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지역소멸'은 더 이상 잠재적인 위기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구매 수요가 없어서 방치되는 '빈집'이 읍면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대규모 지방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의 위기는 장기간의 저출생만이 아니라, 수도권으로의 '인구 이동'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지역경제의 주춧돌이 되어야 할 20~30대 청년층의 수도권으로의 대규모 이동은 지역소멸 위기를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데는 생활문화 중심지로서 수도권이 갖는 매력이 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는 곳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부상하는 '신산업들'이 연구개발과 인재육성 인프라가 우수한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위기와 대학 위기가 맞물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역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없이 지역이 살수 없고, 지역이 살아야 지역 대학에 학생들도 유입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역과 대학이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지역과 대학이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연계하여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을 짜고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부에서 최근 발표한 'RISE 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구축방안)'은 지역과 대학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RISE 체계는 비수도권 지역의 지자체와 대학들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체계로, 양자의 상생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지역 대학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지자체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을 기대하기 위한 것으로 2023~2024년간 7개 지역(경남, 경북, 대구, 부산, 전남, 전북, 충북)에서 시범 운영을 한 후 2025년에 전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RISE 체계는 지자체가 지역혁신을 위해 수립한 계획과 연계하여 지역대학들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인재양성-취‧창업-정주'의 지역발전 생태계를 구축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지역중심의 '상향식(bottom-up) 접근'은 지자체와 대학간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대학들의 기능과 역할 조정도 촉진시킬 수 있다. 지자체가 지역혁신계획과 연계하여 대학재정을 지원함으로써 각 대학들이 각자도생을 위한 유사·중복학과 개설을 지양하고, 지역산업의 활성화에 필요한 분야 중심으로 학과를 재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재정지원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서 지역 대학들이 지역 인력수요 보다는 사업선정 가능성이 높은 학과를 개설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대학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재정 확충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역인재 육성이나 지역내 산학협력의 활성화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인력수요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지역내 산학연 네트워크를 가장 폭넓게 구축하고 있는 지자체에게 지역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권한을 확대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권한이 지자체에게 주어질 때, 지역 대학들이 지자체가 가진 수많은 협력기관 중의 하나가 아니라, 지역혁신계획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대학 발전=지역 발전”의 등식이 만들어지면, 지자체는 지역 대학에 대한 행재정 지원과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 노력하게 되고, 지역 대학들은 기능 재편을 통해서 지역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RISE 체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대효과는 해외사례를 통해서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서 우선 과거 1차 산업중심 도시에서 오늘날 '글로벌 스타트업 도시'로 변모한 핀란드의 에스포(Espoo) 시를 들 수 있다. 에스포시는 지역 대학인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와 협력하여 스타트업 지원에 집중하여 평균 개인소득(66,960 유로)이 헬싱키(63,543 유로) 보다 높고, 주민의 20%가 15세 이하인 젊은 도시가 되었다. 알토대 자체도 고등교육 혁신 사례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2010년 학생수 감소, 산업구조 재편 등에 대응하여 3개 대학(헬싱키기술대학, 헬싱키경제대학,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의 통합 대학)이 통합한 대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스포시와 알토대 사례는 지역 혁신과 대학 혁신이 맞물릴 때, 지역성장을 위한 시너지가 발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국 최대 연구단지라고 할 수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 RTP)'의 성공 사례는 지역의 성장과 혁신에 지자체-대학-산업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 요건임을 보여준다. 1959년에 설립된 RTP는 3개 지역 대학(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과 협력함으로써 '제2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울만큼 신생 스타업의 산실이 되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2020년 사이가 지역인구가 약 9.5%(90만명)가 증가하였고, 평균 개인소득도 약 73%(2019년 기준 $47,766달러)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RISE 체계의 목적 실현을 위해서 지자체와 대학, 산업체 등이 함께 고민할 때, 지역산업에 필요한 인재들이 육성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역 성장 산업도 창출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RISE 체계는 가속화되고 있는 지역소멸을 '중단'시키고, 지역성장을 위한 '신(新) 동력'을 찾기 위한 담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동 사업을 통해서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중앙정부에 의한 하향적(top-down) 지역대학 발전 패러다임이 마침내 폐기되고, 지자체와 지역 대학에 의한 상향적(bottom-up) 패러다임이 전면 도입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지자체에게 지역대학에 대한 강화된 '영향력'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지역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하는 '새로운 책무'도 부여한다. 따라서 앞으로 지자체들은 지역 대학, 산업체 등과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지역혁신과 지역대학 발전을 위한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수반될 때,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대학이 산다”는 RISE 체계의 캐치프레이즈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