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호 포커스 人

무사히 싹 틔운 새 지원체계
“더 단단한 안착에 주력할 것”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자연과학단
이준엽 단장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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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이 추진 중인 ‘수요자(연구자) 중심 학문별 지원체계’가 연구현장의 호응 속에 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학문별 지원체계는 해당 분야의 상황과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구체계와 발전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지난해 수학 분야에서 시작된 시범사업은 올해 자연과학 4개 모든 분야를 포함한 6개 분야, 내년에는 기초연구본부 모든 연구 분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준엽 신임 자연과학단장 역시 학문별 지원체계의 안착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꼽고 있습니다.

수학의 즐거움

이준엽 신임 자연과학단장은 수학자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치해석학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효율적인 알고리즘 설계와 고속 계산 기법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그는 원래 물리학도였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에서 수학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며 탐구의 경로가 바뀌었습니다.

Q단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인 수치해석학을 소개해주세요.

수치해석학은 대중에게 다소 낯선 분야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삶의 영역 대부분에서 과학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해지며 그의 기반이 되는 수치적 접근과 계량화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치해석학은 이런 복잡하고 추상적인 고난도의 수학 문제들을 컴퓨터가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도록 계산 도구를 제시하는 학문입니다. 이와 함께 컴퓨터가 내놓는 숫자들이 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고 증명합니다.

Q물리학을 공부하다 수학자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KAIST 재학 시절 수학문제연구회라는 동아리의 초대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것도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면 흥미가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저와 동아리 친구들 모두는 입시라는 고행의 속박에서 벗어나 수학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재미를 맘껏 즐겨보자는 분위기였지요. 카드놀이도 하고 생활 주변의 수학 문제를 찾아 풀어보기도 하면서 점점 더 수학의 재미에 빠져들다가 결국 유학을 가며 전공을 바꾸게 됐습니다. 저를 수학의 기쁨으로 안내한 수학문제연구회는 벌써 30년을 훌쩍 넘게 되었네요. 모임이 그렇게 오래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수학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증거겠지요.

Q카드놀이에서 수학 원리를 생각해보곤 하셨다니 수학자 존 내쉬와 게임이론을 유명하게 만든 ‘뷰티풀 마인드’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저도 보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수학자는 유별난 사람이란 고정관념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그보다는 수학이 생각보다 우리 일상 속에서 훨씬 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중적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누구나 수학에 친숙해져야 하고 또 친숙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입시에 짓눌려 수학을 어려워만 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카오스재단에서 하는 수학 동영상 강연의 경우 의외로 동시 접속자 수가 만 명을 넘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지요. 수학에 관한 대중적 인식전환을 위해서는 연구자들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수학을 비롯한 기초과학 분야는 특히 지속적인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국민적 지지가 필요한 만큼 대중강연 등의 접점을 통해 연구 목표와 성과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2023년 이후의 길잡이”

‘연구자 중심 R&D’는 최근 수 년 간 국가연구개발 정책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R&D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개발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정부와 학계를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연구재단 역시 ‘수요자 중심’과 ‘학문별 특성’의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혁신하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자연과학단이 시발점이 된 수요자 중심 학문별 지원체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Q수학 분야에서 시작된 수요자 중심 학문별 지원체계가 긍정적인 평가 속에 올해 2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지난 시범사업의 성과와 전망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를 비롯해 일선의 많은 수학자들이 새로운 지원체계의 방향성에 대해 크게 공감했고 의견 수렴 역시 폭넓게 이뤄졌습니다. 가장 호응이 컸던 부분은 역시 수학계의 상황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아는 수요자들이 스스로 필요에 맞게 연구 지원 체계를 구성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과거의 지원체계가 사업과 과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새로운 지원체계는 사람과 연구내용을 세심히 고려해 개인연구, 집단연구, 기반연구 등을 설계하고 각 연구자의 생애주기별 연구지원 방식에 변화를 주는 형태입니다. 지난해 수학 분야 1단계 시범사업에 효과는 충분히 확인됐고 이제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자연과학단 전체로 확대하는 2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또 그에 따르는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며 사업이 장기적으로 순항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현재 자연과학단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Q연구현장을 떠나 재단 자연과학단장에 부임하며 특별히 계획하신 목표가 있으실까요?

첫 번째는 역시 수요자 중심 학문별 지원체계의 안착입니다. 2023년 이후 기초연구 전반의 지원 체계와 자율적인 연구문화 조성의 길잡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이제 우리나라도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40여 년의 역사를 갖게 되며 연구개발 사업의 기획·평가·관리·활용 전반에 걸쳐 상당히 많은 자료가 축적되었습니다. 연구재단에서도 이들 정보를 정제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해 연구 생태계의 변화 과정을 분석하려는 작업이 한창인데요. 수요자 중심 학문별 지원체계 시범사업의 경우처럼 자연과학단이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오랜 역사와 분석이 용이한 안정적인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란은 혁신의 과정”

이 단장은 삶의 목표가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만큼 독서를 좋아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독서를 즐기고 일이 없는 주말에는 앉아서 이 책, 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요즘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캐나다 작가 라이언 노스의 <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건설 가이드>입니다.

Q어떤 내용의 책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타임머신 시간여행이란 설정을 통해 인류문명사를 정리하고 있는 책입니다. ‘생존밀착형 과학지식’이란 출판사의 소개처럼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발상이면서도 내 연구가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최종 완제품에서 내가 만든 부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지 못하는 노동자처럼 연구자 역시 자신의 연구가 세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인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내 학문의 위치와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Q복잡다단한 업무 속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자신만의 해결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수학자이기 때문에 수학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갑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원천이 내 손이 닿지 않는 사회적 갈등이나 개인적 신념에 관한 문제라면 삶은 고행의 연속이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쁘지는 않더라도 일단 주어진 여건을 인정하고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Q끝으로 연구자와 재단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저 역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생각해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기본적으로 연구자를 위한 법입니다. 연구자가 불필요한 행정부담을 줄이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부처별 연구개발 관리규정을 통합하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연구자의 자율적인 연구환경 조성이 핵심인 것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율성의 전제가 되는 연구자의 책임성 확보를 위한 사항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도 되는 일과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관행이 보다 분명히 정리가 된 것입니다. 과거 관행이라고 불리던 잘못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큰 전환기인 만큼 법 시행과정에서 얼마간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문관리기관인 연구재단과 수요자인 연구자의 이해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bout the Interviewee 이준엽 자연과학단장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수치해석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대 쿠란트 연구소를 거쳐 199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공계중점연구소인 수리과학연구소 소장, 한국산업응용수학회 부회장, 2014 세계수학자대회 집행위원, 2023 세계산업응용수학대회 유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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