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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마음을 녹이는 감성 촉촉 편지

화가 김환기, 시인 황동규, 가수 루시드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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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되면 정성껏 연하장(年賀狀)을 써서
우체통에 넣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문자가 종이 연하장을 대신해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는데요. 그래서인지 한자 한자 꾹꾹 눌러쓴 연하장이나 긴 긴 편지를 받는 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입니다.

돌아오는 설에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문자를 보내는 대신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너무 오랜만의 편지가 어색할 분들을 위해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세 편의 편지를 준비했습니다.

화가 김환기가 아내 향안에게

(이미지출처: 환기미술관)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이자 현대미술의 거목 김환기. 그는 작품 때문에 힘들 때마다 아내 김향안으로부터 위안을 받았습니다. 키가 190cm에 가까웠던 그는 150m의 아내 앞에만 서면 마치 어린애처럼 변했다고 해요. 그는 평소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고민, 아내에 대한 사랑을 그림을 그려 넣은 편지에 담아 전하곤 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향안은 천재시인 이상의 아내였지만 그를 폐결핵으로 떠나보냈고요. 환기는 일찍이 이혼한 채 세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향안의 주변 사람들은 둘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그녀는 평생 환기의 아내로 살고 싶었습니다. 결국 원래 이름이었던 변동림을 김환기의 아호인 향안으로 바꾸면서까지 그와 부부의 연을 맺었죠. 향안은 그가 술을 마시든 게으름을 피우든 돈을 잘 못 벌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게 환기를 대했다고 해요. 그리고 둘은 생을 다할 때까지 예술의 동반자이자 영혼의 단짝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은 김환기의 그림편지와 드로잉

시인 황동규가 사모하던 여인에게  

(이미지출처: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한때 청춘 남녀들의 가슴을 적신 시(時) ‘즐거운 편지’ 기억하시나요. 영화 ‘편지’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이 열아홉 때,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인을 생각하며 적은 시라고 합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대학생이었던 여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라는 형식을 빌린 편지로 전하고자 했죠.

하지만 아무리 여인을 사모했다고 해도 그는 현실적이고 정직한 남자였습니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해야겠다는 황동규 시인의 의지가 ‘즐거운 편지’에 담겨져 있습니다. 등 뒤에서 묵묵히 하는 사랑, 강요가 아닌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기다림과 함께요. 만일 편지에 내 마음의 미세한 결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어렵다면, 내 마음을 잘 표현한 시 한 편을 담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생 간직하고픈 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비롯한 아름다운 시 70편

가수 루시드폴이 동경하던 선생에게

(이미지출처: 문학동네)

2007, 당시 스위스에서 공학박사 과정을 밟던 가수 루시드폴은 미국에 사는 마종기 시인에게 용기를 내어 첫 편지를 씁니다. 평소 마종기 시인의 시를 무척 아끼고 좋아했지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이였습니다. 그리고 마종기 시인은 선뜻 그에게 답장을 합니다. 그렇게 둘은 2년간 서로 54편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예술과 과학에 대하여, 고독과 그리움에 대하여.


둘은 36년의 나이 차이에도 가수와 과학자, 시인과 의사라는 두 개의 길을 걷는 만큼 공통점이 많았는데요. 루시드폴이 이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마종기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해 절망에 빠졌을 때 수렁에서 구해준 게 의학이었다며 그의 마음을 토닥여줍니다. 그렇게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던 이들은 2013년 봄부터 또 편지를 나누기 시작해 1년간 서로 40편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삶 전체를 아우르는 따뜻하고도 속 깊은 대화가 오고갔죠. 그렇게 둘은 만난 적 없는 낯선 존재에서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었습니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주고받은 94편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