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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없어서 하고 싶은 연구 못하는 일 없어야”

한국연구재단 양영 생명과학단장(숙명여자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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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네요." 부임 소감 질문에 양영 단장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연구재단과 인연을 맺어 왔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재단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라는데요. 그래도 업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이더라도 일선 현장의 연구자에게는 연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양 단장은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연구비를 받지 못해 연구를 중단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또 “재원이 한정된 만큼 모든 연구자를 지원할 수는 없지만, 한 명이라도 더 지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2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생명과학단장으로 부임한 양 단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연구자로서의 철학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양영 단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생명과학단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재원 한정되어 있지만, 한 명이라도 더 지원을”

  • 우선 생명과학단장으로서 임기 동안 이 일만은 꼭 하고 싶다거나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연구자는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문제는 한정된 재원이죠. 모든 연구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곳에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하고요. 또 모든 연구자를 지원할 수 없지만, 한 명이라도 더 보람을 느끼며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어요. 특히 정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연구비가 갑자기 끊기면 연구자 입장에서는 힘 빠지고 허탈하거든요. 최소한 그런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의지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 마련이나 보완도 필요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단장님께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있었죠. 연구를 한창 진행하는데 연구비가 끊기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 일이 현실로 닥치니까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까짓것 하지 말지 뭐’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구를 중단해도 교수는 당장 큰 문제가 없어요. 실험실에 있던 학생들이 문제죠. 연구비가 끊기면 학생들의 인건비를 줄 수 없게 됩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다행히 리서치 펠로우라는 제도가 있어서 실험실에 있던 학생 3명 중 2명이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연구를 계속 진행했던 일이 있습니다.

  • 정부출연(硏) 연구원을 거쳐 대학교수로 계신 만큼 재단과의 인연도 오래되었을 것 같은데요. 첫 인연이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처음 대덕연구단지에 온 게 1990년 5월이었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전신인 유전공학센터에 근무했는데 당시에는 대덕연구단지 인프라가 부족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도룡 네거리까지 가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연구재단 전신인 한국과학재단 앞을 지나갔어요. 속으로 ‘여기는 참 양지바른 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웃음). 그리고 프론티어사업에 참여하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생리활성물질사업단이 있었는데 아디포넥틴(Adiponectin)이라는 물질로 비만과 당뇨를 연구하는 과제를 신청해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지원받은 첫 연구비였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 이후에 대학으로 옮기셨는데, 기초연구 측면에서 출연연구원과 대학의 차이점이나 공통점, 혹은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교육적 기능이겠죠? 연구자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 연구실 못지않게 강의실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강의하는 과정에서 재생산된 질문을 다시 학생들에게 던지면서 또 다른 연구주제를 찾게 됩니다. 이것이 대학의 장점, 혹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반면 연구 환경 측면에서는 여전히 대학이 출연연구원보다 열악한 조건에 있습니다. 대학 실험실에서 고가의 대형 연구 장비를 다양하게 갖추기는 쉽지 않죠. 대학과 출연연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연구한다면, 서로의 단점을 해결하게 되어 국가로서는 큰 이득이 될 수 있겠죠. 최근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가 출연연구원에서도 일부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에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기대가 됩니다.

지난 2월 부임한 기초연구본부 생명과학단 양영 단장이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밝히고 있다.

“생명과학은 돈 많이 들어가는 연구…지속적 지원 필요”

  • 최근 국내·외에서 생명과학 분야에서 핫한 이슈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R&D 정책의 변화 때문인지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동안 생명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이에 비례해 성과는 그리 많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R&D도 마찬가지지만, 생명과학은 특히 R&D의 성과물이 현실에 적용되기까지의 기간이 길고 스펙트럼 또한 다양합니다. 다시 말해 투자의 성과가 결실로 이어지는 주기가 길다는 겁니다. 국내·외에서 그동안 생명과학 분야에 투자했던 결과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 하나둘씩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 연구비가 부족하다, 성과물이 적다는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연구는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연히 국민은 연구 성과물의 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해 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과학기술 발전과 기초연구 투자의 성과로 꽤 많은 감염병, 염증 같은 질환을 정복해 왔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정복되지 못한 난치성 질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연구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과학 분야의 R&D 성과물을 긴 안목으로 기다려줄 필요가 있어요. 결국은 난치질환도 정복할 겁니다.

  • 지금 시점에서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연구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국내에서도 상당한 실적을 올리는 바이오 기업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을 비롯해 생명과학 분야의 경제적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원천기술에서 힘을 가져야 합니다. 대박을 터뜨리는 원천기술이 나와야 이익이 커지게 된다는 거죠. 동시에 여기에서 창출한 이익이 다시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연구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세계적인 원천기술이 나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 지속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투자하고 지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반드시 나온다고 저는 믿어요. 다행히 현 정부에서도 기초연구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국내 생명과학 분야 기초연구 현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생명과학 분야 연구는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특히 재료비가 그렇죠. 줄기세포를 포함하는 동물세포배양, 단백질의 기능연구에 주로 사용되는 항체, 모두 고가의 재료비입니다. 항체 하나가 아무리 작고 소량이어도 보통 냉장고나 TV 한 대 가격입니다. 실험실에 대형 냉장고나 TV가 50~60대는 늘 있는 꼴입니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면서 연구 재료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도 점차 늘고 있지만,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죠. 그러다 보니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요. 미국에서는 60만 원에 사는 항체를 우리는 100만 원 정도 줘야 합니다.

  • 값싼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여부도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겠군요?

    그렇습니다. 또 하나 비유하자면,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항체나 어떤 재료가 필요하면 연구원들이 마치 대형마트에 가서 쇼핑하듯 사 와요. 국내에서는 항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바이오 선진국은 ‘9 to 5(9시 출근 5시 퇴근)’로 연구해도 ‘9 to 9’으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우리보다 연구 몰입도나 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양영 생명과학단장

“줄기세포와 면역세포의 균형 찾는 연구에 관심”

  • 연구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재단이 더 노력해야 할 점, 혹은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요?

    재단은 국내 기초연구의 뿌리를 내리게 한 연구 지원기관입니다. 연구과제 선정이나 평가, 지원 시스템도 다른 지원기관보다 우수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고 봅니다.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더 잘할 수 있게 응원과 지원이 필요하고요. 그래도 불만은 있게 마련입니다. 재단에서도 이런 불만의 목소리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뭔가 필요하고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목소리를 계속 정책적으로 수용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더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생명과학단장으로 부임하기 전, 혹은 단장님이 임기 마치고 대학에 돌아가서 계속 진행하게 될 관심 연구 분야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때 저도 노벨과학상을 목표로 했던 연구자였습니다(웃음). 현실적으로 그 꿈을 접으면서 하고 싶은 연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는데요. 제가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줄기세포와 면역세포입니다. 도롱뇽은 꼬리가 잘려도 다시 꼬리가 자랍니다. 상처를 봉합하고 재생하는 줄기세포가 고도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반면 인간의 몸이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상처가 났을 때 면역세포가 더 활발하게 작용하여 감염을 막는 대신 재생능력은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 세포의 능력과 기능, 역할의 균형을 잘 맞추면 인간은 건강한 면역, 재생능력을 모두 갖추어 장수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만큼 교육에 관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더 좋은 인재를 양성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대학에서도 좋은 인재,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본질은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단순히 학생이 강의실에 와서 강의 듣고 졸업하는 교육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지간한 궁금증은 다 해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은 그런 궁금증의 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궁금증을 가져와 토론하고 새로운 질문을 찾는 곳이어야 합니다. 질문 던지는 학생, 답을 찾는 방법과 생각하는 방법을 도와주는 교수가 만날 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양영 단장은 연구자가 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을 강조했다.

양영 단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국국립보건원(NIH) 연구자를 거쳐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고교 시절 유전공학의 매력에 빠져 이 분야로 진로를 선택했다. 한때 노벨과학상을 받겠다는 원대한 꿈을 키우기도 했다. 현재 인재양성과 함께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인간이 더욱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남기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 줄 인터뷰

01. 단장님께 첫 연구비란?

“자신감이다”

연구과제 신청해서 처음으로 연구비 받았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에게 그 첫 연구비는 자신감이었다. 연구비를 받아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다는 자신감. 다른 연구자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 같다.

02.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무조건 헬스장으로 간다”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깨나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그러면 하던 일을 접고 무조건 헬스장에 가서 뛴다.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소모되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하나는 꼭 갖고 있어야 한다.

03. 인생철학으로 삼는 격언·문구

“배울 건 배우고, 배운 건 실천하자”

대부분 많은 걸 배웠는데 실천은 않는다는 어떤 철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배우고 배운 걸 활용하는데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모르고 배울 게 많더라. 두 가지를 병행하기로 했다. 계속 배우고, 배운 건 실천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