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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식물에게 배운 인생 사용법

서필준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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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준 교수의 20대는 식물과 닮아 있었다.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처럼 그는 한 가지에 깊이 심취해서 쉬이 다른 것을 엿볼 줄 몰랐다. 그가 푹 빠진 대상은 바로 ‘식물’. 식물은 그의
감성을 자극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했다. 단조로운 생활이었지만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은 그의 일상을 늘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몰입의 시간 덕분에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로 임용된 서필준 교수. 그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오히려 의욕적으로 학생들을 이끌며 과감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식물의 대기 온도 감응 매커니즘’, ‘식물 스트레스 극복 메커니즘’, ‘식물 생태시계 안정성’ 등의 굵직한 연구성과를 연이어 냈다. 태생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한계를 지니지만, 그 한계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생존법을 터득해나가는 식물처럼.

Profile

  •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
  •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부교수
주요
연구분야
  • 생체시계 안정성
  • 세포 탈분화 및 재분화
  • 펩타이드 호르몬

생체시계로 생존하는 식물

우리 몸 안에는 하루 24시간을 나누어 생체리듬을 조절해주는 ‘생체시계’가 존재한다. 생체시계에 따라 우리 몸은 밤 0시에서 3시 사이에 깊은 수면에 빠지고, 아침 6시쯤 잠에서 깨어나며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또한, 오전 10시쯤에는 각성도가 고조되어 회의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면 효과적일 수 있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식물 또한 사람처럼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식물은 사람처럼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생체시계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서필준 교수는 이러한 식물 생체시계의 비밀을 ‘크로마틴 구조 변형’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식물배양실에서

  • 세상의 빛이 될 연구

    식물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낮과 밤에 바뀌는 온도의 변화 주기를 기억하여 식물체내에 빛의 주기와 온도의 변화 시점을 미리 알려주죠. 이 덕분에 식물은 밤의 갑작스러운 저온도, 낮의 고온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식물의 생존에 있어 생체시계는 매우 중요한데요. 특히, 지구 온난화로 지구 환경이 점점 바뀌는 요즘, 변화된 환경에 식물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생체시계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식물의 생리 및 물질 대사 등을 정교하게 제어한다면 환경 스트레스에 강한 식물 개발 등 작물의 형질 개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 크로마틴 구조 변형과 생체시계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는 크로마틴(chromatin)을 이루는 DNA와 단백질인 히스톤(histon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외부 환경에 따라 크로마틴 개조가 일어나 유전자 발현 양상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마치 용도에 따라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희 연구팀은 환경에 따라 바뀌는 식물 생체시계를 이러한 ‘크로마틴 구조 변형’의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합니다. 식물 생체시계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맞춰 호르몬 분비, 물질대사 등 식물의 안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요. 이 때 안정적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낮과 밤의 길이 변화가 발생하면, 생체시계도 유연하게 이와 일치될 수 있는 ‘동조화’가 이루어져야 하죠. 현재로서는 동식물의 생체시계 네트워크가 매우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복잡성 속에서 ‘유의미한 단순함’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식물생체시계 구동에 관여하는 크로마틴 변형과정에 대한 모식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언제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서필준 교수 역시 정확히 언제부터 식물 연구에 즐거움을 느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 같다고.

식물을 연구한 지 벌써 15년 째. 그는 지금도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을 관찰하고, 식물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식물이 주는 답을 듣는 것이 즐겁다. 특히, 어떤 환경이든지 이를 피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식물의 영리함은 늘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한 가지 대상을 오래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박사졸업식에서, 지도교수님과

  • 연구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

    저희 어머니는 환갑을 넘기셨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계시는 발레리나이십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봐오던 어머니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식단조절을 하고 계시고, 무용 연습은 주말도 없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죠. 무용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가족인 저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오랫동안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은 제가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요한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발전시켜나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 내 인생의 행운, 한국연구재단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한국연구재단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화학부 박사시절, 제 지도교수님인 박충모 교수님과 연구실 학생들은 재단의 지원으로 부족함 없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고요. 전북대에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2013년에는 재단의 ‘글로벌연구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를 만나 공동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식물 생체시계 연구의 대가 중 한 분이신 Paloma Mas 교수님입니다. 처음 ‘크로마틴 구조 중심의 생체시계 조절 연구’에 관심 가졌을 때부터, 그 분의 논문들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꼭 만나고 싶었었죠.

    한국에 방문하신 Paloma Mas 교수님과

    2017 올해의 신진 연구자 시상식

    당시 한국연구재단에서 공모한 글로벌연구네트워크 사업을 보고, Paloma Mas 교수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바로 얼굴도 모르던 교수님께 공동연구를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이 사업에 선정되어 저희는 최고의 파트너쉽을 가지는 공동연구 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앞만 보면서 달리던 작년에는 재단의 ‘올해의 신진연구자’에 선정되어 제 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죠. 재단은 제 인생의 행운인 동시에,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지원기관입니다. 앞으로도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각자의 연구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도록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꿈꾸는 연구자

서필준 교수에게 2012년 9월은 특별했다. 그가 전북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던 해였기 때문이다. 29살 젊은 나이에 교수로 발탁된 그의 소식은, 교수신문에 ‘잠재력 있는 신진세대를 선점하려는 대학가의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보도되기도 했다. 서필준 교수는 그 시절을 가리켜 많은 것이 부족했었기에 오히려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었던 때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열정은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 또한 과감하게 했고, 그 때가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전 성균관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서필준 교수. 여전히 그는 감성적으로 ‘식물’을 바라보며 그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동료 연구원들, 학생들과 함께.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 나는 연구할 때 [연구자로서 미래에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수행한 연구는 우리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 이 세계에 남아 회자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 때문인지 늘 완벽함을 기하려고 노력하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구가 현재 어떤 한계로 인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른 연구 과제에서는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연구 활동에 최선을 다하되, 우리가 이끌어낸 연구 결과를 가치 있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 나는 [감성이 함께하는 논리적인] 연구자를 꿈꾼다.

    생물학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감성을 자극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구할 때, 생물을 감성적으로 바라보면 더 많은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앞으로 저는 생물을 연구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폭넓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저만의 전략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연구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상상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으로 말이죠. 단,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기본 위에서 대상에 대한 이해를 키워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필준 부교수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식물생산과학부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화학부에서 식물분자생물학 및 생화학 전공으로 석박사통합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서울대와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북대학교 화학과에서 조교수로 교육 및 연구활동을 했고, 2016년부터는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식물 생체시계 구동 및 안정성에 관여하는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과 식물세포의 탈분화 및 재분화 과정에 관여하는 분자 기전에 대한 연구이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식물 생체시계 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