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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김민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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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BK21사업 중간평가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4단계 BK21사업 시작 당시 예고되었지만,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 방식이 양적평가(정량평가)에서 100% 질적평가로 전환된 것은 사업에 참여한 교육연구단 및 연구팀에게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만큼 질적평가 100% 전환은 선도적이고 파격적인 변화였다. 양적평가(정량평가)에 익숙해져 있던 연구자들에게 질적평가의 도입은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곧 연구의 깊이와 가치를 진정으로 평가받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단계 BK21사업까지는 연구 성과의 정량적 개수가 많을수록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우리나라의 SCI 논문 총편수가 세계 12위로 발돋움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SCI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는 2018년 기준 32위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논문의 인용 수를 평가에 반영하는 QS(Quacquarelli Symonds) 세계대학순위, THE(Times Higher Education) 세계대학순위도 정체되어 있었다. 왜 이런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의 괴리가 생겨났을까? 전반적으로 양적평가는 연구자들이 논문 실적 개수를 늘리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심도 있는 연구보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연구를 선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양적평가(정량평가) 방식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연구는 거듭된 실패 속에서 나타나는 법이지만, 실패 시 성과가 나지 않아 평가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연구자들은 도전적인 연구를 가급적 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성과가 보장되며 대체적으로 논문의 개수가 많아지는 연구에 집중하게 되지 않았을까 판단한다.
이제는 양적평가(정량평가)가 아닌 질적평가가 시행되고 있다. 또한, 많은 수의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 연구실적에 대한 질적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설령 연구 성과의 수가 조금 줄어들더라도, 그것이 질적으로 우수하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성과 도출의 양적 압박이 줄어들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와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가 더 활성화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기존의 양적평가(정량평가) 방식은 일부 연구자들이 연구 실적을 부풀리도록 유도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연구 실적의 개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존 연구를 일부 변형하거나 중복 연구를 통해 실적을 부풀리는 사례도 종종 보고되었다. 또한, 부실의심 학술지에 투고하여 실적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학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한, 양적평가(정량평가) 방식은 연구 성과가 잘 나오는 특정 연구 분야에 인력과 재원이 편중되는 문제도 유발하였다. 대학에서는 연구 성과가 잘 나오며,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분야 위주로 채용을 진행하고 지원도 확충하는 등, 결국 해당 연구 분야의 인력만을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악순환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고, 연구의 다각화와 혁신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100% 질적평가로의 전환은 학문적 다양성을 촉진하고, 새로운 연구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연구를 장려할 것이다. 이는 학문적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고, 학술 생태계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개수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흔히 연구의 질적 지표로 오인되는 Impact Factor(IF) 및 Eigenfactor Score(ES)는 연구자 개인의 업적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라 저널을 평가하는 지수이며, 학문 분야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한편,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FWCI)는 학문 분야의 특성을 고려하여 연구자 개인의 업적을 인용 수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인용의 질은 평가할 수 없으며, 최신 연구 성과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학문 분야라는 것도 저널 출판사의 선택에 많이 의존하며 연구 분야와 저널의 학문 분야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다. 지난 3단계 및 4단계 BK21사업 선정평가 시 이러한 지표들을 사용하여 연구의 질적 수준을 정량적으로 평가하였으나, 과연 이러한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아 있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저널 출판사의 선택에 따라, 해가 바뀔 때마다 변경되는 지표보다는 전문성을 지닌 연구의 깊이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동료평가(peer review) 기반 질적평가 방식이 더 신뢰할만하다는 것이 한국연구재단과 4단계 BK21사업 중간평가 정책연구진의 결론이었다. 그렇게 도출된 4단계 BK21사업 중간평가 방식이 대표연구 성과 기반의 질적평가였다. 4단계 BK21사업 중간평가부터 모든 대표연구 성과는 교육연구단(팀)이 선택한 연구 분야를 주전공으로 하는, 동 분야의 전문지식이 있는 연구자가 연구 성과의 우수성과 적합성을 고려하여 평가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각종 지표는 참고용으로만 쓰이도록 하였다. 이번 평가 방식의 개선으로 연구 성과에 대한 질적평가가 보다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물론 질적평가의 비중이 늘어나고, 이러한 평가가 동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많은 연구자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평가위원의 주관적 의사에 의해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가 광범위하지 않은 경우 이해관계에 얽혀 평가가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한국연구재단은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고 동 분야의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는 평가위원 풀(pool)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노력은 다양한 배경과 시각을 가진 평가자들이 평가에 참여함으로써 특정 연구 분야나 평가위원에 대한 의존성 편향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평가위원들이 BK21사업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하도록 안내하면서 평가위원들 간의 교차 검토를 통해 평가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어나간다면 질적평가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데에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연구업적물 질적평가 100%라는 창의적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해야 질적평가가 유지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당 분야에서의 질적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질적평가 100%를 추구한 것은 연구의 질적 성장과 건강한 학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함이며,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 활동이 보장되는 미래는 우리 연구자들이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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