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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처럼 연구개발도 마케팅 전략이 중요하다”

한국연구재단 박병철 국책연구본부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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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미래, 수월성, 공정성,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정의.

요즘 박병철 국책연구본부장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키워드입니다.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는 국가 미래 먹거리에 필요한 연구를 고민하고 기획해서 실행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생명공학, 나노융합을 비롯한 원천연구부터 원자력, 핵융합 등 거대과학, 공공기술까지 포괄하고 있죠. 할 일은 많고 인력과 시간은 제한적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최대의 효과를 내느냐가 박 본부장의 최대 고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7년 12월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으로 부임한 박 본부장을 만나 각오와 계획을 들어봤습니다. 이야기는 나비넥타이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국가 연구개발의 미래 청사진과 방향을 거쳐 연구자의 자세와 책무 등 주제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특히 박 본부장은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정의’를 강조했습니다.

2017년 12월 부임한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박병철 본부장

“세금으로 무슨 성과 남겼는지 정확하게 알려야”

  • 나비넥타이가 인상적입니다. 연구자나 정부출연연(硏) 임직원으로는 보기 드문 모습인데요.

    오늘 같은 날 가끔 합니다(웃음). 오늘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회의가 있고 이렇게 인터뷰 일정까지 잡혀 있으니까요. 매기도 편하고 푸르기도 편하다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고요. ‘나는 준비 되었다’라는 일종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옷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고 봅니다.

  • 나비넥타이를 가끔 매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아마 연구개발 기획·관리, 혹은 경영적인 측면의 연구개발을 고민하면서 ‘나도 한번 나비넥타이를 해볼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 전공은 물론 생명공학입니다. 부전공은 경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경영을 구성하고 좌우하는 요소가 많은데 그중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마케팅입니다. 세일즈라고도 할 수 있고요. 제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신을 파는 게 마케팅과 세일즈의 기본이더군요. 스티브 잡스가 늘 청바지와 검정 터틀넥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 이해가 됩니다. 본부장님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웃음). 연구개발에서도 경영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분야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R&D라는 개념만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R&BD로 개념이 확대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인데요. 저는 재단의 국책연구본부장이기에 앞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몸담은 한 사람의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성과나 결과물을 통해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연구자는 자신의 아웃풋을 알려줄 의무가 있고, 국민은 그것을 알 권리가 있다는 거죠. ‘내가 낸 세금을 저 사람들이 헛되이 쓰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직원들과 함께 국책연구본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SW교육은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

  • 자연스럽게 국책연구본부의 주요 업무와 연결되는 데요. 국책연구본부의 연구개발 사업 기획이나 평가,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재단에서, 특히 국책연구본부의 주안점 가운데 하나가 사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입니다. 연구개발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관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미국의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이 개발한 전략평가 방법에 따르면 사업은 크게 스타(Star), 캐시 카우(Cash Cow), 퀘스천 마크(Question Marks), 독(Dog)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시장 점유율과 사업의 성장률 등을 고려한 사업의 미래 전략을 결정할 때 상당히 유효합니다. 연구개발 사업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용어가 생소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는 이미 사업 관리 차원을 넘어 성공한 사업입니다. 사후 관리만 잘하면 됩니다. 캐시 카우는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익을 내는 성숙한 프로젝트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지원하면 됩니다. 퀘스천 마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사업입니다. 계속 갈지 말지 판단해야 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프로젝트이죠. 끝으로 독은 지는 사업, 일명 일몰 사업입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 기준으로 보면 더 이상 국민 세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죠. 재단 입장에서도 이러한 결정을 정확하게 빨리 내리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거죠.

  • 연구개발 사업에 이러한 평가 방법을 적용한 사례가 있는지요?

    이걸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연구개발과 다소 맞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용어부터 정확한 개념과 뜻이 전달되지 않는 측면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고안한 방법은 일명 ‘연구개발 신호등 관리 시스템’인데요. 연구개발 사업을 파란불, 노란불, 빨간불 등 신호등 색깔에 비유해 구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타나 캐시 카우 사업은 파란불이라고 할 수 있고요. 퀘스천 마크 사업은 노란불, 독 사업은 빨간불에 해당합니다. 산업자원부에 파견되었을 때 이런 연구개발 사업 관리 시스템을 실제 적용했고 상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에서도 일부 적용하고 있고요.

  • 이러한 방식을 연구개발 사업에 적용할 때 효율적인 사업 평가·관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요?

    그 사업이 어느 단계에 도달해 있고, 그래서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이 노란불 단계라는 평가가 나왔다면 단순히 계속 지원할 거냐, 말 거냐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현 상태에서 그 사업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또 특허를 만드는 단계에 와 있다면 변리사를 붙여서 권리·권한을 분명히 해야 하고, 사업화를 고민하는 단계라면 기술사업화 전문가를 지원해줘야 합니다. 여기서 더 발전해 한 부처 단위의 사업이 끝나면 다른 부처에 넘겨 사업화나 상용화까지 도모하는 ‘이어달리기’ 전략도 필요하고요.

박병철 본부장은 연구 분야에서도 ‘정의’의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구 분야에서도 정의의 개념 진지하게 고민해야”

  • 이러한 사업 관리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기획하는 것도 국책연구본부의 중요한 과제인데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 짧게는 5년 후, 길게는 20~30년 후 과연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정부의 과학기술 핵심 키워드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거창하고 추상적인 개념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융합과 정보 기술을 바탕으로 신개념의 기술을 창출하고 이것이 국민의 삶과 직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국책연구본부에서 관장하고 있는 거대·공공기술, 원천기술 분야 역시 국민의 삶과 직결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아니라 다른 누가 국책연구본부장으로 와도 고민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 일선 연구현장의 연구자들이 이런 노력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점에 더욱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국책연구본부장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연구자라 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합니다. 한정된 예산과 자원으로 어렵게 연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파이를 키워 내가 얻을 수 있는 몫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더 많은 예산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하는 것만 전부고 최고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일종의 동업자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 분야에서도 ‘정의’라는 개념을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라면 내가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 계획하고 계신 일이 많을 텐데요. 앞으로 연구개발 지원 사업의 핵심적인 방향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진행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위에서 연구개발 방향과 세부 과제를 정해 지원 사업을 선정하는 탑다운(Top-down)과 연구 현장에서 필요한 방향과 과제를 수렴해 그것을 정책으로 만드는 버텀 업(Bottom-up) 방식입니다. 저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뚜렷하지만, 변화한 연구 환경에 적절하게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큰 틀에서의 연구개발 방향을 잡고 세부적인 연구과제는 연구자들이 정하게 하는 미들 업(Middle-up) 방식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특히 연구 현장에서 자율적인 연구의 장애물로 지목되어 왔던 RFP(연구개발 계획서)는 최소화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 끝으로 임기 동안 이 일만은 꼭 하고 싶다, 혹은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재단의 전체 사업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국책연구본부 사업의 핵심은 수월성과 공정성이라고 봅니다. 서로 상충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간 공평한 사업 기획, 선정, 관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공평무사 청렴결백’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고 싶고요. 이것이 잘 뿌리를 내려 누가 본부장으로 오든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틈 날 때마다 책읽기와 운동에 전념한다는 박병철 본부장.

박병철 본부장은?

전남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분자생물학 및 생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부 미래기획위원회·전략기술위원회 기획위원, 산업자원부 차세대신기술사업 지능형생물정보사업단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단백체의학연구센터장 등을 지냈다. 한국단백체학회(KHUPA) 회장을 역임했다. 연구와 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두루 갖춘 연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의 연구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연구에도 관심을 두고 이것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연구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한 줄 인터뷰

01. 가장 좋아하는 일은?

“시간 나면 책 읽고 운동한다”

전자책을 주로 이용하는데 한 달 결제액만 15만 원 정도 나온다. 과학책부터 인문서, 실용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운동 역시 야외·실내, 여름·겨울 등 장소와 계절,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02. 일할 때의 원칙이나 자세가 있다면?

“공평무사(公平無私) 청렴결백(淸廉潔白)”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는 관리가 지켜야 할 두 가지 계율이다. 일 처리의 잣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개인적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또 하나는 항상 청렴결백 하라는 것이다.

03. 인생철학으로 삼는 격언·문구

“폭력의 최소화, 자유의 최대화”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의 시 구절이다. 어떤 시련에도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굽히지 않는, 지조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