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배경
한국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거론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다양성 부족이다. 의료 드라마, 추리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내걸어도 어느 틈엔가 그 중심에는 ‘연애’가 있다. 이러한 한국 드라마의 현실은 대중문학에도 적용된다. 한국 대중문학은 여러 장르 중에서 오랜 기간 연애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일본에서 대중의 절대적 호응을 받는 ‘추리’ 장르조차 한국에서는 하나의 대중문학 장르로서 성립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도 언제나 ‘대중’은 있었는데 그 대중이 소비하는 ‘문학’은 왜 정상적인 발전 과정을 보이지 못했을까? 이 의문을 근대적 대중문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 시기 조선 ‘대중문학’의 성립 과정을 통하여 밝혀내고자 한다.
연구내용
근대와 전근대,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립하고 있던 식민지기 대중들의 삶. 식민지기 동안 조선에서 발표된 대중잡지, 대중소설을 중심으로 대중문학 성립의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
번역탐정소설의 수용
수용 과정에서 일어난 원작의 변형과 왜곡 탐색
-
역사소설의 등장
독자의 호응을 얻은 역사소설과 관련한 사회·정치적 상황 탐색
-
연애소설의 성행
두 편의 연애소설을 중심으로 당대 대중문학 속 ‘사랑’의 실체
탐색
-
대중잡지의 소비
대중잡지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와 국민적 공유성 문제
탐색
이를 통해 탐정소설 번역과정에서 발견되는 원작의 변형과 왜곡의 과정, 제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으로 환원되어버리는 연애소설의 운명, 전시동원체제 아래에서 국민적 공유성 확보에 목표를 둔 대중잡지의 구성 등 각각의 장르들에서 다양한 결과를 포착했다.
한국 최초의 추리 소설가 김내성
김내성이 연재한 장편탐정소설 「마인」 (조선일보, 1939. 2. 17)
한 예로 소설가 김내성은 영국의 탐정소설 「붉은 머리 레드메인 일가」를 번역할 때, 탐정소설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추론과 관련된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연애 에피소드는 거의 그대로 살렸다. 이로 인해 조선어 번역본 「붉은 머리 레드메인 일가」는 심각한 주제는 깨끗하게 정리되고, 대중적인 면모를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
이 바탕에는 조선 독자대중의 수준에 대한 김내성의 냉철한 인식이 있었다. 그는 근대적 미디어의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문맹률이 높았던 조선의 상황에서 ‘논리적 추론 과정’을 통한 ‘지적 전율’을 즐길 만한 탐정소설 독자층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핵심성과
이처럼 식민지기 대중문학은 식민지와 제국의 정치적 역학 사이에 놓인 문학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치적’인 문학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일제의 식민정책이 본격화되었던 1920년대에는 일련의 역사소설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거쳐 일제가 성전으로 일컬었던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항해 나아간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는 연애소설과 탐정소설을 비롯한 대중문학의 전 영역이 여기에 ‘동원’되었다.
식민지 시기의
대중문학은
-
근대문학의 성립을 견인하는
동력
-
허약한 독자층과 불안정한
사회문화적 현실 반영하는
지표
-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
전파하는 역할
소년잡지에 실린
일본 모리나가
캬라멜 광고
(1937년 9월호)
연애소설 ‘순애보’
연재 당시 매일신보에
게재된 광고
(1939년 2월 28일)
식민지와 제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절묘하게 반영함으로써 대중문학의 의미를 발견한 이번 저서는 2017년 세종도서선정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었으며, 관련 연구는 2015년 일한문화교류기금 초청펠로십공모에 선정되었다.
활용방안
이번 연구는 동시기 일본 대중문학과의 비교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 식민지기 대중문학의 독특한 특질과 한계를 분석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일본대중문학 연구자들과 협동연구를 진행해, 양국 대중문학의 전개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한 ‘한류’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 우리 대중문화의 한계를 파악하고 대안점을 도출해내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