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 신진연구자 “톡”

옷(衣) 한 벌에 시대와 환경,
기능과 예술을 담다

충북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한현정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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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학은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인 ‘의(衣)’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연구 대상도 옷에서 신발, 선글라스, 모자,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패션 산업의 영향으로 감각적인 디자인과 소재 선택이 의류 개발의 대명사로 인식되지만, 그 기반에는 인간공학적 설계와 패턴 개발 등 다양한 전문 영역이 존재합니다. 한마디로 가장 전통적인 것과 미래지향적인 가치가 융합된 연구 현장이죠. 한현정 박사는 사용자 체형분석을 바탕으로 패턴과 치수체계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기획과 개발을 통해 의류연구에 시대와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시대와 환경, 사용자의 평가를 옷 한 벌에 담기 위해 기능성과 심미성, 기술과 예술의 균형을 추구하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part1. 연구자의 길

직접 개발하신 다양한 인체모델이 눈에 띄는데요. 의류학과 메디컬/스마트 웨어러블의 만남이 이색적입니다. 박사님의 주요 연구 주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 연구의 중심 키워드는 인간공학적 의복 설계와 ICT가 융합된 스마트 웨어러블 제품 및 메디컬 의류 개발 등 입니다. 여러 분야 전반에 필요한 의류 제품의 인간공학적 설계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평가하는 일이 저의 주요 관심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치수체계 설정을 위한 의복구성학적 체형분석, 사용자경험(UX)평가, 대량 생산에 적합한 패턴설계법 개발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어요. 현재는 3D 프린팅과 모델링을 활용한 휴먼 모델(Human Model) 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더불어 ICT를 의류에 접목한 스마트웨어, 장애우와 환우를 위한 인체교정용 의류와 같은 매디컬 웨어, 생리대 같은 의약 외품, 군복과 환자복 같은 유니폼 등 다양한 의류제품 설계연구와 UX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자의 삶을 택하게 한 의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연구자로 성장해 온 과정도 소개해주세요.

의류학은 사용자의 착용환경과 필요를 분석하고, 심미적·기능적 요소를 고려하는 동시에 생산 효율과 생산자의 이윤까지 반영하는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점이 매력이죠. 저는 시대 혹은 소비자와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 개발과, 상품기획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박사 논문의 주제는 성인 여성의 체형, 사이즈 분석을 바탕으로 한 ‘성인여성 체형별 3D 표준모델 구축’이었는데요. 당시 의류에 IT 기술을 접목한 가상착의가 이슈화되는 것을 보며, 실제 의류제품 개발의 기본이 되는 모델(드레스폼, 아바타 등)의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박사 학위 취득 후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군복과 메디컬 의류, 스마트 웨어러블 제품 등 다양한 국책과제를 수행했는데요. 당시 병원, 의류업체, ICT 전문가들과 협력연구를 추진하며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상용화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논문발표와 더불어 특허 등 지식재산권 확보, 기술이전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요가 적은 의료용 특수복 등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연구를 많이 수행하셨어요.

특수대상인 환우, 장애우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의복 등은 수요가 많지 않아 이윤을 생각해야 하는 기업이 직접 개발하기엔 어려움이 많아요. 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연구죠. 2018년 충북대 생활과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고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보다 공적인 영역인 아동, 노인, 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안전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어요. 지난 2년은 뇌성마비 환아의 탈구를 예방하는 메디컬 의류를 개발하고, 올해는 연구재단의 세종과학펠로우쉽 지원사업을 통해 ICT가 융합된 아동용 머리보호구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최근 미래산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자율주행자동차, 전기자동차, 우주항공산업도 그 시작은 어떤 연구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었고, 당장은 상용화가 힘든 기초연구를 시작으로 또 다른 연구자의 지속된 연구 수행을 통해 현재처럼 큰 수익을 창출하는 큰 산업군이 된 것은 아닐까요? 이처럼 특수복도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고, 성공과 실패의 기술DB가 확보되면 궁극적으로 새로운 산업 수요가 발생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하리라 기대합니다.

part2. 내가 하는 연구는?
유아동용 스마트 소프트 헤드프로텍터 개발

올해부터 재단의 세종과학펠로우십 지원사업을 통해 ‘어린이케어 IT기술을 적용한 유아동용 스마트 소프트 헤드프로텍터 개발'을 수행 중이신데요.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난 연구에서 뇌성마비 환아를 위한 특수복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어요. 당시 병원에서 직접 환자의 치료 모습을 관찰하며 아동기의 뇌손상이 개인은 물론 가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보호구 개발을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남자 조카가 3명 있는데요. 함께 놀이터에 가면 킥보드, 자전거, 놀이기구 등 위험한 요소가 정말 많아요. 언론을 통해서도 사고 소식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고요. 하지만 정작 놀이터에는 머리보호구를 착용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어요.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들은 불편하단 이유로 착용을 꺼리고, 보호자는 이동 시 아이도 챙겨야 하고 기본적인 짐이 많은데 머리보호구는 부피가 커서 휴대와 보관이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최근에는 공유 킥보드의 헬맷 착용이 의무화되며 성인용 머리보호구의 휴대성과 보관성 향상에도 사회적 관심이 많은 만큼 연구에 임하는 책임감도 큽니다.

스마트 소프트 머리보호구 개발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동용 3D 가상/실제 휴먼모델 발표 포스터

생활 및 야외 활동에서 유아동을 위험요소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어린이케어 IT기술과 보관성·휴대성을 접목한 머리보호구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안전성과 패션성 확보는 기본으로, 체온변화, 실종, 낙상과 같은 활동 시 위험요소를 감지하여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어린이케어 IT기능을 적용하고자 해요. 여기에 이동성과 보관성을 가미한 제품, 나아가 핸드폰 하나로 보호자가 아동의 정보를 확인하고 위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최종 목표인 상용화를 위한 단계적 연구개발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연구가 기존 머리보호구 개발과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머리보호구를 비롯해 특수환자용 의복과 같은 메디컬 의류는 지금까지 의류학이 아닌 의학분야에서 주로 연구가 진행됐어요. 또한, 기존의 머리보호구는 단순 머리보호 기능을 가진 섬유제품 혹은 GPS 애플리케이션 한 가지 기능에만 초점을 두어 실제 소비자의 요구와 편의를 충족시키기 어려웠어요. 시중에서 인지도가 높은 제품도 대부분 미국, 유럽제품이었고요. 하지만 서양인의 두상과 한국인의 두상은 형태와 크기에서 차이가 나요. 더구나 치수적합성은 안전성과도 밀접합니다. 따라서 저는 기존의 연구에 의류학적 개념을 더해 사용자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특히 소프트한 재질을 사용해 휴대성과 이동성, 보관성을 높인 것이 특징인데요. 한국인의 두상을 반영한 표준화된 머리 모형 개발에서 출발해 디자인, 착용감과 기능성을 종합적으로 구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스마트 머리보호구 개발은 의류학뿐만 아니라 소재선택, 모듈과 어플리케이션 개발 등 다양한 요소의 결합에서 성패가 좌우될 것 같아요.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올해는 연구 1차년으로 아동용 헤드 모델 개발을 선행하고. 이를 기본으로 하여 좋은 디자인 패턴을 만들고자 해요. 현재 아동의 머리치수 분석을 통해 머리둘레와 형태를 도출해 9개 치수 체계를 선정하여 헤드 제품 개발에 근간이 되는 3D Virtual/Printing Fitting 모델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저의 주요 연구분야가 아닌 분야, 예를 들면 어떤 종류의 충격흡수폼을 선택하고 이를 얼마만큼의 두께로 어느 부위를 보강할지, 그리고 위험요소 감지 센서와 인체 신호 분석 등의 기술은 분야별 전문가와 소통하며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대학과 국책연구원은 물론 소규모 전문 업체 등에 우수한 연구진과 좋은 기술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과 협력하여 좋은 기획, 설계. 제품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소프트한 재질로 휴대성 및 착용성을 높이는 머리보호구는 지금까지 없던 제품이기에 새로운 소재로 얼마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직 없어요. 기존의 단단한 안전모의 평가 기준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요. 이런 난관이 해결되고 상용화 연구까지 프로세스가 이어져 국민의 안전에 이바지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art3. 나의 원동력, 나의 경쟁력

의류연구자는 굉장히 다양한 자질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박사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적극적이고 열린 사고죠. 앞서 이야기했듯 의류연구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중요해요. 감사하게도 패션산업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다양한 협업연구의 기회를 가졌어요. 지금도 ICT, 메디컬, 섬유 관련 국내외 박람회부터 세미나, 학회 등 저의 연구와 연결고리가 있는 곳이라면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현재의 연구 트렌드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고 해요. 또한, 논문이나 전문서적을 보다가 제 연구와의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저자에게 직접 연락드리고 공부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자산을 쌓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노력도 연구재단의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박사님이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요?

메디컬 의류의 효율성과 기능성을 높이는 연구를 지속하여 환우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특히 메디컬 웨어는 다양한 병증에 대한 인체 모델 개발이 필요해요. 일례로 뇌성마비 환자의 경우 일반인 모델과 다르게 뼈의 위치도 중요하죠. 또한 건강한 성인은 자기 의사표현이 명확하지만 뇌병변 장애를 겪는 어린이나 치매환자는 자기표현이 어려워 개발 제품의 정확한 평가에 애로가 많아요. 때문에 연구 대상의 인체 모델 개발을 선행하여 제품 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특수 대상(환우, 장애우 등) 의류 개발을 위한 휴먼 모델을 더 세분화하여 개발하고, 제안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의류학자들이 본 모델을 활용하여 더 발전된 의류제품을 설계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의 길을 추구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의복구성 연구자는 여러 산업군을 이해한 뒤, 기존 제품에 더하고 더해서 개선하는 연구를 많이 수행해요. 특히 요즘은 여러 기술들을 웨어러블화 하는 연구가 많아, 다학제간 협업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기심과 아이디어를 현실로 확장하는 추진력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해요. 다이빙복을 개발할 때는 다이빙을, 수영복을 개발할 때는 수영을, 체형보정의복을 개발할 때는 발레, 요가를 체험하며 사용자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것을 고민하는 호기심, 적극성, 추진력을 키워야 해요. 특히나 융합연구, 공동연구의 경우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 연구 분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장점을 조합하는 추진력이 중요한데요. 의류학 안에서도 설계, 소재 등 다양한 영역이 결합해야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어요. 더불어 현장에는 진짜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유튜브로 접하는 정보도 유용하지만, 직접 박람회 현장을 찾아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느끼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이 작성한 분기별 보고서 등을 읽으면 트렌드를 반영한 연구와 기획에 도움이 됩니다.

신진연구자로서 연구재단에 전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도 들려주세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신진연구자들의 연구 결과가 사회에 환원되기까지, 상용화 등 다양한 후속연구가 필요합니다. 세종과학펠로우십 지원사업이 신설되며 비전임교원의 안정적인 장기연구가 가능해졌어요. 저 역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큰 혜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진과제 수행 후 후속지원을 받지 못하고, 전임교원도 되지 못해 연구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처럼 장기플랜으로 신진연구자의 후속연구를 지원해준다면 연구자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수확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재단의 다양한 지원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지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분들을 위해 연구재단에서 과제 지원을 멘토링 해주는 제도가 신설되면 좋겠습니다.

epilogue

한 해 동안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 들녘의 오곡백과가 결실을 이루는 가을입니다. 한현정 박사는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되어 가꾸고 쌓아가는 것임을 알기에 들판의 농부처럼 지금 이 순간과 이곳이,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과 무대가 되도록 열정으로 빚고 있습니다.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2018.4~현재

충북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의류학전공) 전임연구원

2014.7~2017.6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연구개발본부 선임연구원/팀장

2006.6~2018.6

울산대학교 의류학전공
외래강사

2013.9~2014.9

F&P FACTORY
(패션 & 패턴 연구소) 대표

2009.3~2014.2

울산대학교 의류학과
박사학위 취득

연구모음zip
  • 어패럴산업을 위한 20-30대 한국 여성의 체형별 3D 표준아바타 개발
  •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을 위한 슬리브 패턴 공정 및 구조 정의 개발
  • 3D스캔 패턴 개발을 적용한 중년 여성의 수영복 패턴메이킹
  • 한국 여자 군인 방한복의 인간공학적 패턴 개발 및 평가

내 인생의 책

<심플하게 산다>를 읽으며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진짜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경험’입니다. 현재라는 시간을 누리지 못하면 미래의 시간도 누리지 못해요. 중요한 것은 시간의 질이고요. 지금 하는 일이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차곡차곡 쌓이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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