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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ICT 코리아 위상 대내외 과시 기회”

유혁 고려대학교 정보대학 학장(한국연구재단 ICT·융합연구단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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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의 멋진 활약이 펼쳐지는 스포츠 축제이자 한국의 수준 높은 정보통신 기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ICT 올림픽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세계 최초의 ‘5G(5세대 이동통신) 올림픽’을 표방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5G를 비롯해 IoT(사물인터넷), UHD(초고화질 방송), AI(인공지능), VR(가상현실) 등 첨단 ICT 기술이 총출동합니다.

유혁 고려대 정보대학 학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훌륭한 5G 발표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함께 단순히 우리의 첨단 ICT 기술을 알리는 무대로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장비를 비롯해 국내 정보통신 기술과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피력했는데요.

유혁 학장을 만나 정보통신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미래, 평창 동계올림픽이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을 들어보았습니다. 국내 최고의 네트워크 가상화 분야 전문가답게 분산과 기회,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ICT 올림픽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유혁 고려대 정보대학 학장

“연구재단 지원으로 네트워크 가상화 연구 여기까지”

  • 정보대학 학장을 오랫동안 맡고 계십니다. 학기만큼이나 분주한 겨울방학을 보내시고 있을 것 같은데요.

    2013년에 학장으로 취임했으니까 햇수로 벌써 6년이네요.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 정보대학 신설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장기집권’ 학장이 되었습니다(웃음). 다른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지만, 방학이라고 한가하게 보낼 여유는 없습니다. 학장을 맡고 있어 더 그렇고요.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물러나면 쉬엄쉬엄 일해야지 마음먹고 있습니다.

  •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굵직한 연구지원 사업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에는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요.

    재단의 지원 때문에 좋은 연구와 기술 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도약사업에 선정됐는데 매년 5억 원씩 5년 동안 지원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네트워크 가상화 연구개발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때 결실을 본 연구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클라우드처럼 서버를 가상화하는 개념은 많이 알려졌지만, 네트워크를 가상화한다는 개념은 이쪽 분야에서도 생소했거든요. 지금은 ICT 분야에서 상당히 핫(Hot)한 기술로 부상했습니다.

  • 처음에 지원받기 쉽지 않았을 텐데,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렇죠. 처음에 이동통신사 관계자에게 네트워크 가상화를 이야기했더니 “아하, 그래요?” 정도의 반응이 돌아오더군요. 그런데 제가 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3년 정도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을 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네트워크 가상화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겠느냐고요(웃음). 초기에는 사람들이 서버 가상화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보통 클라우드에서 사용하는 개념인데요. 이게 사실은 사용자가 서버의 일부만 사용하는 건데 마치 전체를 사용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가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네트워크를 쓰는 것인데도 마치 전체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오는 거죠.

  • 이 연구 프로젝트가 재단과의 첫 인연은 아니시죠? 학장님께서 처음 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제가 교수로 부임해 처음 제안서를 써서 1996년 신진연구자 지원 대상에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지원액이 700만 원이었는데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적은 액수였지만, 당시 저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았습니다. 이후 핵심연구를 거쳐 재단에서 시행하는 연구 과제 프로세스를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연구에서 재단은 줄곧 동반자였고, 이러한 재단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온 지 23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연구를 진행하는데 재단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혼자 집무를 볼 때 자주 서서 일한다는 유혁 학장

“SW교육은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

  • 학장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소프트웨어 교육과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워서 공부하고 이것을 실력으로 평가하는 것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지 않죠. 뭔가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은 사람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사람은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죠. 그래서 저는 시험도 오픈 북(Open book) 방식으로 봅니다. 심지어 최근 몇 년간 제출했던 시험 문제도 알려줍니다. 평가의 핵심은 답을 정확하게 맞히는 게 아니라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논리적이냐 하는 겁니다. 20여 년 동안 교수를 하며 단 한 번도 같은 문제를 시험에 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의 힘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것이 기술과 접목할 때 큰 힘을 발휘합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은 바로 이런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체가 없다’라거나 ‘과장된 구호’라든가 하는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학장님께서 생각하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무엇인가요?

    조금 더 편리한 세상이 아닐까요? ICT의 발전으로 세상은 많이 편리해졌고 빨라졌습니다. 마치 과거에는 걷거나 말을 타고 며칠씩 가던 거리를 자동차와 기차의 등장으로 하루, 혹은 몇 시간 만에 가게 된 것과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존재합니다. 여담으로 말씀드리면 제 처가 가장 싫어하는 게 인터넷 뱅킹입니다. 정보통신이 발전하면서 편리해진 점도 많지만, 여전히 불편한 점도 많습니다. 또 여기서 소외된 사람도 생기게 되고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처럼 첨단 기술이 그 간격을 메워주는 시대가 곧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봅니다.

  • 낙관적 전망 못지않게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가져올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한 사회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디지털 혁명으로 불렸던 3차 산업혁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잘 몰라도 무조건 가야 했죠. 또 하나는 그것으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조금 양상이 다릅니다. 뭔가 정리하고 가고 싶은데 또 새로운 시대가 몰려온다니 피로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요. 사회 구성원 간에 이익과 손해가 뚜렷하게 갈립니다. 예를 들어 ‘우버’의 등장으로 기존 택시 운전사들은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죠. 따라서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변화에 따른 준비가 필요합니다.

  • 이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거나 속도 내야 할 일이 많을 텐데요.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의 역사에서 배경을 찾기도 합니다.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해 절대 군주의 권력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13세기부터 이러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이후 명예혁명까지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조금 더 많은 대중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생겼다는 거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것이 산업혁명의 사회적 바탕이 된 것입니다.

  • 정보통신 기술이 그렇듯 4차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누군가 정보통신 발전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법과 제도 개선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법과 제도가 민주적이고 포용적일 때 과학기술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래서 부의 고착화가 심화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고 이것이 법과 제도로 보장된 사회라야만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SW중심대학 지원사업 참여기업 간담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유혁 정보대학 학장. <사진제공=고려대 정보대학>

“평창올림픽, 5G 기술 쇼케이스 무대로 충분”

  •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ICT 올림픽으로 만든다는 계획인데요.

    저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충분히 그런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5G 기술의 쇼케이스로는 이렇게 좋은 무대가 없습니다. 스포츠 경연장은 5G를 비롯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초고화질 방송, 가상현실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ICT 기술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최적화된 공간입니다. 이러한 기술이 실제 어떻게 구현되고, 어떻게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서비스로 이어질 것인지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 단지 동계올림픽으로만 그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기반 기술로 이어져야 할 텐데요. 이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이러한 기술을 구현할 때 우리가 만든 장비가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자부해왔지만, 네트워크 장비는 대부분 외국산을 사용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단순히 쇼케이스로만 끝나지 않고 네트워크 등 관련 분야의 장비를 더 많이 국산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네트워크 가상화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그런 게 더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지금 네트워크 분야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데요.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이럴 때 한 번 우리도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의 필요성과 공감대가 확산되어 기회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와 관련해 우리 재단과 연구자들도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당부나 건의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정보통신 분야는 그동안 바텀 업(Bottom-up) 방식의 연구개발 사업이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선 현장이나 연구자들이 ‘앞으로 이런 기술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런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하면 그것을 모아 사업을 만들고 지원해주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탑 다운(top-down) 방식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가적으로 미래를 위해 어떤 연구와 기술이 필요하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국가적으로 부족한 기술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바텀 업이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논란의 소지가 상대적으로 작으니까요. 이제 우리 연구자들도 서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연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 끝으로 학장님의 2018년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는 없습니다. 다만 학장을 그만두게 되면 국제교류, 국제협력 활동에 더 많은 힘을 쏟을 계획이고요. 저희 대학 법대 교수님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정보화법 포럼 활동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쉬엄쉬엄 일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할 일이 많네요(웃음).

정보대학 학장실 벽면에는 붓글씨로 쓴 한자성어가 걸려 있다. 유혁 학장의 부친이 직접 써 준 글씨라고.

유혁 학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뒤 미국 미시간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5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1995년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로 부임해 정보대학 신설에 기여하고 2013년부터 학장을 맡았다.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을 개발, 차세대 네트워크 기반 구축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같은 해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ICT·융합연구단 책임전문위원(CRB, Chief Review Board)으로 선임됐다.

한 줄 인터뷰

01. 학장실 벽면에 붙은 문구의 정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박학독지(博學篤志)”

정보대학 학장으로 취임할 때 부친께서 직접 붓글씨로 써주셨다. 글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고[易地思之], 널리 공부하여 뜻을 굳건히 하라[博學篤志]는 뜻이다. 부친의 가르침인 만큼 늘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기려 노력한다.

02. 학장실 중앙에 있는 높은 테이블은?

“가끔 서서 일한다”

서서 일하기 위해서 몇 해 전에 들여놓았다. 허리나 어디가 특별히 아파서는 아니고, 너무 온종일 앉아만 있는 것 같아 시도해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되어 서서 일하는 것도 편하다.

03. 최근 이슈인 비트코인에 대한 견해는?

“화폐냐, 상품이냐?”

규제 여부의 문제로만 논란이 좁혀진 것 같아 아쉽다. 금융, 정보통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상품인지 등의 문제부터 논의했어야 한다. 우리의 파이낸셜 펀더멘털을 재점검하고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