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술의 가능성, TV와 비디오
백남준은 기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작품 활동에 있어 당시 첨단 기술인 비디오를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작품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나 비디오 이미지 합성기와 같은 독창적인 기계의 발명에 크게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기술에 대해 독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체계적인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기술과 예술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영감을 내포했죠.
<로봇 K-456>, 1964년작
<닉슨 TV>, 1965년작
백남준과 신시사이저
백남준은 1963년부터 TV 이미지들을 자유자재로 합성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초기 시도는 흑백 이미지에 컬러를 입힐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던 것이었죠. 당시 컬러 카메라나 컬러 TV는 천문학적으로 비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에 살던 형을 따라 일본에 방문한 백남준은 엔지니어 슈아 아베를 만나 초기 이미지 신시사이저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도 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신시사이저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죠.
〈비디오 코뮨〉의 스틸 이미지, 1970년작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969년작
1970년 여름, 백남준은 아베와 함께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완성했습니다.
제작이 완료되자마자 백남준과 WGBH 방송국은 이를 이용하여 “비디오 코뮨-처음부터 끝까지 비틀즈”를 제작, 방송했습니다. 이 방송은 비틀즈의 음악을 배경으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추상적인 이미지를 반영했습니다. 백남준이 만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아니었지만, 방송용으로 제작되고 실제로 방송 매체로 방영된 첫 번째 사례입니다.
그는 비디오 신시사이저와 같은 예술적 기술이 TV 방송과 같은 거대한 기술 시스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디오 아트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 방향을 뒤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이었고, 따라서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죠.
기술 시대, 예술의 역할
기술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고는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엽에 정점에 달했습니다.
백남준은 주로 TV나 비디오 같은 통신 기술에 대해 생각했죠. 그의 생각은 당시 통신 기술의 현실과 그 기술의 잠재력 사이를 오갔습니다. 현재와 미래 모두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TV 부처>, 1974년작
<글로벌 그루브>, 1973년작
기술은 그 자체의 성격보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바로 이 지점에 예술의 역할이 있습니다. 비디오 아트와 같은 예술은 기술을 변형시켜 낯선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술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죠. 그의 이러한 끊임없는 실험은 현대 사회의 통신 기술이 지닌 내재적 경향성을 극복하는 데 일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