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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일!
한국연구재단 사회가치전략팀 박귀순 선임연구원

‘불혹’과 ‘지천명’의 한가운데, 그 속에서 ‘어떨까?’라는 기대와 ‘어쩌지...’하는 두려움을 잔뜩 짊어진 채 미국으로 방문연구를 떠났던 그 당시가 떠오릅니다.

주위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주관이 선다는 나이 불혹이자 세상의 보편적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는 지천명을 앞두고 있지만 비행기 안에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를 완독한 후에도 여전히 40대의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더군요.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아직 저라는 사람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인데다 매일 같이 오늘 하루를 반성하며 퇴근하는, 그런 혹하는 40대이기 때문입니다.

학부에서 박사까지 공대생으로 10년, 그리고 재단에서의 14년...‘총 24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쁜 딸아이가 살아온 인생의 2배가 되는 시간을 지금껏 과학기술이라는 바다 속에 흠뻑 빠져 지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초연구본부 융합연구단에서 근무하며 다학문 간의 조화를 위한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 새로운 사업도 기획해봤습니다. 관련 논문과 특허를 내보고, TEDx 발표도 해보는 등 다양성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던 기회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기술분야에 한정된 시각을 가진 공대생의 모습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찰나, 지난 1년 동안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NCSU)에서 그랜트 매니지먼트와 연구성과 확산에 관한 현장조사연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재단은 전 분야에 걸친 기초·원천 단계의 연구 및 인력양성을 지원하는 펀딩기관으로서 연간 연구비 규모, 과제수, 지원분야, 학계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지원기관입니다.

저도 재단에서 근무하며 이공분야 연구 생태계 보호와 혁신을 위한 관련 이슈 발굴 및 정책 수립, 사업과 과제 기획, 선정과 성과관리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은 바 있습니다. 그때마다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전주기 연구지원, 성과발굴과 확산 사례는 늘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었죠.

NCSU는 미국 최대 규모의 리서치 파크인 Research Triangle Park(RTP)에 속해 있으면서 North Carolina주에서 가장 큰(학생수, 캠퍼스 규모 등) 주립대학으로, 특별히 공학분야에 주요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RTP에는 3개 연구중심대학이 포함되는데, NCSU 외에 Duke University, UNC at Chapel Hill이 있습니다.

현장조사를 위해 3개 대학의 교수, 프로그램 디렉터 등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문헌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경우는 물론,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만나게 된 분들도 있었습니다. 미국행 이민가방에소중하게 챙겨간 책을 현지에서 무료나눔하며 만나게 된 학부 입학처 디렉터, 운동하면서 뵙게 된 은퇴교수님이 소개해준 NCSU 데이터 아카데미 디렉터(본인의 딸이기도 한), 듀크대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중이시며 동시에 이웃이 청강하고 있던 강의의 정치학과 교수님이기도 한 분까지도 말이죠.

이렇게 저는 배경과 인종, 가치관까지 모두 다른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걸음은 가치와 목적을 공감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일을 추진함에 있어 ‘어떻게’와 ‘무엇’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단계는 ‘왜’라는 철학을 공유하고 그것의 가치와 목적을 공감, 앞으로의 한 걸음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RTP 내 대학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의 페이지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프로그램을 운영 할 때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나 동시에 늘 어려운 숙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정부나 대학본부에서 추진한 정책 또는 프로그램의 경우 탑다운이든, 바텀업이든 간에 이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수의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짧은 시간 동안 최대의 효과와 효율을 내야하는 한국의 시스템에서는 요원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K-DNA를 동원해서라도 묘안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내가 중심에 둔 가치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듀크대에서 방문연구 중이던 한 이웃의 소개 덕분에 정치학과 학과장을 오래 지내신 Michael Munger 교수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스웨터와 신발 색을 맞춰 입고 나오신 Munger 교수에게서 전통 있는 사립대학의 성공한 멋쟁이 지식인 같은 첫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가 경제학 박사에서 정치학과 교수가 된 과정, 본인이 듀크대에 개설한 융합 프로그램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y) 등 여러가지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그의 남다른 도전정신에 특히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Munger 교수는 지난 수년간 자유당 후보로 주지사, 시장 후보로 선거에 나섰는데, 당선되지 않을 것이 유력했음에도 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Munger 교수는 이 도전을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최소한의 정부, 최대의 자유), 또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의해주더군요. 아무리 낮은 지지율이라도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고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기에 멈추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도전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쓸모의 관점에서 말이죠. 그렇지만 대화 말미, 소위 주류라고 불리는 그룹을 지원해서 성과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과소대표되는 그룹(향후 중심이 될지 모르는 잠재성을 가진 그룹)의 의견을 듣고 미래를 육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는점에 깊이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14년 동안 동료들, 연구자분들과 열심히 만나고 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NRF 사람들이 오랜 시간 다져온 Legacy도 지켜나갈 것입니다. 혹여 실패할지 모른다해도 가치가 있다면 끊임없이 두들기며 한 걸음씩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게 저만의 불혹을 더욱 풍요롭게 채우며 이제는 덜 혹하는 40대로 지천명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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