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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연구자

과학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엄숙주의

홍장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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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의사들.

그 의사들의 캐릭터는 다양하다. 야망에 들끓는 의사, 환자들에게 깊이 공감하는 열혈 의사, 냉정하고 이기적인 의사 등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의사들은 당연히 의과대생 졸업생들일 터이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했다고 모두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질환의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의과학자가 있는데, 이들도 머지않아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홍장원 교수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기초의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만일 그가 메디컬드라마에 출연한다면, 매사 농담만 해서 가벼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똑똑한 캐릭터가 어울릴 듯싶다. 실제로 그는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흔치 않은 연구자다.

Profile

  • 신진연구자지원사업 ㅣ 기초연구실지원사업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조교수
주요
연구분야
  • 면역학
  • 선천성면역세포
  • 호중구
  • 패혈증
  • 종양면역학
  • 면역대사학

국내 1% 기초의과학자를 선택한 자

기초의과학자는 의사 면허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갖추었으며, 주로 환자 진료 대신 질환의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교토대 혼조 타스쿠 교수 또한 의대를 졸업한 의사임에도 당시 주목하지 않았던 기초과학 ‘면역학’에 매진한 덕에 큰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과대학 졸업생의 대부분이 임상의사를 선택하기 때문에,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전체 졸업생의 1%도 되지 않는다. 홍장원 교수는 이 1%에 속한 이로, 현재 호중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실험실을 운영 중이다. 호중구는 우리 몸의 백혈구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하는 선천성 면역세포로, 염증성질환 및 자가면역질환 등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2018년 생화학분자생물학회 동계학술대회

  • 세상의 빛이 될 연구

    처음 호중구의 존재가 밝혀진 이후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세포라는 것이 호중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호중구가 비단 염증성질환 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환들의 병태생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요. 저희 실험실은 호중구가 관여하는 질환이라면 어떤 질환이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염성질환의 종착지로 알려진 패혈증에서의 호중구 기능을 연구 한 바 있고요. 최근에는 호중구에서 분비되는 ‘세포외 소포체’에 대한 기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 패혈증 및 염증질환 치료 가능성 열릴까?

    세포외 소포체는 세포간 신호를 매개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진행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그런데 호중구에서 분비되는 세포외 소포체는 다른 세포에서 분비되는 세포외 소포체와 조금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염증부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포체(neutrophil-derived trail, NDTR)와 염증 부위에 도달한 후에 만들어지는 소포체 (neutrophil-derived microvesicle, NDMV)가 바로 그것이죠.

    현재 저는 이 두 가지 종류의 호중구 유래 소포체의 기능 차이 및 패혈증 및 염증질환에서 이들의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 중인데요. 아주 재미있는 점은 NDTR의 경우 뒤 따라오는 면역세포들이 염증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NDMV의 경우는 염증 환경 내에 존재하는 면역세포들이 과다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한 다는 점입니다. 특히, 실시간 형광현미경을 통해 꼼지락거리는 호중구의 모습을 관찰하다보면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홍장원 교수는 어쩌다 국내 1%의 의과학자가 되었을까? 한림대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는 의학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고, 실습 중 환자를 살펴보며 진료의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방학 때 약리학교실 실험실에서 연구학생으로 활동하던 중 연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특히,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가설을 설정한 뒤,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논문화하는 과정은 그에게 아주 큰 재미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대학졸업을 앞두고는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그는 의사 면허만 있으면 언제든지 진료의 길로 돌아갈 수 있으니 연구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호중구와 인연을 맺었던 젊은 시절

  • 연구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

    대학 졸업 후, 약리학 전공으로 석·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는데요. 송동근 교수님의 지도를 받던 중, 처음 받게 된 연구주제가 바로 호중구였습니다. 교수님은 항상 저보다 많은 논문을 공부하시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씀해주셨으며, 모자란 제 의견도 경청해주셨죠. 하지만 학위과정을 겪고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사실 박사학위 이후에는 호중구라는 주제를 멀리하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잠시 호중구에 등을 지고, 국군의학연구소에서 군의관으로 군복무 하던 중 연구비를 할당받게 되었는데요. 무슨 연구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호중구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찌하다 보니 국내에는 호중구만 전문으로 연구하는 집단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내 유일의 호중구 전문 연구 실험실을 운영하게 되었죠. 기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 호중구와 관련된 것은 닥치는 대로 연구하자고 마음먹고, 현재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독립적인 연구자로 설 수 있었던 자양분, 한국연구재단

    기초의과학자의 길을 걸으며, 연구가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임상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 여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점은 오히려 즐거웠죠. 하지만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그렇듯, 저 역시 신분상으로 불안정하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전역 이후인 2012년, 당시 저는 해외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준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송동근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연구교수로 지내고 있었는데요. 불안함을 많이 느껴서 이 길을 포기하고 임상의사의 길로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이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해 준 가장 큰 원동력이 제가 지도하던 학생들과 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이었습니다.

    2014년 연구교수 재직 당시 첫 제자들과

    2016년 학술대회에서 수상학 지도 학생과

    당시 재단의 ‘대통령 Post-Doc펠로우쉽사업’에 선정되어 연구비를 받게 되었고, 이는 제가 독립적인 연구자로 설 수 있는 큰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현재 재단의 신진연구자사업과 기초연구실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아쉽게도 올해부터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사업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참 아쉽게 생각되는 점입니다. 빛나는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어려운 박사후연구원들에게 재단에서 많은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꿈꾸는 연구자

홍장원 교수에게, 현재 진행 중인 호중구 연구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물었다. 마음속에 ‘환자들을 치료하는 빛과 소금’같은 조금은 뻔한 예상 답변을 적어둔 채 말이다. 그의 답변은 역시나 예상을 빗나갔다. 지금의 연구가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될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고, 솔직히 그냥 재미있어서 연구를 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번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호중구 유래 소포체를 패혈증의 진단 마커 및 약물 전달체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호중구의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많은 염증성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등을 치료할 수도 있다. 홍장원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너무 얽매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여 지는 산업화에 대한 강박관념의 주입과 엄숙주의가 많은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다.

2018년 지도 학생 연구 포스터 앞에서

학술대회 발표

  • 나는 [생각을 비우고 재미있게] 연구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연구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아직 많은 분들이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얼마만큼 과학자가 재미있게 연구하는지 이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발명은 대부분 우연에서 시작되었고, 그러한 우연은 과학자의 흥미와 재미에서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혼조 타스쿠 교수 역시 박사과정 학생이 연구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던 면역 T세포를 연구하던 중, 세포사멸에 관련되는 단백질을 찾게 되었고, 어쩌다 암의 면역억제반응에 관련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일 테죠. 연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생각하고요. 또한 연구과정은 99%의 실패와 1%의 성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자 생각을 비우고 연구하고 있답니다.

  • 나는 [불로장생과 세계정복을 하는] 연구자를 꿈꾼다.

    많은 의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이런 저런 목표를 말합니다만, 사실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로장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에 대한 이해를 통한 질병의 극복,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보건복지의 향상과 기대수명의 증가는 모든 연구의 최종 목표이며, 불로장생은 이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로장생을 이루고 나면, 남은 건 과학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세계정복이죠. 닥터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피터 웨이랜드, 헨리 우, 업브렐러 등등 모든 과학자의 최종 목표는 세계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홍장원 조교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사를 취득하고, 약리학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친 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군의학연구소에서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완료하였다. 전역이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연구교수로 재직한 뒤, 2016년 3월부터 현재까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호중구에 대한 연구이며, 패혈증, 종양, 면역대사 등 호중구가 연관된 질환에 대해서 주로 연구 중에 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자사업과 기초연구실지원사업을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