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호 포커스 人

지식 만드는 기초연구 지원
“핵심은 호기심·자율성 존중”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공학단 오승탁 단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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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부품, 기계장비 등은 산업의 가치사슬 측면에서 다른 완성품과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후방산업에 속합니다. 평소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반도체·정보통신·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경쟁력과 신뢰성을 좌우하는 막후 실세 같은 존재들입니다. 또한 국민 삶의 질과 안전, 안보까지 국가사회 유지의 중요한 골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오승탁 신임 공학단장은 향후 2년 간 재료, 화공, 기계, 건설·교통 등 공학 분야의 기초연구 지원을 맡게 됩니다. 그는 “지식을 만드는 기초연구는 오늘 연구한다고 내일 바로 결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닌 만큼 보다 차분하고 신중한 준비로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구심 품었던 마음 미안해”

오승탁 공학단장은 분말 소재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분말소재기술은 도자기를 제작할 때 흙으로 만든 형상을 가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드는 원리와 비슷합니다. 기존에는 주조공정으로 제조가 불가능한 텅스텐 등 고융점 금속제품 제조에 응용되는 전통기술이었지만 최근에는 나노 크기 입자를 합성해 새로운 기능성의 정교한 융복합 소재와 3D 프린팅 같은 적층제조 등의 핵심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Q연구재단에 오신 지 석 달째가 되셨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첫 3주간은 공학단의 업무파악에 힘썼습니다. 오랜 시간 교수 생활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정시 출퇴근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계속되는 과제평가로 바쁘게 지낸 것 같습니다.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연구재단에 신청했던 과제가 탈락했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공학단장이 돼서 평가기획과 최종선정 업무의 속살을 보게 되니 예산 확보부터 평가자 선임, 평가 진행까지 연구재단이 전문성과 투명성,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약 2주 정도 대학중점연구소, 선도연구센터 등의 대형과제 선정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마음 한편으로 제가 가졌었던 억울함과 의구심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Q공학단장으로서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소감과 목표를 소개해주세요.

오랜 기간 학교에서만 지내다보니 타성에 젖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 3D 프린팅, 로봇 같은 4차산업혁명 관련 연구가 계속 등장하면서 세상의 흐름을 더 넓게 파악해야 할 때라는 개인적 욕구가 있었지요. 공학단장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그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습니다. 더불어 공학단장으로서 그리 길지 않은 임기지만 우리나라의 기초연구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많이 가기도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고민과 경험을 통해 쌓아올린 공학단 업무에 그간 제가 보고 듣고 느꼈던 연구현장의 바람을 조금 더 접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단장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바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지원제도는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 성장해왔습니다. 이런 방식은 짧은 기간 당면한 문제해결에 효과적이지만 끈기 있는 연구가 필요한 기초연구에는 적합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많은 부분이 상향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시책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기초연구자들이 바라는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 조성에 힘을 보태고자 하고 있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협회는 ‘Dem Anwenden muss das Erkennen vorausgehen’이라는 모토가 유명합니다. 의역을 하면 연구에 있어서 지식이 응용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업적 응용이나 정량적 목표의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한 지적추구를 통해서만 탁월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연구자를 신뢰하고 연구자의 호기심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긴 호흡의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연구지원 체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요원한 소부장 강국의 길”

소재와 부품, 장비 등의 기초연구가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2019년 불거진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UN공업개발기구(UNIDO)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세계 제조업 지수에서 한국은 전통적인 소재·부품·장비 강국 독일과 일본, G2국가인 중국과 미국에 이어 수년째 5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Q소부장 강국 독일과 일본에서 10년 간 활동하셨습니다. 귀국 후에는 연구재단 및 NST 평가위원, 분말야금학회장 등으로 교육과 연구, 정책 전반에 걸쳐 많은 경험을 쌓으셨는데요. 향후 한국의 공학 분야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의 방향성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로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연구개발 지원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핵심 소재들의 국산화율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초소재와 기계 분야의 경쟁력이 향상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해당 분야의 강국들인 독일과 일본의 기초 기술을 따라잡을 만한 수준이 아니지요. 이와 관련한 공학 분야의 연구개발 지원은 단기와 장기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관점은 제조관련 기술 지원입니다. 중소·중견기업이 주도하는 민간주도의 정책지원을 통해 각 기업에 특화된 제조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국산화할 수 있는 연구비와 세제·행정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민간 주도로는 첨단 소재와 부품 자체의 국산화가 어렵습니다. 기업 특성상 오랜 개발 기간과 막대한 자금·인력의 투입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공, 금속 등의 기초소재와 기계부품 등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의 꾸준한 R&D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공학단은 응용분야를 고려한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연구재단 소재·부품단과 함께 장기적인 연구개발 지원을 위해 관련 기초연구비 확보와 새로운 연구과제 창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공학기술 발전의 핵심은 잘 훈련받은 사람들, 즉 박사과정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 학문후속 세대의 양성입니다. 따라서 학문후속세대가 요구하는 내용을 분석하여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최근 공학단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현안을 소개해주세요.

현재 공학단은 2022년 적용을 목표로 수요자 중심의 분야별 지원체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요자 중심의 분야별 지원체계는 관련 분야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일선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연구체계와 발전방향을 수립하고 연구재단이 이를 지원하는 형태입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학회와 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자문위원회 등을 개최하며 세부 사업 유형과 연구비 비중, 적정 선정률 및 연구 수혜율 등의 분석 작업을 마쳤고 1차 초안에 맞춰 예산 안배 등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향후 관련 학회들을 통해 추가적인 의견수렴과 조율이 이뤄지게 되는 만큼 더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좋은 의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Q공학단 소관 분야인 재료, 화공, 기계 분야 등에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연구현장의 분위기와 대응 상황은 어떠한가요?

디지털 전환은 협업과 집단혁신을 촉진하여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공학기술과 관련된 제조업 분야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기업의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도구로 많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등을 이용하는 기초연구 역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도구라고 생각되며 이미 실제적으로 많은 연구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이용이 연구의 절대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도구여야 하며 목표가 되어선 안 되지요. 여전히 기초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폭넓은 지식을 기초로 한 호기심과 창의성, 인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기초연구 투자법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는다.”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의 공로로 25번째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된 요시노 아키라의 수상 소감입니다. 그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지라도 장기간에 걸쳐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과학기술 강국 일본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10년간 노벨상 수상자들의 추이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핵심 논문 생산에는 평균 17년이 걸렸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17년간 때로는 쓸데없는 일이란 시선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끈기 있게 연구를 이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3년, 길어도 5년 안에 성과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연구자는 지식도, 경험도 축적할 틈이 없습니다.

Q연구와 일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 나름의 해결 방법이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으시다면?

그다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운동이나 별다른 취미가 없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 대부분 연구소들이 큰 호수를 끼고 있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 느껴지면 호숫가를 산책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대학에 있을 때도 캠퍼스에 작은 호수가 있어서 산책을 많이 다녔는데 이곳에서도 비슷한 환경이 있는지 찾고 있는 중입니다. 또 다른 정신 이완법이라면 진화론이나 문화인류학에 대한 책을 읽은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과 비교종교학자인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자주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찾아 읽곤 합니다. 박물관도 자주 찾는 편이고요. 오랜 세월에 걸친 생명체의 진화, 인류의 생활과 문화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규칙성과 변이를 찾아내는 과정이 공학의 사고체계와도 닮아 있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곤 합니다.

Q끝으로 연구자와 웹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초연구는 일반적인 시선을 볼 때는 별달리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일들이 쓸모를 찾아서 발전하게 됩니다. 지식이 응용을 낳는 것입니다. 2017년 네이처 리뷰 케미스트리(Nature Reviews Chemistry)에 ‘무익한 지식의 유용성에 관해서’(On the usefulness of useless knowledge)란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기초연구는 새로운 기술을 창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도박이다. 이런 도박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방법은 뛰어난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기초연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혁신적인 돌파구는 하룻밤 사이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쓸데없고 사소해 보이는 연구라도 10~20년 쌓였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독일과 일본의 끊임없는 노벨상 수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견 기초연구자에게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신진 연구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연구지원 체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R&D 생태계가 기초부터 응용까지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bout the Interviewee 오승탁 공학단장

한양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금속연구소와 일본 파인 세라믹 연구소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연구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평가위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자문위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소재부품산업 기술 위원장, 국가기술표준원 국제표준화 위원, 한국분말야금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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