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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발전이 진정한 선진국의 표식”

한국연구재단 조찬수 사회과학단장(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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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이야기할 때
과학기술이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라고 해도 “사회과학이 발전해야 선진국이 된다”라고는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인문·사회 분야
기초학문이 낙후된 선진국이 가능할까요?

이 물음에 한국연구재단 조찬수 사회과학단장(강남대 글로벌학부 국제지역학전공 교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1인당 GDP만 높다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닙니다. 독자적으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인문·사회 분야 학문이 한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강조하는 조 단장은 무엇보다 ‘기다려주는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연과학 등
이공계 분야와 달리 사회과학은 유의미한 연구 성과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인데요. 조 단장이 생각하는 국내 사회과학 기초연구의
현황과 발전 방안을 들어보았습니다.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 조찬수 단장(강남대 교수).

“귀국 후 재단 지원으로 연구자의 첫걸음 내딛어”

  • 사회과학단장으로 부임하신 지 2개월가량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에 주력하셨는지요.

    일단 업무 파악에 주력했습니다. 제가 오기 전인 상반기에 주요 지원사업 선정이 끝났기 때문에 연구가 진행 중인 과제들에 대한 점검 및 평가 업무가 많았습니다. 또 신규과제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연구자들의 이의제기를 접수하고, 혹시 평가 과정에서 빠뜨린 부분은 없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겨울로 들어서는 시점에서 2019년 사업기획이 매우 중요한 업무이고, 이를 위해 유관부처와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겠지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사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재단과의 인연, 혹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사실 재단과의 인연이 상당히 깊습니다. 저의 교수 생활, 그리고 연구자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옛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학술연구교수 지원을 받아 연구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학위를 마친 젊은 연구자들의 경우 물질적인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안정적인 학술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 인연으로 계속 연구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지금 재단에서 봉사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재단 사회과학단은 주로 어떤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나요?

    지원대상을 기준으로 하면 크게 두 개의 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학문후속세대 지원 사업입니다. 학위는 마쳤지만 아직 대학이나 연구소에 안착하지 못한 젊은 연구자들, 그리고 현재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학술연구교수나 시간강사 지원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 하나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기성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사업의 형태에 따라 개인연구, 공동(집단)연구로 세분되며 갈수록 공동연구, 집단연구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2010년부터 시작된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ocial Sciences Korea, SSK)입니다.

조찬수 단장과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성과물…기다려주는 연구 환경 필요”

  • 인문·사회 분야 학문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연구 활동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이공계 분야와 비교하면 인문·사회과학의 특징은 연구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학문의 특성에 따라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이공계와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는 분야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도라든지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인식, 해결책 등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가다듬고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이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공계 분야만큼 논문이나 결과물 생산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렇게 서둘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 단장님 전공인 정치학 분야는 특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전공 분야인 국제정치경제가 속하는 국제관계 분야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입니다. 수천 년 된, 오래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연구에 들어가는 돈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박탈감이나 빈곤감도 느끼지만,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충분히 분석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 세상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무엇보다 연구개발 사업에는 국가 예산이 지원되는 만큼 그렇게 충분히 기다려주는 여유가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요?

    국내 학술연구 지원은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국가의 연구비 지원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수님들의 경우 대부분 각자 알아서 연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연구의 호흡이 훨씬 길었습니다. 지원받은 것이 없으니 오히려 더 자유롭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지원 사업도 많아지고 연구비 지원 규모도 커졌지만, 연구의 호흡은 더 짧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 그렇다고 인문·사회과학 분야만 다른 잣대를 적용할 수도 없고, 해결책은 없을까요?

    서양 대학의 기원은 수도원입니다. 수도사들이 진리를 탐구하던 공간이 대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절대적 존재 말고는 자기를 구속할 것이 없는 환경에서 지식생산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그런 환경을 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그에 따른 견제와 제어장치는 있어야 합니다. 다만 학문 분야별 특성에 맞도록 탄력적으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준을 유관부처나 재단에서 표준화해서 정해주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닙니다. 자율적이면서도 더욱 투명한 사회로 성숙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명장 수여식에서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함께.

“지식수입상 단계 넘어 우리 문제 우리의 시각으로”

  • 한국연구재단이 잘하고 있는 점, 혹은 발전하기 위해 더 노력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이 부분에 지원을 많이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참 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지원사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진연구자, 중견연구자, 우수연구자 등 연구자 생애주기에 맞춘 지원사업이 학문의 지속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구자의 호흡을 길게 해주고, 소모적인 연구행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학술 활동이나 연구를 어떻게 진흥시킬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문연구는 무엇인지 재단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임기 동안 이 일만은 꼭 하고 싶다, 혹은 이것만은 꼭 개선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을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빈틈이 있습니다. 이런 빈틈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미세조정 및 보완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단일사업으로 가장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SSK 사업입니다. 2018년 예산이 268억여 원으로 상당히 규모가 큰 사업입니다. 이제 곧 사업이 10년째 들어서고 1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평가해본다면 2기 사업을 이어갈 만큼 충분한 결과물이 있다고 봅니다.

  • 후속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죠?

    SSK 사업은 결과가 좋은 편입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개선하고 보완할 점은 분명 있습니다. SSK 사업은 경쟁모델과 성장모델을 적용한 특징이 있습니다. 소형은 중형으로, 중형은 다른 연구단과 합쳐 대형으로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못하면 탈락하고, 대형까지 성장했어도 연차 평가에서 탈락하면 지원이 중단됩니다. 지원받았다고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고 계속 긴장을 유지하며 발전시키라는 뜻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형이나 중형 정도의 규모가 적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면밀하게 검토해 개선한다면 SSK 후속 사업은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 끝으로 사회과학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대학 내에서도 인문·사회 분야가 이공계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유가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이 인기가 없다거나 매력이 없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에 대한 수요는 그 사회의 경제구조나 노동시장 등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하고 선진국이 된다면 인문·사회 분야 학문의 수요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1인당 GDP만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사회가 독자적 지식생산 기능을 할 수 있느냐가 선진국의 지표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런 사회를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지식 수입상’의 단계를 넘어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으로 풀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조찬수 사회과학단장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대학교 글로벌학부 국제지역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제학대학장, 교무처장, 기획처장, 중앙도서관장, 총무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한국정치학회 편집위원을 거쳐 한국국제정치학회 통상정책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줄 인터뷰

01. 지적으로 영향 받은 사회과학자 한 사람을 꼽는다면?

“막스 베버(Max Weber)”

근대적 사회과학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사회과학 분야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02.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사회과학이란?

“가치판단을 유보하지 않되 객관적 분석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추구하는 학문”

이러한 생각 역시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은 인간과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가치판단이 없을 수 없다. 가치판단과 경험 분석의 균형을 지향하는 어려운 작업이 사회과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