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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재단 이름에 담긴 초심 잊지 않길”

한국연구재단 배병수 前비상임이사(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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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의 웹주소는 원래 go.kr이었습니다.”

최근 2년간의 한국연구재단 비상임이사직을 마친 배병수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습니다. 2008년 화학·화공소재단장을 시작으로 연구재단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10년의 시간이 지났는데요. 쌓인 세월의 무게만큼 연구재단에 대한 이해와 전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에서 남다른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그가 새삼 연구재단의 옛 도메인을 언급한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늘 초심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이지요.

연구실에서 KAIST 신소재공학과 배병수 교수.

연구재단 역사와 함께한 10년

  • 연구재단 비상임이사로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꽤 무거운 짐이셨을 텐데 이제 좀 홀가분해지셨는지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리 어렵고 힘든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비상임이사는 재단 이사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인 만큼 이사회가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예산, 규정, 인사부터 크고 작은 자산구입과 매각까지 연구재단 안팎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사회의 의결을 필요로 합니다. 이사회가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연구재단과 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얻은 사업에 대한 이해, 또 조직과 구성원과 운영원리 등 직간접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사회의 많은 안건들을 사전에 조율하고 가다듬는 데 주력했습니다.

  • 한국연구재단과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으신 건가요?

    2008년에 화학·화공소재단장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이듬해에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개 단체가 모여 한국연구재단이 탄생했으니 태생부터 지켜봐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연구재단의 출범과 함께 그동안 큰 변화 없이 미미한 수준을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사업 규모가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지요.

  • 상대적으로 이른 연령대에 화학·화공소재단을 맡게 되셨습니다.

    네, 다른 단장님들에 비해 조금 빨랐던 게 맞습니다. 원래 교수와 단장을 겸임하기는 어려운데 당시에 화학·화공소재단장을 맡고자 하는 분들이 드물어서였는지 일시적으로 반상근 단장이 허용된 적이 있었어요. 저도 대상자 중 하나로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반상근이라면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습니다. 물론 정작 되고 나서는 반상근으로 단장직을 수행한다는 게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요(웃음).

  • 혹시 젊어서 더 많은 일이 맡겨지신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연구재단과 학교가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풀타임 단장처럼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었고요. 두 번째는 연구재단이 막 출범하고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 예산이 확대일로에 있던 과도기란 점입니다. 그에 맞게 단장의 권한과 책임 역시 더 커지고 있었던 만큼 한번 잘 해보고 싶은 의욕이 흘러 넘쳤지요.

  • 열심히 일하신 만큼 기억나시는 일들도 많을 듯합니다.

    권한과 책임이 크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전까지는 연구 지원 예산이 많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연구재단의 역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특별한 연구자만 지원하는 곳으로 인식했지요. 하지만 풀뿌리 연구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대상이 되는 만큼 제 나름의 철학을 세워서 과제선정에 임했습니다. 수월성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연구생태계 전반이 조화를 이루는 데도 각별히 신경을 썼지요.

  • 관성에 변화를 주시려면 아무래도 많은 설득과 조율이 필요하셨을 텐데요?

    사업의 취지와 특성에 따라 수월성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고, 학문과 전공, 지역과 각 대학까지 전반의 균형 발전을 고려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사심 없이 수월성을 살려야 할 때는 수월성을, 균형을 생각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지방의 군소대학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지요. 이런 원칙이 연구자 전반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제가 담당하는 분야에 대해 먼저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학계 전반의 배경과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누가 유망한 연구자이고 어느 학교에 강점이 있는지. 지원자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업에 지원을 하는지, 그렇다면 현재의 평가가 적절한 방법인지 사전조사를 많이 했지요. 덕분에 별다른 잡음이나 과오 없이 단장직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좌우명 앞에 선 배 교수. 지나치게 정연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하고 조화롭게 배치된 액자들이 중용을 미덕으로 삼는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자율성과 공정성 조화 고민할 때”

  •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연구재단과 10여 년의 시간을 함께해오셨습니다. 연구재단이 명실상부한 최상의 연구관리 전문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3개 학술진흥 기구를 합친 연구재단의 출범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지원 사업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로 나뉘어 있던 연구 지원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자는 취지였지요. 여기에 교육과 인력양성 임무도 부여되면서 조직과 위상 모두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최고의 전문기관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다뤄야 할 사업 범위와 예산 규모가 늘어나면서 당초의 설립 취지가 뭐였는지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여겨집니다. 연구재단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을 역할모델로 삼고 있는 연구재단의 영문명 ‘NRF(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에 담겨 있다고 보입니다. 단순히 정부의 R&D 지원 예산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위탁기관 형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연구개발 정책 방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말씀하시는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연구재단의 설립 목표가 지원기관이 아니라 정책 수립과 자원 배분을 총괄하는 중추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NSF처럼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운영체제, 그리고 탁월한 연구성과를 통해 기초연구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기관이지요. 물론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전문성과 공정성도 함께 요구됩니다. 연구재단이 원래의 목표를 향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과 공정성이라는 자칫 충돌하기 쉬운 복잡 다양한 임무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화로운 적용을 고민해야 합니다.

  •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공정성의 원칙과 조화로운 적용은 연구재단 안팎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 먼저 연구재단의 내부 구성원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나라의 연구자와 연구현장의 환경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역시 연구재단입니다. 가장 전문성이 높은 기관인 만큼 향후 좀 더 주도적인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고유의 철학에 따라 각각의 원칙들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엄정한 관리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 최고의 정책 지원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임무인 과제 선정에 있어서도 권한과 책임을 정확히 감당할 수 있는 구조로 끊임없이 조직을 진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현재 이 같은 기조에 따라 학문별 전문성 제고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니저 제도 역시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검토하고 보완하며 거시적인 목표에 맞는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려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 현재 이공계 인력양성과 일자리 문제의 동시 해결을 꾀하는 사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구재단과 대학 전반의 현실을 잘 알고 계신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을 조언해주신다면?

    국내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또 실제로 연구개발의 주체인 이공계 인력의 수요를 창출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R&D에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지요. 하지만 학생 위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대학과 연구소의 실정에서는 관련 예산이 투입되면 실질적인 일자리보다는 학생들의 수만 늘어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공계 학생들이 일부 수도권 대학과 연구소로 몰리게 되고, 지방 대학의 연구 인력은 외국인 학생들의 차지가 되지요. 그나마 외국인 학생들도 구하지 못하면 연구비가 있어도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많은 예산이 투입돼도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지요. 또 이렇게 늘어나는 이공계 학생 연구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관련 예산과 사업의 증가는 오히려 과학기술계 전반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공계 인력의 공급과 함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연구 현장과 이공계 인력 양성, 일자리 창출에 모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방안이 있을까요?

    이런 부분 역시 연구재단의 역할 변화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연구개발 정책이 우리 산업과 고용시장의 체질개선을 유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앞서의 인력 정책과 관련해서는 우선 연구소가 학생이 아니라 장기간 직접 연구개발을 수행하며 기술축적을 도모할 수 있는 연구원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연구대학을 추구하고 있는 대학들은 학생들 수에 의존하는 연구에서 탈피해 제도화된 박사후연구원 또는 연구교수 활용을 통해서 이공계인력을 흡수하고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만 하지요. 그래야 관련 예산 증액이 실질적으로 현재의 고용환경뿐만 아니라 미래의 국가 성장잠재력까지 함께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개발 중인 플렉서블 소재를 설명하는 배 교수. 프린트된 그림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 이제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웨어러블 플랫폼소재 기술센터의 책임자로 연구·교육의 일선에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앞으로 주력하시게 될 연구와 업무를 소개해주세요.

    연구자로서는 이제 세상에 성과를 내놓을 시기입니다. 오랜 시간 연구해온 웨어러블 플랫폼 소재 분야에서 다양한 원천소재를 개발 중입니다. 웨어러블은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용화가 더딘 분야입니다. 부드럽고 유연한 데다 안정적이고 튼튼하기까지 한 소재를 찾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요. 이런 재료의 혁신 없이는 우리가 꿈꾸는 플렉서블 시대는 요원합니다. 현재 빠르게 실용화가 가능한 연구와 기초 연구를 구분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배병수 교수는?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드렉셀대와 애리조나 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한국연구재단 화학·화공소재단장을 시작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전문위원,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 국가과학기술 연구회 기획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 줄 인터뷰

01. 평소 삶의 철학으로 삼고 계신 좌우명이 있다면?

“어디에도 치우침 없는 중용(中庸).”

개인의 생활과 사회적인 업무, 타인과의 관계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이란 단어를 많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편입니다. 연구재단에서 늘 치우침 없는 조화와 균형을 원칙 삼아 일을 처리하고자 한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02. ‘스트레스 잘 안 받는 분’이란 게 연구재단 직원 전반의 의견입니다. 동의하시나요?

“할 바를 다하고 나면 잊어버린다.”

무슨 일을 대하든 뜨겁게, 열정적으로 하지만 마치고 나면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마음에서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일종의 진인사대천명이지요. 그렇게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대하며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다 보니 또 바라지 않아도 늘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03. 좋아하는 여가활동은?

“산(山)이 나를 만들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내 삶의 자세나 처세가 대학 때 등반을 하면서 추구하던 알피니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등산을 여가 활동으로 탐닉하지 않지만 한때 등반을 꿈꾸던 사람으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산이나 트래킹 코스들을 버킷리스트로 갖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비상임이사직을 마치고 나면 그동안 꿈꾸던 알피니즘의 원천지인 몽블랑 등정을 하고자 예약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사장 선임이 늦어지며 잠시 대행을 맡게 됐지요. 못 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다행히 새 이사장님이 선임되면서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꿈꿨던 등정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