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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현장탐방

혁신기술의 비결? “유연한 연구능력!”

KAIST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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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글쓰기 그리고 연애. KAIST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는

이공계 연구실로는 보기 드문 인재 선발기준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 후학을 길러온 조병진 센터장만의 독특한 철학이 녹아 있다.
세상에 없던 기술로 ‘가장 혁신적인 10대 IT 기술’, 그중에서도 그랑프리를 수상한 저력도 어쩌면 이런 유연함에서 비롯됐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유연열전소자

2015년 공학 분야 선도연구센터(ERC)로 닻을 올린 KAIST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는 유연열전소자와 응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출범과 같은 해 넥스플로 어워드(Nexplo Award) ‘가장 혁신적인 10대 IT 기술’에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은 바로 그 ‘웨어러블 발전기술’이다.

프랑스의 기술평가기관인 넥스플로는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2006년부터 매년 전 세계 전문가와 기업인 200명의 투표를 통해 IT 분야의 혁신적인 기술 10개를 선정해 왔다.

조병진 센터장의 주도로 개발된 유연열전소자 기술은 한국 최초로 10대 기술에 오른 데 이어 그중 최고의 기술에 주어지는 그랑프리의 영예까지 차지한 바 있다.

조병진 센터장

그동안 그랑프리를 수상한 기술 중에는 실제로 세상에 큰 변화를 불러온 경우가 많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대명사인 트위터,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3D프린터가 이 상을 통해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그런 만큼 유연열전소자 기술에 쏟아지는 관심 역시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해당 논문은 그해 해당 저널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논문 중의 하나가 되며 관련 연구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열전(熱電)은 온도의 차이로 전위차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를 열전소자로 구현하면 전위차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센터가 개발한 유연열전소자는 열전반도체를 잉크 형태로 만들어 얇은 유리섬유에 인쇄한 것이다. 이 소자를 몸에 부착하면 체온이 전달되는 안쪽과 바깥의 온도차를 이용해 발전을 할 수 있다. 자체 냉난방이 가능한 의류를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에 부착하는 의료센서 등을 별도 충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15년 센터가 수상한 유네스코 '세상을 바꿀 기술' 그랑프리

의료에서 IoT까지…혁신산업 창조의 꿈

뛰어난 가공성을 지닌 유연열전소자

센터의 유연열전소자 기술이 특히 더 주목받고 있는 것은 뛰어난 가공성 때문이다. 기존 사각형 평판구조의 열전소자는 곡선이 많은 인체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유연열전소자는 어떤 형태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열원(熱源)이 되는 신체의 굴곡이나 움직임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센터가 개발한 유연열전소자는 국내의 벤처기업을 통해 상용화에 성공, 현재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을 세계 유일의 유연열전소자 생산국에 올려놓은 이들은 요즘 유연열전소자 기술을 더욱 폭넓게 응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목 착용형 유전열전소자를 실험하는 연구원들

이들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센서들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면 사람들이 많은 센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주변 기기와 일상적으로 통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센서들을 일일이 충전해야 하는 상황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사물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센서의 전력공급 문제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센터는 이를 인체의 열을 에너지원으로 언제 어디서나 지속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유연열전소자로 해결하는 게 목표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과 센서 네트워크 기술을 융합한 자가 발전형 시스템(self-powered system)이 그것이다. 더불어 유연열전소자 기술을 상온용 발전과 냉각, 중온용 발전까지 확장해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산업군을 탄생시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그들의 활력에는 이유가 있다

운동은 빠른 자기회복력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을 의미합니다. 연애를 잘하는 남학생은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타적 성향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쓰기는 논리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능력의 지표이지요. 학습능력보다 이런 기본적인 자질을 가꾸는 데 더 집중하는 건 우리 연구원들이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조병진 센터장

조병진 센터장과 16명의 젊은 연구원들이 함께하는 센터는 연구실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중동(靜中動)의 묘한 활기로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분석과 측정, 응용, 시스템 최적화까지 열전소자 기술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쁜 가운데서도 매주 한 번씩 열리는 공동 체육활동은 빼먹을 수 없는 행사다. 동료들끼리 혹은 다른 연구실과도 간식내기 농구 축구시합이 펼쳐지곤 한다. 운동에 재능이 많은 이들이 모인 까닭에 간식은 주로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의 몫일 경우가 많다.

KAIST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 연구원들

유도가 취미인 최형도 박사과정 연구원은 소재의 특성 향상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소자를 균일하게 양산하는 데 필요한 신뢰성과 재현성이 주요 관심 분야다. 민간항공사에 근무하며 기체 정비 업무를 맡았던 그는 전자 분야를 독학하며 느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KAIST에 입학, 센터의 연구원이 되었다.

운동을 강조하는 이곳의 분위기가 관계를 다지고 팀워크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연구를 하다 안 풀릴 때 지치지 않고 계속 매달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김충선 박사과정 연구원은 유연열전소자의 구조 최적화를 연구하고 있다. “센터의 특성상 다른 연구팀들과 공동연구가 많다 보니 한 주제에 빠져 있을 때보다 흥미로운 일이 많이 생긴다”는 그는 “여자친구 대하듯 섬세하게 신경 쓰면 더 효율적인 소자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며 웃는다.

석사과정 2년차에 접어든 김성호 연구원은 매달 한 편씩 써내는 독후감에 어떤 힘이 숨어 있었는지를 요즘 여실히 실감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읽고 쓰다 보니 어느 틈엔지 굉장히 쉽게 독후감을 써내려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요.
특히 논문을 쓸 때 똑같은 실험결과여도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홈커밍데이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 센터 연구원과 졸업생 가족

센터는 연구원들의 독후감을 매달 홈페이지 ‘문화칼럼’ 난에 게시하고 있다. 어느새 1,300편을 훌쩍 넘긴 독서량뿐만 아니라 어느 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수준급의 내용들이 읽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독후감에 대해서는 연말 송년회에서 ‘문학상’이 수여된다. 유연열전소자 기술센터 내에서는 대외적인 논문상이나 발표상보다 더 영예로이 여기는 상이라는 게 연구원들의 전언이다.

조병진 센터장은?

1990년대 초부터 활동해온 반도체 전문가이며 세계 최초 싱크로노스 256메가 D램 개발의 주역이다.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와 실리콘나노소자연구센터 초대 디렉터를 거쳐 2007년부터 KAIST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그래핀연구회와 관련 심포지엄의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열전소자를 포함한 나노 에너지 분야로 연구 테마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연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는 후학의 양성이다.

“교수는 연구자 이전에 교육자여야 합니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 교육을 희생해서도 안 되고, 교육을 잘 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연구결과보다 좋은 연구자, 우리나라를 이끌 좋은 리더들을 길러내는 게 제 인생의 큰 의미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