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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현장탐방

활로 찾는 한국경제, ‘데이터’에 길을 묻다

서강대학교 혁신과경쟁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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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니볼’은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구단의 실화를 담고 있다.

오클랜드는 전통적인 약체에 구단 살림도 가난해 스타선수 영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성적 향상을 고민하던 구단주의 해법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경제학자 영입이었다. 팀은 경제학자의 조언에 따라 방대한 경기 자료를 철저히 분석했고, 오직 데이터에 의한 전술과 선수기용만으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20연승 신기록도 달성했다. 그렇다면 혹시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경제도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서강대학교 혁신과경쟁연구센터의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국내 유일의 마이크로 데이터 기반 경제분석

서강대 혁신과경쟁연구센터

최근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당장의 지표개선을 위한 대증요법(對症療法)은 물론 중장기적인 체질개선 전략이 함께 고민되어야 할 시기라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미래지향적인 정책수립의 요구가 커지면서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의 전제조건인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데이터 기반 실증분석 연구집단인 혁신과경쟁연구센터 (센터장 박정수, 이하 연구센터)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센터는 지난 2010년 한국연구재단의 SSK 사업 선정과 함께 닻을 올렸다. 이들의 설립과 성장을 지원하고 있는 SSK(Social Science Korea) 사업은 사회과학 분야 최대·최장 규모의 학술진흥사업으로, 국가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연구집단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센터 구성원들의 지향점은 역시 마찬가지다.
소형과 중형을 거쳐
지난해 대형연구단에 진입한 연구센터에는 현재
11개 대학 24명의 연구전담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이중에는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3명의
법학자와 데이터 과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론과 실증을 넘어
연구성과의 현실 적용까지 염두에 둔 진용이다.

박정수 센터장

박정수 센터장은 “장기적인 연구지원에 힘입어 한국 경제의 작동원리와 변화상을 보다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융합연구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이제 기초적인 학술연구는 물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해결에도 기여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장잠재력이 점차 저하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심각한 부진에 더해 경상수지 흑자를 지탱해온 반도체도 하방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강점이 약점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경제구조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해야 하는데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안갯속입니다. 이에 따른 불안과 혼란이 국가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지요. 저희 연구센터는 이런 현실을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찾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SSK사업의 지원 덕분에 국제적으로도 보기 드문
마이크로 데이터 기반의 경제 연구팀이 꾸려진 만큼 우리 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방안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소속 연구자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박정수 센터장

‘증거 기반 경제정책’ 견인한다

이들은 기업의 혁신과 기업 간 경쟁에 초점을 두고 기업혁신, 기업동학, 시장경쟁, 관련 법제도 등 기업생태계와 관련된 연구주제에 주력하고 있다. 그중 주요 연구주제인 ‘기업성과의 이질화’(heterogeneity in firm performance)와 ‘기업동학’(firm dynamics)은 우리나라의 경제주체 중 생산과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들의 변화상이 경제성장과 산업구조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기업의 역사가 오래 된 서구권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를 기초로 새로운 경제이론과 정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업 선진국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현상은 기업 간 성과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환경이어도 어떤 기업은 매출,
이익, 고용이 늘어나고 어떤 회사는 왜 하락세가 되는지를 분석하고, 이런 기업성과의 이질화가 국가경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생명체처럼 진입과 성장, 퇴출이 반복되는 기업의 생애주기를 통해 산업구조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기업 생태계란 미시 기반의 실증분석을 통해 거시경제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전현배 공동연구원·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연구센터와 한국경제발전학회 등이 공동주최한 2018 국제슘페터학회

개별기업의 합을 통해 거시경제를 이해하려는 연구에서 데이터는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분석에는
기업자료부터 행정정보까지 다양한 데이터가 동원된다. 공공정보 활용에 대한 강한 규제 때문에 수집도
어렵지만, 파편화된 정보의 바다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발굴하는 것은 더 큰 인내와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다. 이런 고충들 속에서도 이들의 열의를 다시 북돋는 힘 중 하나는 ‘증거 기반 정책’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실증보다 규범적인 측면이 더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정확한 사실관계보다 정치노선, 가치관, 시대상 등에 더 영향을 받기 쉬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경제의 기초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곳은 우리 연구센터가 유일한 만큼 더 효용성 높은 정책수립의 조언자 역할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각종 규제책 및 육성정책의 효과를 심도깊게 분석한 연구센터의 논문 중 상당수는 이미 법제도 개선의 강력한 근거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학은 살아 숨쉬는 현실의 학문”

마이크로 데이터 기반의 경제 분석이 한국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연구진이 헤쳐나가가 할 어려움도 큰 편입니다.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의 압박이 큰 편이지요. 하지만 이런 결과물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후속세대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보람이 되고 있습니다.

박정수 센터장

올해로 9년째를 맞고 있는 연구센터는 대외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내생적 성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연구센터는 그간 10명의 박사와 30명 이상의 석사를 배출했다. 이는 한국경제가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장동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7 한일 마이크로데이터 워크샵

2018 국제슘페터학회

손녕선 연구원도 그런 토대 중 하나다. 그는 연구 초반 마치 자연과학 실험실처럼 반복되는 데이터 오류와 끝없이 씨름하는 연구센터의 풍경이 낯설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경제학을 그만큼 더 현실감 있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연구센터의 목표처럼 한국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하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그는 요즘 한국 기업의 국제화와 이에 따른 국내 산업의 구조변화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지은 연구원은 “하면 할수록 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게 경제학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민감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경제학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문입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많은 변인들의 집합체인 경제현상을 단순한 이론 하나로 설명하려 드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힘들고 더디더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분석하고 과학적인 검증을 거듭하는 저희 연구센터의 신중한 방향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왼쪽부터 이우석 연구원, 박정수 센터장, 정지은 연구원

한편 연구센터는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한 실증연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생력 있는 경제연구소로의 발전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AI와 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경제연구에 도움이 될 실시간 경제지표를 제공하는 것도 구상 중의 일부다.

박정수 센터장은 “혁신과경쟁연구센터의 모든 성과는 공공재”라며 “한국 경제의 현안 해결을 넘어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하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박정수 센터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버팔로) 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과 서강대 경제대학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