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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현장탐방

결핵면역 비밀 밝히는 45년 집단연구의 힘

충남대학교 감염제어 컨버전스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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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보문산 기슭의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개교 반세기를 상징하듯 고풍스런 벽돌건물이 인상적인 이곳에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유서 깊은 연구실이 한 곳 있다. 45년 간 감염병 연구에 매진해온 미생물학교실이다. 의대생 대부분이 기초의학을 기피하는 환경에서도 묵묵히 뿌리를 지켜온 이들은 요즘 개화(開花)의 때를 맞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결핵 퇴치의 국제적 거점으로 부상 중인 것이다.

스승에서 제자로, 뿌리 깊은 결핵 연구의 전통

우리 연구단은 결핵균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 최대경 교수님과 백태현 은사님의 뒤를 따르는 후학들입니다. 두 분의 유지를 이어받은
미생물학교실의 제자들이 인류 보건의 오랜 숙제 해결에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지요. 해외에서도 흔치 않을 만큼 오랜 기간 지속해온
공동연구의 바탕 위에서 선천면역 기전, 자가포식, 백신, 단백질항원정제와 진단법 개발, 소포체스트레스, 미생물유전학 등 각자의 다양한 전공 지식을 융합하고 있습니다.

조은경 감염제어 컨버전스 연구단장

충남대 감염제어 컨버전스 연구단(이하 연구단)은 지난 2007년 선도연구센터(MRC)에 지정되며 그들의 오랜 연구 테마인 미생물학을 통합적인 산학연 및 병원의 유기적인 협력연구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은 국내 대학의 우수 연구역량을 결집해 장기간 특정 과제를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초의과학 분야는 거점연구조직을 육성하여 자생능력을 갖춘 연구그룹과 우수인력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자가포식과 선천면역의 활성기전을 연구 중인 조은경 연구단장(가운데)와 연구원들

오랜 기간 결핵과 패혈증 등의 감염과 면역 분야를 연구해온 연구단이 특히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숙주세포의 자가포식(autophagy) 활성 기전이다. ‘자기 살을 먹는다’는 뜻의 자가포식은 생명체가 영양분 결핍이나 스트레스 같은 악조건에서 살아남으려고 일으키는 생명현상이다. 일종의 선천적인 면역 시스템이다.

자가포식은 2016년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학문적 중요성은 입증됐지만 이를 임상적으로 해석하고 질병 치료에 접목시키는 연구는 아직 세계적으로 많이 이뤄지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오랜 결핵연구를 통해 햇볕 쬐기와 운동 등 고전적인 치료 방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던 연구단은 지난 9년 간 자가포식과 선천면역 조절 기전에 관한 연구에서 상당한 연구성과를 배출했다.

특히 숙주세포 내 자가포식 활성을 이용한 결핵균 제어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인 연구 분야로 국제적인 권위의 학술지(Cell Host Microbe 2009, 2012)에 발표돼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선천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고아핵수용체의 새로운 기능을 규명해 네이처 이뮤놀로지(2011),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2015) 등에 게재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계속됐다. 이에 따라 2010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데 이어 2013년까지 4년 연속으로 기초연구 우수성과에 선정됐다.

연구단을 이끄는 조은경 단장의 수상도 잇따랐다. 2015년 국내 의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인 분쉬의학상을 여성 연구자 최초로 수상한 데 이어 이듬해인 2016년에는 국가연구개발유공 표창을 받는다

조은경 연구단장

자가포식 응용으로 감염병 퇴치한다

연구단은 지난해 선도연구센터에 새로 지정되며 명실상부한 감염질환 퇴치의 국가 거점연구조직의 진용을 꾸리게 됐다. 새로 출범하는 연구단은 기존 연구조직 위에 두 가지 기능이 추가됐다. 하나는 기초연구의 실용화다. 신약후보물질 생산과 라이브러리 구축을 위해 약학대학과 국내 유수의 바이오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임상연구 분야의 우수 연구자들을 영입하며 기초-임상 중개연구를 유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기초의학과 임상 분야의 공동지도를 통한 통합형 의생명 교육으로 미래의 우수 연구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도 구축했다. 특히 의예과 1~2학년 학생들의 연구 동아리가 참여하는 오픈랩은 연구단은 물론 기초의학의 중요성을 젊은 인재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다. 조은경 단장은 “학문적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이 후속세대를 키우는 것”이라며 “위기가 거론될 만큼 전공자들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젊은 의사들이 기초의학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한다.

2017 여성생명과학자상 수상 강연 중인 조은경 단장

만약 개인연구를 했다면 후학 양성을 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도연구센터가 되며 동료 교수님들과 힘을 모아 결핵을 연구하고 신진 연구자를 키울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지요. 우리 세대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더 결핵 면역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저변을 넓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후배들 가운데 노벨상을 받고 인류 건강에 크게 기여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은 앞으로 자가포식 개념을 질환 제어에 응용해 최적의 감염 염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오랜 기간 자가포식과 감염병에 대해 축적해온 세계적 수준의 초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세포 내 기생균을 타겟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선도연구센터 재지정을 통해 충분한 연구 자원을 갖춘 만큼 결핵 치료뿐만 아니라 세포 내 다양한 감염균을 사멸시키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도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게 이들의 기대다.

분쉬의학상 시장식장에서 함께한 연구단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