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국가안보, 군사학의 지향을 나란히 놓은 것은 군사학 분야에 대해 요구하고 싶은 바가 아니다. 그보다는 군사학에 대한 나의 바람이며 내 일생의 테마 라고 할 수 있다.
사관학교에서 몇 십 년 동안 정치학을 가르치다가 2년여 전에 일반대학교로 옮겨 갔다. 대학원을 마치고 5공화국 말기에 군 복무를 위해 잠시 사관학교 교수요원(단기 교수사관)으로 갔던 것이 그대로 붙박이가 되어 어언 30여년이 지났던 것이다. 군부정권 와중에 군에 들어가서 민주주의 시대에 군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처음 수업에서 생도들에게 “잘못된 반공이 용공이다”라고 했다가 생도들의 항의 비슷한 질문 세례를 받고 보안 부서로부터 신원조회를 다시 하겠다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강의를 위해 채택한 교과서가 이적표현물*로 반입불가로 통보되었다가 번복되는 일도 있었다. 자본론을 번역한 분이 필진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하게 항의해서 무사히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이적표현물 :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을 찬양, 고무, 선전하거나 이적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또는 이적단체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 혼란 조성을 위해 쓰이는 문서나 그림, 기타 표현물
가는 자와 남는 자, 현실에서 헌신과 명예로운 삶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반대의 경우처럼 기억하기 싫은 ‘가는 자’가 될 것인가? 젊은 생도들에게 명예와 가치는 중요한 문제였다. 국가안보를 위해 때로는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생도들이 올바른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절실한 것이었다. 정치에 개입한 잘못된 역사 속 정치군인들에 비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가는 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전직 대통령 둘이 내란음모죄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을 때 사관학교 신문에 “너희들은 그들의 후예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군인들도 군인이기에 앞서 민주시민이어야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개인으로서 민주시민의 정체성이다. 사관학교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것이었다. 제도로서의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있어서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이라고 해서 사관생도들 개개인이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군인들도 군인이기에 앞서 민주시민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알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겠는가? 군에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확립하는 등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군기를 해이하게 하거나 군 조직을 훼손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군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은 내부를 진정으로 단결시켜 더 강한 군대를 형성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적 요소가 안보에 보다 기여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고대 그리스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보다 강한 이유도 민주주의 시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며, 껌을 질겅질겅 씹었던 미군이 독일군을 결국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자유를 알았기 때문에 이를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제도로서의 군의 정치적 중립 못지않게 개인으로서의 민주시민은 중요한 문제였다. ‘시민이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고 군인이 군복을 벗으면 민주시민’이 당연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문민정부’라는 용어 자체가 개인으로서 군인이 당연히 갖게 되는 민주시민의 자격을 부정하게 되는 모순을 드러냈다. 실제로 미국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장군이 전역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때 정부는 문민정부인가? 무민정부인가? 생도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문민정부가 부적절한 표현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아이젠하워가 군 출신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았다. 민간인이라는 표현 대신 시민이라는 표현이 보다 객관적이고 의미가 있다.
시대가 변하여 민주화가 진전되며 우리사회도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들어섰다. 9·11테러는 국가안보가 이제는 총체적이고 다차원·다면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총력안보라는 말이 어느 시기보다 실감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국민들이 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저절로 국가안보는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국가안보는 사관학교에서의 학문적 여정의 주어요, 술어였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안보의 기초
사관학교에서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일반대학교로 2019년 후반 옮기게 되었다. 무거운 중압감과 부끄러움 속에 군문에 들어와 안도감을 갖고 시민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군부정권 시대에 사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민주화된 시대에 일반대학에서 군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게 된 것은 역설이었다.
민주주의와 국가안보는 정치학과 군사학, 군인과 시민, 사관학교와 대학을 관통하여 여전히 주효한 나의 테마였다. 청주대학교에서 군사학 관련 과목을 가르치면서 민주주의가 국가안보의 기초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를 반대하던 유럽 국가들과의 결전장이었던 발미 전투*에서 “Vive la Nation?(조국을 위하여, 만세!)를 외치면서 풍전등화의 프랑스를 벼랑 끝에서 구해낸 힘은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적시했듯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발미 전투(Bataille de Valmy, Kanonade von Valmy, 1792. 9. 20 프랑스 동북부) : 대프랑스 동맹군에게 밀리던 프랑스 군대가 전황을 역전시킨 전투로, 혁명 후 급조된 의용군이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프러시아군을 저지한 기적적인 사건
(이미지 출처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민주주의가 혁명 이후 프랑스 군대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어 국민들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면, 어떤 위협이나 위험도 돌파하고 국가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학이 결국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안보, 군부정권 시절 진정한 국가안보를 실현하기 위한 설명변수로서의 민주주의가 민주화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안보의 중요한 독립변수라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지혜 필요
역사를 통한 경험과 이에 대한 추론 혹은 직관, 통찰력은 사회과학의 기본일 것이다. 군사학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가 반복한다는 것은 동일한 반복되는 경험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복될 수 있는 배경은 필연이며,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다. 이러한 필연과 우연은 군사학에서 과학과 술(術, art)로 표현된다. 과학이야말로 경험적·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제시할 수 있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패턴에 대한 인과적 메커니즘이다. 군사학도 사회과학의 일반론에 속박된다는 것이다.
술(術, art)은 과학에 기반하지만 과학으로 입증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용병술로 대표되는 술의 영역은 클라우제비츠가 군사적 천재(military genius)로 표현하려던 부분이다. 필연과 우연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잘못된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최근 미얀마 군부 쿠테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여 년 전 광주의 판박이 같기 때문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저항의 의미로 세 손가락을 치켜 들고 있다. 이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을 든 것을 저항의 상징,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AP통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역사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학문의 목적이 단순히 현실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면 군사학의 지향은 민주주의의 실현 속에 국가안보를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박봉규 청주대학교 군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