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광장

뇌에서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 규명

- 70여 년 전 제안된 헵의 기억 학설, 최초로 증명되다 -

강봉균 교수(서울대학교)

학습과 기억 능력은 일상생활부터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 다방면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각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의 주요한 구성 요소이다. 때문에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며 기억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시되어 왔지만 100여년 전 리처드 세먼(Richard Semon)이 제시한 “엔그램(engram)” 가설과 70년 전 도널드 헵(Donald O. Hebb)이 제시한 “기억은 신경세포의 시냅스에 저장되며, 학습에 의한 시냅스의 변화가 기억의 물리적 실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직접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증명된 바 없었다. 왜냐하면 기억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뇌 부위인 해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신경세포가 있고, 하나의 신경세포에도 수천 개의 시냅스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기억이 저장되는 기억저장 시냅스를 구분하여 찾아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강봉균 교수(서울대학교)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를 찾아내기 위하여 dual-eGRASP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하나의 신경세포에 있는 수많은 시냅스들을 구분이 가능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의 형광(예 : 청록색과 노란색)으로 각각 표지하여 시냅스를 두 종류로 구분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새롭게 개발한 dual-eGRASP 기술을 이용하여 연구팀은 기억이 저장 되는 시냅스를 찾아내고, 도널드 헵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우리의 뇌 영역 중 해마가 기억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연구팀은 dual-eGRASP 기술을 생쥐의 해마에 적용한 후 공포기억을 학습시켜 시냅스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기억형성에 의해서 기억저장 세포들 사이 시냅스의 수상돌기 가시의 밀도와 크기가 증가했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한마디로 기억저장 시냅스를 찾아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들은 공포기억이 강할수록 커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추가적으로 전기생리학 실험을 통해서 이러한 시냅스들이 구조적변화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다름을 확인함으로서 기억저장 시냅스를 찾았다는 연구팀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강봉균 교수 연구팀은 기억저장 시냅스들이 구조적, 기능적으로 강화되어 있고 이것이 기억의 세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마침내 1949년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도널드 헵이 기억의 본질에 관하여 통찰하였던 가설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dual-eGRASP라는 신기술을 개발하여 기억저장에 관여 하는 시냅스만 형광으로 표지하고 찾아내어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기억저장 시냅스를 찾아냄으로서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를 한 단계 더 정확,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은 앞으로 기억이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분자적 메커니즘에 의해 일어나는지 밝혀내기 위한 후속연구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의 성과로 개발된 dual-eGRASP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병과 불안장애, 약물중독과 같은 뇌 질환에서 다양한 신경세포 간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 기법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였던 보다 더 정밀하고 명확한 연구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며, 이로 인해 이 질환들의 발병기전을 밝히고 더욱 효과적이고 정확한 치료법 및 예방법을 찾아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봉균 교수는 “이 연구는 한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구분할 수 있는 dual-eGRASP라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는지 그 위치를 규명한 것”이라며, “향후 기억을 연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여 치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 기억 관련 질병 치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 연구 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지원사업(개인연구)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4월 27일 자에 게재되었다.

용어설명

  • 1. 사이언스(Science) 誌 사이언스(Science)는 과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 중 하나로서 학술지표 평가 기관인 Thomson JCR 기준 영향지수 (impact factor 37.205)를 가지고 있다.
  • 2. 해마 (hippocampus) 뇌의 양쪽 측두엽에 존재하며 서술기억의 형성에 중요하다고 잘 알려져 있는 뇌 하부구조.
  • 3. 시냅스 (synapse) 두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지점이다. 뇌는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 즉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세포 자체보다는 그들 사이의 연결인 시냅스 수준에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 4. 기억저장 세포 (engram cells) 기억을 저장한다고 알려진 신경세포로, 엔그램 세포라고도 한다.
  • 5. 리처드 세먼과 도널드 헵의 가설
    1. 리처드 세먼은 1920년대 초에 “외부의 자극은 뇌에 생물학적,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며 학습이 되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 기억의 물리적 실체 (=엔그램, engram)이다”라고 주장하였다.
    2. 도널드 헵은 1949년에 “같이 발화하는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는 강화된다. 이러한 시냅스 강화가 기억의 메커니즘이다”라고 기억저장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 6. dual-eGRASP 구팀이 개발한 dual-eGRASP는 GRASP라는 기존의 기술을 크게 개량한 것이다. GRASP는 시냅스를 형광으로 표시하는 기술이지만 표지된 형광의 세기가 매우 약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한 가지 색의 형광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적용하기에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크게 개량하여 dual-eGRASP라는 기술을 개발해내었다. dual-eGRASP는 기존 기술인 GRASP를 개선하여 형광발색의 세기를 월등히 강해지도록 하였다. 또한 기존에 한 가지 색의 형광으로만 표지 가능하다는 점과 달리 간섭 없이 구분이 가능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의 형광으로 각각 표지가 가능하게 하였다. 즉, 기존 기술에 비하여 형광의 세기가 커져서 더욱 쉽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서로 다른 색을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하나의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두 종류로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림 1. 해마의 여러 시냅스들을 형광으로 표지한 모식도 및 예시 이미지
  • 왼쪽 해마의 신경세포들 중에서 기억저장 세포를 빨간색으로, 그렇지 않은 세포들을 하얀색으로 표시하였다. 이 때 기억저장 세포의 수상 돌기의 시냅스 중에서 노란색 형광표지를 가지는 시냅스가 기억저장 시냅스이다. (검정 화살표로 표시됨.)
  • 오른쪽 Dual-eGRASP를 이용하여 시냅스들을 구분하여 표지한 예시 이미지 및 3D 모델링. 빨간색 수상돌기 위의 노란색 표지가 있는 지점이 기억저장 시냅스들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