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공공기관의 혁신 성과를 나누고,
앞으로의 혁신 방향을 논의하는 ‘2018 공공기관장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관계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일반 시민 등이 대거 참석했는데요. 특히 정책 수혜자 사례 발표자로 나선 맹선영 연구원(SAP코리아 한국연구소)이 경력단절 극복기를 소개하면서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연구재단(NRF)과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는 여성과기인의 역량 강화와 경력복귀 지원을 위해 주력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10월,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한화진 WISET 소장, 맹선영 연구원이 만나 경력단절 여성과기인 지원 정책과 경력복귀 지원사업의 발전 방향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사업을 시행하는 공공기관장과 사업 수혜자가 만난 이날 대담에서는 경력단절 여성과기인뿐 아니라 여성과기인의 역량과 지위 강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요.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여성연구자의 역량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우수 여성연구자 발굴 노력해야 노벨상 수상자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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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얼마 전 발표한 노벨과학상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인이자 재단 이사장으로서 발표를 지켜보신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노정혜
이사장
사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한 지 30여년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산업 발전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주로 응용과학에 투자했어요. 당시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30년의 기초과학 역사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기대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면이 있어요. 다행히 대학이나 연구 현장에서 탐나게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눈에 많이 보여요. 이런 젊은 연구자들이 더 많아지고, 시간이 더 지나면 언젠가 우리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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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는 2명의 여성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노벨과학상에서도 여성 수상자 비율이 적은데요.
노정혜
이사장
지금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3.3%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과기인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지요. 이처럼 여성과기인의 비율에 비해 수상자가 적은 것은 후보자나 수상자를 발굴하고 선정하는 위원회부터 여성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 과기인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요.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한화진
소장
사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도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 못지않아요. 그동안 이러한 여성과기인의 연구 성과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적었다고 봅니다. 인력 풀의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이 남성에 비에 훨씬 규모나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인력 풀이 남성들 위주로 되어있다 보니 결국 추천도 남성 위주로 될 수밖에 없고요. 여성과기인의 인력 풀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고, 훌륭한 연구 성과를 올린 여성과기인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이런 문제도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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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신 지 100일이 막 지났습니다. 취임 이후에 연구비나 부실학회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많이 바쁘셨을 것 같은데요.
노정혜
이사장
막상 재단에 직접 와서 보니까 사업의 종류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이공계부터 인문사회, 의약학, 예체능 분야까지, 또 개인 기초연구부터 집단연구, 인력양성, 대학재정지원, 여기에 과학기술협력 사업까지 하고 있고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재단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고요. 또 이런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질책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재단에서는 연구자들의 연구비 집행이나 학술 활동 등에서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 못지않게 재단이 고민하고 몰두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연구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건강한 연구 문화는 정착되고 있는지 등의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특히 평가를 얼마나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할 수 있느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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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이 연구 윤리를 강화하고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노정혜
이사장
부실학회 문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저 역시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부실의 요소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엔가 스며들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고요. 다만 무조건 연구 윤리를 위반한 연구자를 제재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근본적인 개선은 어렵다고 보고요. 연구자들 스스로 건전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는가, 호시탐탐 상업적으로 연구자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학회는 없는가, 양적 성과의 부담에 몰려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고요. 재단이나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연구자들이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투명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죠.
한화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소장
“여성과기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 만족도 높아”
“지원 기간 늘리고 전문성 강화…자신감 잃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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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는 다르지만, 경력복귀 여성의 상황은 비슷할 것 같은데요. 궁극적으로는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지속해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재단에서도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노정혜
이사장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데요. 얼마 전 박사후과정(Post Doctor)이나 연구교수 등 대학의 비전임 연구원으로 일하는 여성과기인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서울대의 경우 전임교수의 15%가 여성인데, 비전임은 3분의 2 정도가 여성입니다. 전문성과 실력을 갖추고도 전임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상당히 좁아요. 그래서 이런 여성과기인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유망·우수여성과학자 지원 사업이 있었는데 유망여성과학자 지원 사업이 이에 해당하죠. 비전임 트랙의 여성과기인이 정규직·전임으로 안착할 때까지 지원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연구비와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인데요. 이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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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T도 현재의 여성과기인 R&D 경력복귀 지원 사업을 더 확대하거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화진
소장
현재 이 사업의 지원 기간이 3년입니다. 박사는 연간 2,300만 원, 석사는 2,100만 원을 지원하고, 해당 연구기관(대학, 출연연, 기업)은 30% 이상을 매칭해야 합니다. 사실 3년 동안 경력단절 여성과기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기간 경험을 쌓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요. 그러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다소 짧은 감이 있어 이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와 함께 현재 2019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여성과기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마련 중에 있는데요. 현장에서는 여성과기인을 신진연구자, 중견연구자, 리더연구자 등 세 그룹으로 나눠 경력단계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현장의 여성과기인, 각계 전문가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해 여성과기인을 위한 실질적이면서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석자들이 경력단절 여성과기인의 경력복귀와 사회적 활동 강화 방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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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을 직접 경험하고 경력복귀에 성공한 분으로서 여성과기인의 경력복귀를 위해 어떤 부분이 더 강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맹선영
연구원
여성과기인 R&D 경력복귀 사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좋았던 게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을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기관이나 회사를 다니다 보면 본업이 바쁘기 때문에 학회 활동, 세미나 참석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이 사업에서는 여성과기인의 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소속 기관이나 회사에서 어떤 활동을 지원했는지가 평가 항목에 아예 포함되어 있어 이런 부분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실 이 사업을 통해 일하는 여성과기인 상당수는 메인 R&D 프로젝트에는 참여하기 어려워요. 다시 일을 시작했다지만 업무에 대한 감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복귀하고 나서도 육아와 가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메인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기 어렵기 때문이죠. 결국 3년의 지원이 끝나도 다시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현업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경력 복귀 후에도 지속적으로 여성과기인이 이렇게 스스로 자신만의 무기를 갖출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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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님과 소장님의 경우 여성연구자나 경력단절 여성과기인을 자주 접하실 것 같은데요. 끝으로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화진
소장
WISET에서는 경력단절 여성과기인의 취업뿐 아니라 경력복귀자를 위한 역량 강화 교육도 제공하고 있는데요, 마음준비, 목표 설정, 취업 준비, 현업 멘토링, 직장 적응 등 단계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마음준비’의 목표가 자신감 고취입니다. 경력단절 여성과기인이 겪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자신감 부족인데요. 본인의 능력이나 역량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거나 어떤 기회가 생겼을 때 ‘내가 완벽해지면 하겠다’라며 주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신감과 도전 정신을 더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고요. 사회적으로도 ‘여성을 지원하는 게 국가 경쟁력 향상에 필수다’라는 인식이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노정혜
이사장
저도 학생들에게 ‘더 담대해지라’고 자주 강조합니다.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겸손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미리 겁을 많이 내요. 결혼하면 어쩌지? 임신하고 출산하면 육아는 어떻게 하지? 저는 ‘무조건 닥치면 한다, 미리 겁내지 마라, 그리고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는 손을 많이 구하라’고 얘기해줘요. 예비 여성과기인이 가진 것을 너무 축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더 담대해지면 좋겠어요. 결국 여성과기인 뿐만이 아니라 인문사회 등 모든 분야의 여성연구자가 얼마나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좌우된다고 보거든요. 여성연구자 스스로 이런 자신감과 책무성을 가져야 사회적인 인식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관계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일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18 공공기관장 워크숍’
(사진 왼쪽부터 다섯 번째) 맹선영 연구원. <사진 출처=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