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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소재 연구자들에게 더 큰 연구 운동장 제공”

한국연구재단 송재용 나노·소재단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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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기술은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크기의 범주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소재·소자, 또는 시스템을 창출하는 기술입니다. 크기가 작아지면서 새로운 특성의 물질과 소재를 탄생시키게 되는데요. 이처럼 동전의 양면, 혹은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은 나노·소재 기술은 국내에서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2월 부임한 한국연구재단 송재용 나노·소재단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내 나노·소재 연구는 지금까지 18년 동안 투자되어 성인으로 성장한 만큼 이에 걸맞은 책임 있는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목적 지향적이고
방향성 있는 나노·소재 분야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부임과 동시에 이러한 나노·소재 연구개발의 방향 설정과 새로운 사업 기획을 위해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송 단장을 만났습니다. 한두 차례 인터뷰 일정을 변경한 끝에 만난 송 단장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지난 2월 부임한 송재용 한국연구재단 나노·소재단장

“연구 환경 변화에 맞는 평가 시스템 마련에 주력”

  • 지난 2월 한국연구재단 나노·소재 분야 단장으로 부임하셨습니다. 100일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어떤 일에 중점을 두고 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네요. 연구하다가 정책기획으로 일이 바뀐 만큼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막상 와보니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제 것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중앙 부처와 재단 중간에서 양쪽 일을 다 챙겨야 했고요. 또 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중요한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나노·소재 분야 연구개발 사업이 2019년 일몰됨에 따라 후속 연구를 위한 연구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있고요. 또 이전부터 추진하던 지능형 반도체 개발사업의 기술성 평가 신청도 마무리했습니다.

  • 정부출연연 연구원에서 재단 단장으로 부임하셨으니 그라운드에서 뛰던 선수가 심판이 된 것과 비슷한데요. 그만큼 책임감과 부담이 크실 것 같습니다. 어떤 각오와 계획으로 임하고 계시는지요.

    연구원이 선수인 것은 맞는데 재단 단장이 심판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글쎄요. 굳이 비유하자면 선수한테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대부분 연구원은 과제를 신청하고 연구비를 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모든 일을 접고 준비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당연히 과제선정이 되지 못하는 연구자가 더 많기에 평가 시스템의 신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구개발 사업 평가 시스템상 객관성을 강조하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양면성을 갖는데 그 틈을 최대한 좁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객관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일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 평가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이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군요.

    어찌 보면 시대와 연구 환경 변화에 따라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 종전에는 분야별로 연구인력 풀이 지금처럼 많거나 크지 않았어요. 객관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전문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연구인력 풀이 늘어나면서 객관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요구받게 된 거죠. 만약 어떤 연구자가 과제를 신청했다가 떨어졌는데 자기보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평가했다고 하면 그 결과를 흔쾌히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해야 할 정도로 우리의 연구 환경이 발전한 것이라고 봐야 하고요. 이런 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재단의 평가 시스템도 많이 발전했다고 봅니다.

송 단장이 집무실에서 직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성인 되는 나노·소재 연구, 이에 걸맞는 방향성 찾아야”

  • 국내 나노·소재 분야 연구개발 현황과 동향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국내에서 나노·소재 연구개발에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된 것은 2001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노종합팹센터(현재의 나노종합기술원)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직접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개발이 이루어진 게 20년도 안 되었으니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셈이죠. 사람에 비유하자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나노·소재 분야 연구자들이 정말 열심히 한 결과,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심지어 우리의 연구 성과를 벤치마킹하기도 합니다.

  • 국내 나노·소재 분야 국가연구개발 과제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으셨는데요. 나노·소재 분야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지금까지 나노·소재 분야 연구는 초·중·고교를 거치며 기초·공통과목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 같다고 생각해요. 밤을 새우기도 하고 때로는 코피를 흘릴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결과, 다행히 우등생이 되었죠. 그런데 이제 대학에 입학해야 할 때가 된 겁니다. 전공을 선택하고 자신이 앞으로 어떤 분야로 진출할지 고민하는 수험생처럼 나노·소재 분야도 앞으로 어떤 연구개발을 할지 고민할 때가 되었죠. 목적 지향적인 연구개발, 국민의 삶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성 있는 연구를 해야 하는 거죠. 동시에 그동안 각자 열심히 공부했다면 ICT, 에너지, 환경, 바이오 등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뭉쳐서 연구해야 하고요. 탑 다운(top-down)과 미들 업(middle-up) 방식을 적절히 조화시켜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구개발의 방향과 내용,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 나노·소재 기술이 다른 과학기술과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큰데요. 일선 연구현장에서 볼 때 나노·소재 분야 연구개발의 어려운 점,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요.

    나노·소재가 원천기술이다 보니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어쩌면 너무 작은 분야를 다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다시 말씀드리면 나노·소재 기술은 ICT, 바이오, 에너지, 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녹아 밑바탕이 되는 원천기술 역할을 하면서도 그 성과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당황스러워요. “20년 가까이 투자했는데 그동안 나온 성과가 뭐냐?” 과장하면 안 되겠지만, 그동안 이룬 성과를 알리고 제대로 평가받는 일도 중요해요. 일선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도 각자 노력해야겠지만, 재단과 저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 그동안 이룬 성과에 비추어 보면 억울한 측면이 있겠네요.

    억울한 일이라기보다는 저희가 더 분발해야 할 일이겠죠. 나노·소재 기술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리, 화학, 수학 등 노벨과학상을 탈 수 있는 기초학문 분야를 상용화로 연결할 수 있는 다리가 되는 거죠. 재료, 전자, 에너지, 우주항공, 의학, 바이오 등 모든 산업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 높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분야가 바로 나노·소재 기술입니다. 그동안 많은 투자를 통해 튼튼하게 뿌리 내린 만큼 꽃을 잘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야죠. 연구자들은 더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는 연구개발 투자를 더 강화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그룹 팀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왼쪽 세 번째가 송재용 단장

“더 큰 연구 운동장에서 즐겁게 열심히 달릴 수 있기를”

  • 임기 동안 이 일만은 꼭 하고 싶다, 혹은 이것만은 꼭 바꾸고 싶다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저는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 나노·소재 분야를 연구하며 나름대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탈락한 적도 있지만, 연구비도 받고 즐겁게 연구했습니다. 이제 제가 겪었던 이런 경험과 받았던 혜택을 후배 연구자들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단순히 제가 뛰어놀았던 운동장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운동장을 만들어주고 싶고요. 이 운동장에서 연구자들이 다치거나 상처받지 않고 즐겁게, 열심히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재단 나노·소재단장에 지원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 재단과의 첫 인연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안 좋았던 기억도 괜찮습니다(웃음).

    아마 2011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창의 소재 디스커버리 사업(현 미래 소재 디스커버리 사업) 예비타당성 신청을 해야 하는데 기획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다 보니 회의 날짜 잡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첫 회의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로 잡혔어요. 그때를 시작으로 평일에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주로 주말에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당시 재단에서 단장과 직원이 일정을 잡고 기획 회의를 이끌어갔는데요.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거의 2년 6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주말까지 반납하며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전까지는 재단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정말 감동 받았습니다. 저한테 재단은 그때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 연구자로서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많이 남기셨는데요. 끝으로 앞으로 연구에 주력하실 분야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노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물성의 측정방법을 개발하는 데 그동안 주력했습니다. 특히 나노선(단면의 지름이 수 나노미터인 극미세 금속선이나 반도체선)에서 열, 전기, 광(光), 자기(磁氣) 등 네 개의 영역이 섞여 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관심이 많았는데요. 그동안 열, 전기, 광까지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 나머지 하나 남은 자기에 주력에 측정방법을 표준화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송재용 단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자성재료로 석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재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2005년부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3년간 재단 국책연구본부(나노·소재 분야) 기획전문가(RP)로 활동했다. 나노소재의 물성 측정 연구에 주력해 지난 2014년에는 100nm 이하 초미세 나노소재의 열전에너지 변환효율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나노기술 연구와 상용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나노연구 혁신상(한국연구재단 이사장상)을 받았다.

한 줄 인터뷰

01. 단장님께 나노·소재란?

“노벨상과 산업을 연결하는 다리”

나노·소재는 원천기술로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적용된다. 동시에 노벨과학상을 탈 수 있는 기초학문 분야를 산업적으로 상용화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02. 후배 연구자들에게 한 가지를 조언한다면?

“조급해하지 말자”

후배 연구자들에게 하는 조언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조언이다. 자기 것에만 몰두하면 다른 게 보이지 않고 조급해진다. 나노·소재, 측정 분야는 특히 그렇다.

03. 인생철학으로 삼는 격언·문구는?

“최선을 다하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하면 ‘최선’이라는 단어다. 언젠가 선배가 물었다. “안전한 차선과 불안한 최선이 있다. 무엇을 선택할래?” 주저 없이 불안한 최선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노력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