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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삶의 모든 경험이 연구 자산

김현정 (정화예술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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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꽃 다운 청춘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는 어쩌면 이른 나이. 김현정 교수도 그러했다. 노년기는 나와는 무관한 생애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노인발달심리 과목을 수강하며, 노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인생후반부인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까?’ 라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다.

그 후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노인, 노년 등의 키워드로 읽을 수 있는 국내서적과 논문은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석사과정은 사회복지로 전환해 노인들의 삶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Profile

주요
연구분야
  • 질적연구방법 이용한 사회복지실천분야
  •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
  • 정화예술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조교수

무기력한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들이 바라는 인생의 끝은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치매나 뇌졸중과 같이 완치되기 어려운 병을 앓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은 대부분 장기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김현정 교수는 석사과정을 밟은 뒤인 2005년, 장기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적이 있다. 수년이 지나서 그녀가 다시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몇 년 전 뵈었던 노인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노인은 10년 이상을 요양원에서 보낸 것이다. 어떤 노인에게는 요양원에서의 삶이 인생 후반기의 대부분이라는 것. 그 깨달음이 현재 그녀의 연구를 이끌었다.

사회복지행정학회 세미나에서

  • 세상의 빛이 될 연구

    장기요양원은 2016년 말 기준 전국적으로 5,187개이고, 정원은 16만 8천명에 달합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노인 돌봄은 국가의 책임으로 강조되고 있죠. 장기요양시설의 보편화로 가족들의 부양부담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에 비해 노인들이 삶의 질은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노인에게는 요양원에서의 삶이 인생 후반기의 대부분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죠. 이에 현재의 장기요양시설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병에도 불구하고 삶의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요.

  • 장기요양원에서의 삶의 질 개선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은 대부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장기요양원을 택하거나 보내집니다. 하지만 요양원에서는 정서적인 어루만짐보다는 신체욕구만을 충족시켜주는 돌봄이 주로 이루어지죠. 존재 가치의 상실, 구속된 삶에 대한 무력감, 격리된 일상의 답답함이 노인들을 따라다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이는 개인의 태도 변화일 뿐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활동적 노화’의 개념을 장기요양원에 적용해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여 장기요양원에서 일하는 이들, 거주노인, 시설문화의 변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장기요양원에서의 활동적 노화의 적용과 실천’이라는 연구주제로 재단의 2018년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에 선정된 김현정 교수. 작년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참여 유형과 활성화 방안’에 이어 두 번째다. 연구비 지원을 받기 전에는 개인 비용을 들이거나, 복지 현장에서 관계 맺었던 이들에게 협조를 구해 연구를 진행했던 그녀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교수이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한다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연구를 좋아하면 삶 속에서도 연구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성으로만 연구하지 않고 삶으로 행하는 사람. 김현정 교수는 그런 사람이다.

든든한 지원자인 가족들과 함께

  • 연구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

    막내가 돌이 되기 전까지 손자녀를 돌봐준 친정어머니, 독박육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편이 있어 연구자로의 삶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깨달은 것은 제 삶의 모든 경험이 연구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 준 경험이 ‘맞벌이 가족의 손자녀 양육유형과 가족역동’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나왔고요. ‘한국 고령남성의 베트남 이주경험에 관한 질적사례연구’는 남편의 해외파견 근무로 2년간 베트남 생활을 한 덕분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연구자는 지성으로만 연구하지 않고, 삶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저는 대학원 지도교수님이셨던 김동배 교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현재 필요한 이슈들을 찾아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탐구력, 믿고 기다려주는 교수님의 온화함은 여전히 배우고 싶은 모습입니다.

  •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 2년 연속 선정

    교수로서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지적 탐구심이 없다면 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처럼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연구는 필수적이지만, 연구를 위한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연구에 필요한 비용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단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는데요. 처음 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어떻게 하면 선정될 수 있을지, 평가표를 보면서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대학 강의 현장

    사회복지실습 교육 중

    그렇게 2017년, 1년의 연구과제 지원을 받았고요. 이 경험을 통해 두 번째 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사회적 필요성과 연구로서의 가치를 중점적으로 고민한 후, 더욱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그 결과, 2018년에는 3년의 연구과제를 지원받게 되었죠. 특히 이번 연구과제는 하나의 주제를 장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비교적 풍족한 상황에서 즐겁게 진행하고 있어요.

내가 꿈꾸는 연구자

그녀는 석사학위를 밟은 후, 복지현장에서 5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 이때의 경험은 그녀가 연구를 할 때마다 현장에서의 약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도록 만든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할 때, 가장 힘이 약한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탐색하는 연구들을 주로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또한,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타인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만큼, 제자들에게 건강한 내면을 만드는 것에 대해 강조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바로 ‘자기이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통찰해보면 타인을 포용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복지현장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소중하듯 타인을 소중히 바라봐 주고 존중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는 필요한 것 같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노인요양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제자들과의 야외수업

  • 나는 연구할 때 [나의 한계에 도전]이 한다.

    저는 타인과의 경쟁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제가 도전하기를 즐기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현재의 나’입니다. 연구과정에서 소소하게 ‘나’의 벽을 넘어야 할 때가 많이 있어요. 사고의 확장, 더욱 견고해지길 바라는 논리성, 글쓰기 등 할수록 저의 부족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제가 맡은 엄마, 교수, 연구자라는 역할에 압도당한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직면한 상황과 사건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번민하기보다 일단 해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3분, 3시간, 3일, 3주 등 ‘3의 법칙’에 따라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들여 적극적으로 대응해요. 이런 방법을 통해 3일 걸릴 것 같은 일을 3시간 안에 끝내거나, 3달 걸릴 일을 3주면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나는 [백발의] 연구자를 꿈꾼다.

    지금의 노인들처럼 저 또한 공식적인 사회적 역할에서 모두 벗어난 후에도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할 테죠. 그 때 삶의 의미가 되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니, 백발의 연구자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연구자적 시선을 갖고 생활 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굳어졌으니, 백발의 연구자가 되는 것도 괜찮은 꿈이 될 것 같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큰 포부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세상의 변화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며 살아가겠다는 삶의 태도를 오랫동안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제게는 소중합니다.

김현정 교수

정화예술대 사회복지학부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복지현장의 실천적 경험을 쌓았으며,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정화예술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질적연구방법을 활용하여 사회복지실천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을 통해 2017년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참여 유형와 활성화 방안’을 진행하였고, 현재는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의 활동적 노화의 적용과 실천’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