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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와 토양의 화학반응을 읽으면
지구환경이 보인다
충남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정희원 조교수

물과 토양은 사람이 살아가는 토대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 속에서는 지하수와 암반, 토양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진행 중입니다. 지하수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흡착, 용해, 침전과 같은 다양한 지화학 반응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이들 수리지화학적 반응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결정하고 식물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지금까지의 수리지화학 연구가 광역적인 지하수의 흐름과 수질 양태를 평가하는데 집중했다면, 정희원 교수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의 지하수 흐름과 지화학반응을 분석합니다. 수리지화학 연구는 비로소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큰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PART 1.연구자의 길

정희원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지화학반응을 연구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주요 연구주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땅속 미세규모에서 일어나는 물과 암석의 화학적 반응을 연구해 현재의 환경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단서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토양은 수많은 미생물과 다양한 식물들이 사는 거대한 생태계입니다. 토양은 암석과 지하수가 풍화 작용이라 불리는 화학적 상호작용을 오랜 시간동안 일으킨 결과물인데, 이 과정에서 생성된 용존 물질들은 토양에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인입니다. 따라서 암석이 시간이 흘러 어떻게 변화될지 알면 생태계 변화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풍화 반응은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를 소모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화학적 풍화 반응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어려워 정확성이 매우 낮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지화학적 반응 평가의 정확성 향상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희원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은 지구촌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로서 지질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학문적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지구환경과학과에 진학한 게 가장 현실적인 계기라 할 수 있어요.(웃음) 학창시절에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과학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에 더 호기심이 많았어요. 사실 대학 1학년 때는 전공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해 이중전공으로 사회학을 택했는데, 사회학에서 다루는 환경과 기후변화 같은 주제들이 전공인 지질환경학과도 연계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지질환경 연구가 이러한 사회현상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고, 나아가 대안을 모색하는 근거가 되었죠. 아이러니하지만, 사회학을 배우며 전공도 관심과 흥미가 생겼고, 연구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정희원

독립연구자로 교수님의 연구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학원에서 진학해서는 제주도 서쪽 고산 지역의 지하수질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고산은 화산섬 제주도의 청정성과 농경활동으로 인한 오염, 그리고 해수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환경이에요. 이러한 영향들이 계절별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박사 과정은 미국 콜로라도광업대학(Colorado School of Mines)에서 공부했는데요. 당시 물과 암석의 화학적 풍화반응을 실험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계산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 제가 하고있는 연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조지아대 해양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해저퇴적층에서 미생물들이 어떻게 메탄을 제거하는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PART 2.내가 하는 연구는?

정희원

연구재단 신진연구지원사업을 통해 <보존성/반응성 추적자 시험을 통한 불균질 다공성 매체의 유효표면적 정량화> 연구를 진행 중이신데요. 어떤 연구인가요?

땅속 물과 암석 사이에서 나타나는 흡착과 용해 같은 다양한 지화학반응을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그 첫 단계로 지화학반응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광물의 유효표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중환경에서 물은 광물과 광물 사이에 존재하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한 틈을 따라 굉장히 복잡하게 흐릅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물이 접하게 되는 광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구요. 광물이 다르면 일어나는 화학반응도 달라지죠. 이처럼 복잡한 땅속 환경에서 나타나는 반응과 그 영향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요. 광역적 연구에 집중되었던 그 동안의 연구기법으로는 매우 작은 규모에서 나타나는 불균질성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나타나는 물의 흐름과 화학적 반응을 관측할 수 있는 미세유체실험 기법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지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광물의 유효표면적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정희원

물과 토양의 관계를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평가하는 연구방법과 과정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큰 규모에서 지하수의 수량적인 측면, 오염물질이 어떻게 퍼지는지에 대해 많이 연구가 되었는데요. 이 경우 매우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지화학적 반응들은 대부분 단순화 시키게 되요.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거죠. 제 연구는 미세 규모에서 일어나는 물의 이동과 지화학반응 관측을 위해 실제 자연매체를 모사하는 미세유체실험을 통해 진행됩니다. 반도체 제작 기술을 암석에 적용해서 땅속에서 물이 흐르는 환경을 실험실에서 모사하고 물의 흐름과 지화학 반응을 현미경으로 관측합니다. 그리고 관측 정보를 이용해 컴퓨터로 모델링하고 해석합니다. 실험과 관측자체는 굉장히 작은 규모에서 이루어지지만, 해석을 통해 큰 규모로 확장할 때 어떻게 영향이 있는지를 평가하고자 합니다.

정희원

미세유체실험을 지화학반응 관측에 적용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습니다. 도전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연구임에도 화학반응을 관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에 녹아 나오는 용존물질을 분석해야 하는데 규모가 워낙 작아서 기존 방식으로는 관측과 분석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분석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광물의 용해에 따라 나타나는 부피의 변화를 현미경으로 관측해 정량화하는 방법과 화학반응에 따라 형광을 내는 물질을 이용한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미세유체실험을 설계하고 진행하려면 지질학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물리학, 재료공학과 반도체 관련 다양한 지식이 요구됩니다. 전공분야 외의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저 혼자 다 할 수는 없어요. 따라서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노력과 타분야 연구자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희원

일련의 연구 성과가 우리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까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이슈입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차원에서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땅속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방법입니다.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할 경우 누출의 우려가 있는데요. 제가 진행하는 물·암석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지화학적 반응의 정량적 평가는 이산화탄소 지중저장과 같은 대형프로젝트의 안정성 확보와 장기적인 관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불균질한 지질매체의 유효표면적 추정 기법을 통해 지하수 내 오염물질의 거동평가를 할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지중처분과 같은 폐기물 처분장의 장기적 안정성의 예측 및 평가의 정확도 향상에 기여하고, 향후 처분장 부지 선정 및 안전관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리란 기대입니다.

PART 3.나의 원동력, 나의 경쟁력

정희원

연구를 잘하기 위한 교수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하루에 한 글자라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논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데이터가 나오고 해석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기 때문에 연구 템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쁘다고 데이터를 쌓아놓으면 정보와 단서를 놓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은 하루에 꼭 한 글자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매일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규칙적인 운동과 취미생활을 위해 노력해요. 실험도, 코딩도 한번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도 하고 일에 점점 매몰되기 쉬워요. 결국 장기적으로는 효율이 저하되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연구를 생각해보면 활력도 더해지고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정희원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서 앞으로 10년간 꼭 해결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연구자로서의 꿈도 들려주세요.

사실 지금 진행하는 신진연구자 과제가 굉장히 오래 구상하고 준비했던 주제입니다. 제가 세운 가설로 평가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임용 후 본격적으로 실험실을 꾸리는 단계인 만큼 지금 연구에 집중하면서,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이번 연구는 아주 작은 규모에서 진행되고 무생물 반응만 관찰하지만, 다음 연구에서는 실험의 규모도 넓히고 미생물도 추가해서 보다 다이내믹한 반응에 관해 연구하고 싶습니다.

정희원

신진연구자로서 연구재단에 바라는 바도 이야기해주세요.

많은 신진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면서도, 연구분야별 특성을 반영하는 좀 더 유연한 지원방향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분야에서 학제 간 융합이 시도되고, 공동연구와 협업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논문의 참여도와 평가에 대한 제도적 개선도 논의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평가시스템에서는 논문의 제1저자, 교신저자 등 논문 참여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연구주제에 대한 관심만으로 협업하는데 현실적 제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PART 4.내 인생의 책

기억에 남는 책들이 많은데요. 철학적 측면에서 삶의 의미를 소개 한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란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습니다. 과거 신의 시대에서 실존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신의 중요성이 작아졌습니다. 이제 신의 빈 공간을 사람들, 즉 자신이 채워야 합니다. 예전에는 신이 삶의 이유를 찾아줬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야 해요. 이 책을 읽으며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로와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들도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찾는 계기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PART 5.신진연구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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