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월호 포커스 人

“탄탄한 인문사회과학이
GDP 5만달러 시대 마중물”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신임 이강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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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BTS의 빌보드 2관왕 수상만큼이나 기쁜 소식입니다. 아시아권의 반짝 유행이라 생각했던 한류의 인기도 지난 10년 간 오히려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며 이제 전 세계가 추종하는 파워 트렌드 중 하나로 당당히 위치를 굳히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이런 놀라운 문화적 성공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이강재 본부장은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자생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튼튼한 인문사회과학 역량이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시민사회, 5만 달러 선진국 진입의 열쇠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연구재단이 끊임없이 수혈을 받는 이유

지난 11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선임된 이강재 본부장은 인문사회 분야의 기초학문인 문헌학(philology), 그중에서도 유교 문헌에 집중하고 있는 중문학자입니다. 공자와 논어 해석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삶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지요. 미국과 함께 새로운 양극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역시 큰 관심사입니다.

Q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두 달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적응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연구자의 입장으로는 그간 연구재단이 진행하는 개인연구와 집단연구 과제 대부분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어 대략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재단이 저와 같이 외부의 인력을 수혈하는 것은 실제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적용하며 정체될 수 있는 시각을 넘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재단의 관리자적 특성을 설명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Q연구재단에 대해 익히 잘 알고 계셨겠지만 구성원의 한 사람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으실 듯합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 입장에 서면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연구재단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연구비 지원 과정의 신뢰도나 행정적인 측면의 경직성을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고요. 하지만 연구비 집행과 관리라는 연구재단의 속성상 상대적으로 자율성이나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여건 내에서 어떻게든 보다 더 연구자들에게 좋은 제도와 지원방식을 고민하는 연구재단의 노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문후속세대 지원이 곧 국가의 미래”

이강재 본부장의 이력을 살피다 보니 주기적인 간격으로 발생하는 변화들이 눈에 띕니다. 1999년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교수에 부임한 그는 10년 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로 1년여의 재충전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흐른 2019년 말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취임하며 익숙했던 학자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Q대략 10년마다 일신상의 변화가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질문을 받고 돌아보니 과연 그렇더군요.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게 된 것은 대학에 직장을 잡고 근 10년간 정신없이 달려온 뒤였습니다. 학교 보직 때문에 출국 직전까지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떠나게 돼서 곤란이 컸지만 넉넉한 자연과 가족의 품, 그리고 다른 걱정 없이 관심사에 매달릴 수 있는 연구환경 덕분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이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동양의 고전만을 고집하던 제가 더 보편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Q다시 10년이 흘러 이제 학교 밖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계십니다.

미국에서의 1년을 제외하고는 늘 교내의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몇 개월 간 중국어 표기를 위한 위원회 활동을 제외하고는 학교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학교 안에서 해결하려 했고,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사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의 좁은 단위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Q신문칼럼이나 토론회에서 시간강사 문제 등에 걱정이 많으셨는데요. 같은 연장선상의 고민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에 대한 빈약한 연구지원 체계와 함께 학문 후속세대 혹은 동행세대인 비전임 교원들의 불안정한 신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학 사회에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박사 학위자들의 전임교원 충원이 급격히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의 박사학위 배출자가 과거에 비해 급속히 늘어난 반면,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으로 전임교원을 새로 충원하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연구소 내에 박사학위 전임직을 설치하는 인문한국(HK), 한국사회기반연구(SSK) 등의 사업이 시작됐지만 비전임 연구자의 수요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자신들이 원해서 한 공부이니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학원의 박사과정은 취미로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 한 사람의 당당한 연구자이며 현재의 전임교원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는 그 공백을 채우고 학문을 혁신해 갈 중요한 인력들입니다. 학문의 미래는 곧 국가의 미래인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조차 없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학문에 매진하고자 하는 후학들이 없어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국가의 책임과 지원이 절실한 지점입니다.

Q학문후속세대의 연구 단절을 막기 위한 지원 방안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요?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비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학술주제뿐만 아니라 신진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지속돼야 합니다. 올해 초 교육부가 ‘2020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통해 발표한 바처럼 인문사회 분야 신진연구자 3,300명이 최대 4천만 원의 국가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비전임 연구자들의 안정적인 연구 기반 확충을 위해 현재 179개인 인문사회 분야 연구소를 197개로 늘려 약 400명의 박사급 연구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추격형 아닌 선도형 인문사회 발전 모델”

‘국가연구개발비 투자비중 1.1%’라는 수치가 상징하듯,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적 관심은 푸대접을 넘어 ‘무대접’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오랜 무관심과 홀대 속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지키며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문화 강국의 바탕을 다져왔습니다. “이렇게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분야가 또 어디 있느냐”는 이 본부장의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Q인문사회 분야 전반의 연구 지원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인문사회 분야 R&D 예산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연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집행하는 예산을 모두 다 합쳐도 전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1%대에 불과합니다. 사실 인문사회 분야가 실험이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문인만큼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0% 수준의 과제 선정율을 놓고 비교해도 과학기술 분야보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구자들의 비율이 무척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지레 포기한 연구자들의 숫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수혜율이 이보다 한참 더 떨어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첫 번째 임무로 연구예산의 안정적인 확보와 증액 노력을 꼽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Q연구비 확보와 함께 이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지속가능성,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데이터도 중요합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처럼 전문 정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학술연구 지원의 타당성을 설득할 수 있는 기본 자료와 논리가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그런 바탕이 없습니다. 개별 연구소 혹은 개별 연구만 있을 뿐 중장기적 전망에 의거해 인문사회 전반의 학술지원 정책을 추동할 만한 기반이 없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인문사회 분야 씽크탱크의 역할을 연구재단이 담당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학계 역시 힘을 모아 지속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Q인문사회 분야의 위기와 정책적 뒷받침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요. 혹시 해외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을 수는 없을까요?

해외의 인문사회 진흥책은 분명 참고할 만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인문사회 지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평가에는 그 나라 고유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인문사회 발전 역시 추격형이 아니라 선도형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모두 탄탄한 인문사회 기반 위에서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이뤄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진정한 시민사회,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역량을 더욱 탄탄히 하기 위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후속세대가 더 높은 수준의 풍요와 문화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군자의 길이 곧 리더십이다”

공자는 55세에 이르러 관직을 버리고 모국에서 찾지 못한 이상세계의 답을 찾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합니다. 이강재 본부장 역시 공교롭게도 비슷한 나이에 대학을 벗어나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이란 새로운 길에 나선 까닭에 부쩍 더 공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헤아려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Q본부장님의 많은 글들 속에서 리더십에 대한 고민들이 자주 엿보입니다.

공자는 늘 이상적인 국가 공동체의 구현을 고민했습니다. 논어 역시 관직으로 나아가 이상세계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제자들과의 대화이지요. 저는 그가 얘기하는 군자를 리더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수련하는 군자의 길이 곧 리더의 길인 것이지요. 자기 수련이란 곧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리더는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각자의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Q본부장님 역시 이제 연구자, 교육자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계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자리가 큰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연구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이제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지요. 여전히 미지수라고 답해드릴 수밖에 없지만, 함께 열심히 고생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만큼 계속해서 소통하며 책임을 다하려 하고 있습니다.

Q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서 계획하고 계신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요즘 본부 구성원들께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산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실천하자는 것인데요. 대표적인 것이 연구자들을 위한 적극행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원사업의 공고된 일정을 최대한 잘 지키는 것이 연구비 지원 이상으로 연구자들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실천이 연구자와 연구재단의 신뢰를 높여가는 데 큰 밑바탕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About the interview

이강재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인문대학 기획부학장 및 인문학연구원 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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