초연구사업 중 개인연구 프로그램의 평균 선정비율인 33.7%(2019년)과 35.1%(2020년)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가능한 많은 연구자에게 연구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선정 비율로 많은 과제를 지원한다 할지라도 ‘경쟁적 경비’의 속성상 연구자가 원하는 주제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기본연구’ 사업 수행과제에 대한 평가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연구 수행 자체가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적 경비는 연구 수행 중 일반적으로 특정시기에 일정한 성과를 제시해야 하고, 특히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일본, ‘기반적 경비’ 축소로 인한 부작용 겪어

일본은 과학기술기본법 제정(1995년) 이후 제1차(1996-2000)부터 제5차 (2016-2020)까지 5개년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행하면서, 매년 대학의 ‘기반적 경비’를 1%씩 삭감하고, 반면에 ‘경쟁적 경비’의 비중을 증가시켜왔다. 그 결과 대학 연구비의 감소로 인해 연구자가 원하는 연구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연구자들로 하여금 ‘경쟁적 경비’를 집행하는 일본학술진흥회(JSPS)로의 연구비 신청을 과도하게 증가하게 하였고, 평가자의 평가부담 가중과 연구자들의 행동변화에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예컨대, 단기적 성과를 강하게 지향하는 연구자가 상당히 증가하고, 확실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연구를 선호하는 연구자 또한 증가하였다. 이에 더하여 평가대응을 위해 논문 등 연구 성과를 쪼개어 발표하는 연구자가 증가하는 한편, 장기적인 연구전략을 중시하지 않는 연구자가 확대되었다. 점점 연구자들은 창의적·도전적 과제를 회피하기 시작하였다. 대학의 ‘기반적 경비’ 축소로 인하여 창의적·도전적 과제가 감소하고, 안정적·지속적 연구체제가 흔들리게 되며, 장기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연구자가 사라져가는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대학의 자율적인 연구비를 확대하는 정책으로의 전환 필요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주·항공 등 거대과학 분야의 연구와 연구센터 및 분야별 사업단의 대형과제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기초·원천연구 분야에서 창의적·도전적인 연구 과제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개별연구자를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미국경제개발위원회(1998), 미국의 기초연구

정부·민간 부문을 합쳐 연구개발(R&D) 투자가 처음으로 100조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나라는 연구지원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기획하고 혁신할 필요가 있다. 가시적이고 ‘돈’이 되는 기업중심의 연구와 산학협력을 통한 응용·개발연구를 강화하는 방안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초·원천기술과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대학중심의 ‘기초연구’에 많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연구지원기관을 통한 ‘경쟁적 경비’ 지원 외에 ‘기반적 경비’와 같이 대학의 자율적인 연구비를 확대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초원천연구의 핵심거점인 대학의 연구 활성화를 촉진하고, 창의적·도전적인 연구 과제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연구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아카사키 교수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적은 연구비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연구 환경 조성을 통해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세계적 난제를 해결하고 탁월한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한진 한국연구재단 국책사업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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