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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에서 실용화로”
뇌 연구 전성시대
한국연구재단 뇌·첨단의공학단 김형규 단장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우주개발과 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는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 민간의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세계 과학계의 거대한 도전 과제인 ‘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감치 뇌 연구를 국가적으로 지원해온 미국, EU, 일본보다 다소 늦었지만 우리나라 역시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뇌 연구를 지원하며 본격적인 뇌의 시대를 준비해 왔습니다. 지난 5월말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총 4,500억 원 규모의 ‘뇌과학 선도융합 기술개발 사업’(2023~2032)은 그간의 오랜 노력을 실용화라는 한층 가시적인 모습으로 구체화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형규 신임 뇌·첨단의공학단장은 이 사업의 주춧돌을 마련해야 할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기억·학습과 시냅스

지난 5월 새로 부임한 김형규 뇌·첨단의공학단장은 우리나라의 1세대 신경과학자인 서울대 강봉균 교수의 첫 제자입니다. 서울대에서 신경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충북대 의과대학에 재직하며 오랜 시간 뇌 신경세포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학습과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데 몰두해 왔습니다.

웹진 독자들을 위해 단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를 소개해주세요.

학습과 기억의 분자세포생물학적 기전인 시냅스 가소성(synapse plasticity)을 연구하였습니다. 박사 학위 기간 동안에는 시냅스 가소성과 관련된 단백질을 분리하는 연구를 수행하였고 박사후연구원 기간과 한국 귀국 초기에는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지역단백질 발현을 위한 mRNA 이동과 이와 관련한 모터단백질, RNA 결합단백질 등을 연구했습니다. 이후에는 시냅스 가소성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의 역할을 연구하게 되었고, 시냅스 가소성에 따른 학습과 기억의 변화는 결국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결국 동물 행동연구로도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지요.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파킨슨병의 새로운 치료법, 질병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치료제(disease-modifying treatment)를 개발하는 연구를 새롭게 시작해 신약재창출법(drug repositioning)으로 치료약물을 분리하는 전략과 새로운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란 두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뇌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에 매진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전공분야인 생물 분야의 경우 대부분 학창 시절의 연구주제가 세부전공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 역시 대학원 때 신경과학에 몸 담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제 지도교수인 강봉균 교수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경과학자 중 한 분으로 장기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새로운 유전자와 조절 메커니즘 발견 등으로 세계의 뇌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온 국제적인 뇌과학자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젊은 나이에 임용된 뒤 처음 실험실을 꾸리실 때는 매우 생소한 연구 분야인 까닭에 지원하는 대학원생이 드문 상황이었지요. 저 역시 다소 우연한 계기로 강 교수님의 신경생물학연구실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지금과 같이 신경과학자로 성장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신경과학을 접하지 못했다면 일찌감치 학업을 중단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신경과학이 호기심과 열정을 자아내는 새로운 세계였던 것이지요.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시는 건 어떠세요?

아무래도 익숙했던 생활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교수일 때는 자주 접하지 못했던 전국의 연구자들, 정부 부처 관계자, 연구재단 동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무척 낯설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한결 많이 극복한 상황입니다. 연구재단의 다른 단장님들과도 이런 낯선 환경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다들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 아무래도 주말에는 여유시간을 찾으며 재충전을 한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가능한 휴일에 멀리 나가기보다는 집에서 잘 쉬고 가벼운 운동으로 새로운 한 주에 대비하곤 합니다.

새로운 전기 맞는 뇌 연구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뇌과학 선도융합 기술개발 사업은 그간 우리나라가 축적해 온 뇌과학 분야의 기초연구 역량을 토대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선도융합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뇌 기능·질환 시각화 기술, 개인 맞춤형 비침습적 뇌 피질 자극 기술, 신경망 제어 뇌질환 치료 기술 등 연구자 수요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산업계의 즉시 활용이 가능한 연구개발 과제들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최근 예타를 통과한 뇌과학 선도융합 기술개발 사업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번 사업은 국내 뇌과학계의 숙원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한 이후 매 10년마다 뇌연구촉진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단계적으로 뇌 연구를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제1차 기본계획은 뇌연구의 태동기로 기초연구 기반 조성을 위한 중점 지원이 이뤄졌고, 2008년 제2차 기본계획부터는 다학제간 융합과 산학연 협력 등의 기반 구축 등을 지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의 뇌 연구는 SCI 논문 수 27배, 특허 등록 수 연간 92건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특히 뇌 연구의 핵심인 석·박사 인력이 2020년 128명으로 크게 증가하였지요. 하지만 뇌 연구 분야의 최초 국책사업인 뇌과학원천기술 개발 사업이 2020년에 일몰되며 동력이 떨어질까 걱정이 많던 참에 이번 사업으로 다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높습니다.

이번 사업의 지원 범위는 어떻게 되나요?

뇌 연구는 특히 전형적인 융합과학의 성격을 갖습니다. 생물학·공학·심리학·의학 등의 모든 연구 방법이 총동원되고 있는 분야이지요. 크게는 뇌의 신경생물학적 구조·인지 사고·심리 등을 연구하는 뇌과학, 뇌의 기능적 결함·노화 등으로 인한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예방하는 뇌의약학, 뇌의 정보처리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뇌공학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이들 뇌 연구 분야 전반에서 빠르게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뇌 연구 전반에서 복잡한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을 융합하여 활용 가능성이 높은 국가 핵심 역량을 발굴한다는 게 이번 사업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사업인 만큼 준비에 노고가 크실 듯합니다.

이번 사업은 과제 초기 단계에서부터 연구 성과의 산업계 활용을 위한 밀착 지원이 추진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초적인 뇌 연구와 크게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원천 기술 위주의 연구에서 사업화 직전 단계까지 뇌 연구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새로운 차원의 기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사안들이 매우 많아 마치 폭풍 전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산·학·연 전문가, 의료계, 기술 투자자 등의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하는 ‘성과컨설팅 위원회’를 구성해 개별 과제의 연구 성과들이 산업계, 의료계 등에서 즉시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초기 단계부터 밀착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초에서 응용까지

뇌·첨단의공학단은 이름처럼 뇌 과학, 의학, 공학과 첨단의료기술을 포괄하는 R&D 지원 조직입니다. 뇌의 기본적인 이해를 위한 뇌신경생물,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하는 뇌인지, 뇌질환과 뇌공학까지 기초와 응용 연구개발 전반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과 범부처 의료기기 국산화 사업, 인공지능 및 뇌질환 빅데이터 사업과 함께 한국의 초고령 사회 진입에 대비한 퇴행성 뇌질환 연구와 치료법 개발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연구도 중요한 지원 영역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뇌질환 관련 사회적 비용은 매년 11%씩 증가해 2025년 33조 7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뇌과학 선도융합 기술개발 사업 외에도 많은 일들을 맡고 계신데요. 뇌·첨단의공학단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원 사업들을 소개해 주세요.

현재 저희 뇌·첨단의공학단이 추진 중인 사업으로는 뇌과학원천기술사업, 뇌질환극복사업, 미래뇌융합기술개발사업, 뇌기능규명조절연구사업,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질병중심중개연구사업, 혁신형의사과학자 공동연구사업, 인공지능 바이오로봇의료융합기술개발사업 등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뇌공학을 활용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존 의학의 패러다임을 뛰어넘게 될 전자약, 디지털 치료제 분야의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전자약기술개발사업, 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초-임상 연계 중개연구사업, 융합한의학기술개발사업과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등도 기획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의료 기술은 인구 고령화와 소득증가에 따른 웰빙 수요 확산 등에 따라 향후 더욱 급속한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선 선진국들과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품목이 아닌 새로운 것을 개발해 신시장을 개척하거나 신개념의 첨단 융복합 의료기술과 기기의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의료기술과 달리 더욱 복잡하고 다양화되며 여러 기술이 융합되는 특성의 첨단 융복합 의료 기술 개발을 위해 정보통신기술(ICT)과 4차산업혁명의 핵심 요소인 빅데이터, AI, IoT 등을 결합시키는 진단, 치료, 헬스케어 기술과 기기 개발 지원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기초연구와 함께 산업적 응용까지 염두에 두고 사업과 과제들을 준비하시자면 2년의 임기는 무척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요. 단장님께서 뜻하고 계신 바를 들려주세요.

무엇보다 내년 새로 시작되는 뇌과학 선도융합기술사업이 원활히 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지상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뇌과학은 복잡한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을 융합하여 연구를 하므로 그 범위가 넓고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수월성뿐만 아니라 공정성, 미래 파급효과가 동시에 만족될 수 있도록 사업을 기획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10년 뒤의 훗날, 우리나라가 뇌과학 분야의 초격차 선도융합기술로 새로운 국가적 핵심역량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지렛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웹진을 통해 연구자와 재단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년에 당장 큰 사업이 추진되어야 하는 만큼 요즘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또 늘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새로 부임한 단장으로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늘 고군분투하는 재단 구성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과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연구현장에서 불편해 하는 과도한 지침과 규정 등의 걸림돌들을 개선하는 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밖에서 보는 연구재단과 지금의 저처럼 안에서 보는 재단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지켜본 연구재단은 늘 연구자 편인 것 같습니다. 연구자 여러분께서도 늘 연구재단을 믿고 연구에 충실하셔서 좋은 연구 성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About the Interviewee
김형규 뇌·첨단의공학단장

중앙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신경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냅스 가소성의 분자기전과 파킨슨병 치료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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