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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의 인문학

인문학과 함께 한 건축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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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예술이다.
사람은 모두 건축에 관련되어 있기 떄문이다."

-존 러스킨-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활을 담는 건축과 수많은 건축물들이 모여 생성된 도시는 인문학 그 자체죠.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총서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인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의 책입니다. 수학, 철학, 물리학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건축을 바라보는 그는 이 책에서 도시와 건축을 인문학적 영역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은 인류 문명의 원류인 고대 문명, 그리고 중세 문명의 중심축인 건축과 도시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통해 오늘 우리의 건축 도시 공간이 된 과정을 설명하고, 디지털 혁명이 이룬 21세기 건축 도시의 새로운 물결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건축가 김석철

한강 여의도 일대 척박한 땅을 오늘날의 금융의 메카로 탈바꿈시킨 ‘여의도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건축가 김석철입니다.

그는 한국 건축의 양대 거장인 김중업과 김수근으로부터 모두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제자로, 20대에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계획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예술의 전당,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보문단지, 해인사 신불교단지 등의 작품을 내놓았죠.

1963년, 침수된 여의도 양말산 주민들

1968년 본격적인 개발이 착수되기 전 여의도 전경

현재 여의도 전경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오랜 투병생활 끝에 2016년 5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50대 후반, 식도암 선고를 받은 뒤 세 번의 수술을 해야만 했지요. 10여 년 넘게 투병생활을 해온 그는 임종 직전까지도 설계도면을 놓지 않았다고 해요.

40년 전 도시설계와 건축설계를 시작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오랜 세월 건축과 도시를 통해 인문학의 인프라를 만들고자 노력한 그의 의무와 사명이 깊이 느껴집니다.

인문학의 하드웨어, 건축과 도시

인문학은 공동체의 큰 흐름을 보게 하는 학문으로,
우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하드웨어를 이해하기 위한 모든 학문의 기초다.
인문학의 바탕 없이는 어떤 일에서도 탁월함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지혜가 인문학에 담겨 있는데,
그것을 공부하지 않거나 모르고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없다.

김석철 건축가는 위와 같이 인문학을 정의했습니다.

인문학에 있어 자신은 관객이지 무대의 사람은 아니며, 가장 손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독서라고 이야기했어요.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넘나든 그 동안의 독서가 건축가로서의 여정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가 로마 시내에 있는 고대 로마 도시 포로 로마노에 들어섰을 때, 포로 로마노가 얼마나 훌륭한 도시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치와 경제, 문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로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명의 땅이었는데요. 아우구스뚜스 황제는 로마를 예술적인 도시로 다듬었으며,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안보, 종교, 상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신교도인 로마인들은 포로 로마노에 상당수의 신전을 세웠고, 이곳에 거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최고 제사장뿐이었다고 해요.

현재 폐허로 남은 고대 로마 도시 포로 로마노

원래의 상태로 복원해본 그림

이 외에도 김석철 건축가는 사서삼경, 주역 등을 탐독한 결과 유학의 발원지이자 동양 인문학의 메카인 중국 취푸 신도시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이는 곧 ‘주역과 풍수지리 원리에 의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고대 문명의 가장 큰 상형문자인 그들의 공간, 즉 건축과 도시를 인문학과 관련시켜 이야기한 김석철 건축가. 그에 따르면 인문학은 도시 문명과 함께 시작되어 건축과 도시설계의 중심이었으며, 건축과 도시 공간은 인문학의 하드웨어인 것입니다

한반도의 인문학

유럽의 중세 사회는 격동의 시대를 보내며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상업이 부흥하여 도시가 형성되고, 무역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죠.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해방시킨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유럽의 중세 도시는 인류 문명의 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유럽 중세 도시만큼 아름답고 강력한 도시로는 중세 초의 불교 도시 경주와 중세 말 최고의 신도시였던 서울이 있습니다. 특히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시의 한가운데는 한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이 흐르고 있으며, 장엄한 궁궐인 경복궁이 무게를 더하고 있죠.

광화문 전경

하지만 정작 도시 곳곳은 콘크리트의 사막길이 되어버린 서울을 보며, 그는 역사와 지리와 문화공간을 한데 모은 광장을 확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삼각산, 북한산이 광화문, 대한문 광장으로 이어지고, 남산을 지나 한강에 닿는 것처럼 말이죠.

웅대한 자연을 도시 속에 깊이 연계시키는 것이 김석철 건축가가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이었습니다.

경주 황룡사지

경주 황룡사 역사박물관

실제로 그는 경주 황룡사지 9층탑 터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존경 없이 무차별적으로 개발될 위기에 처했을 때, 관광시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 터를 지켜낸 적이 있습니다. 황룡사 9층탑은 신화와 기하학이 건축의 기본을 이룬 2000년 도시 경주의 상징이었는데요. 몽골의 침입 때 불탔으나 우주의 변화를 상징하는 64개의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불타버린 상형문자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죠.

우리는 한반도라는 특정한 공간 영역에서 2000년 문명을 만들어왔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고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은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죠. 사람이 살면서 드나드는 공간이 건축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건축과 주변 공간과의 관계로 건축은 그 모습을 계속해서 달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한부 삶을 살지만 우리의 공동체와 건축은 천 년을 지속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반도 인문학’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지리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우리 시대만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축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자료출처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총서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건축가·명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 김석철)

내용출처

한국연구재단 인문공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