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호 포커스 人

대학교육 혁신의 나침반
“과학적 진단과 올바른 유인설계”

한국연구재단 남기곤 학술진흥본부장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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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부여되는 ‘능력주의’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기본가치 중 하나입니다. 대학교육은 이런 기회균등과 공정한 출발선의 원칙을 지탱하는 강력한 제도적 사다리로 작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계층 이동이 활발했던 고성장 시대가 저물고 학령인구 또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대학의 미래 역시 큰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남기곤 학술진흥본부장은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이 그 혁신을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추동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육은 매력적인 자연실험 대상”

올해 3월 부임한 남기곤 본부장은 노동경제학과 교육경제학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19세기말부터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현상을 분석해온 노동경제학과 달리, 교육경제학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분야입니다. 교육을 신성시해온 우리 정서로는 약간 거북하게 들리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Q먼저 본부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인 교육경제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교육경제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종종 교육도 시장 논리로 해결하자는 거냐며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고요. 교육경제학은 간단히 말하면 경제학의 사회과학적 틀로 교육이라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금융이나 노동, 산업 분야의 문제들을 분석하는 것처럼 교육 분야를 대상으로 여러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논리나 효율성에 맞춰 교육을 바꾸자는 선험적인 주장을 강조하는 학문 분야는 아닙니다.

Q교육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02년 미국 UCLA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전에 알지 못했던 교육경제학의 새로운 시도들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지요. 교육이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 혹은 준실험(quasi-experiment) 분석에 필요한 소재들이 매우 풍부한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연실험이란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실험을 하는 것 같은 현상을 말하는데, 이를 분석에 잘 이용하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미국에서는 범죄율이 갑자기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매달리다시피 하며 그 원인이 경찰인력 증원, 처벌강화, 예방교육 등이 아닐지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레빗이란 경제학자가 조금 색다른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1970년대부터 허용되기 시작한 낙태가 범죄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낙태가 허용되면서 20여년 후 범죄자 공급 풀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Q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구 결과였겠군요?

재미있고 흥미로운 발상이지요. 이러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도 매우 신선했습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이 아니라 각 주별로 낙태 허용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졌습니다. 진보 성향의 주는 빨리, 보수적인 곳은 늦게 낙태가 허용됐지요. 스티븐 레빗은 이런 지역별 낙태 허용 시차와 범죄발생률 간의 상관관계를 비교분석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마치 낙태와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기획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실험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Q교육 분야 연구에 이런 자연실험 분석이 많이 있다는 말씀인가 보네요.

그렇지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저소득 계층의 자녀에게 사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보조를 해주는 바우처(voucher)제도가 있는데, 이를 이용해 사립학교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사립학교 진학 기회를 주는데, 이게 꼭 실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연구 소재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제도를 통해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 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해 공립학교에 머무르는 학생들을 추적 조사해 보면 사립학교가 학생의 교육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연구들마다 결과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사립학교 효과는 잘 확인되지 않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연구가 높인 행복지수

교육경제학의 새로운 사회과학적 접근법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남 본부장은 이후 자신의 연구력을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집중하게 됩니다. 열심히는 했지만 즐겁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에서 본격적인 학문적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새 연구대상이 교육이라는 점이 그의 행복지수를 더욱 높였습니다. 과학적인 인과관계의 규명이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인 교육문제의 정상화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그간 진행해 오신 연구들을 소개해주세요.

한국에 돌아와 당시 논란이 컸던 고교 평준화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추첨을 통해 학교에 무작위로 배정된다는 것이 흥미로운 자연실험 소재였기 때문이죠. 이어 관심의 대상이 사교육과 재수, 그리고 대학 문제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중 ‘누리사업’에 대한 연구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학생들에게 과연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좋은 자연실험 방식의 연구였고, 제가 여기 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장에 지원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Q어떤 연구였나요?

누리사업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5년 간 1조 2천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지방대학 핵심역량 강화사업입니다. 이후 정부가 바뀌는 가운데서도 링크, 프라임, 코어 등 다양한 대학재정 지원사업의 모태가 된 중요한 사업이지요. 주요골자는 지방대의 특정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는데요. 이처럼 재정지원을 집중적으로 받은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 간의 격차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자연실험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였죠. 대학 졸업생들을 추적 조사해서 누리사업의 수혜를 받은 학과 졸업생들이 전공 만족도나 취업률, 임금 수준 등에서 향상도가 더 높은지를 비교했습니다.

Q실제 분석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연구를 하는 저 역시 무척 궁금했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보고한 자료가 아니라 누리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고용정보원의 대학 졸업자에 대한 추적조사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라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혹시라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요(웃음). 다행히 사업의 효과는 상당히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형사업을 중심으로 졸업자들의 전공 만족도와 취업률이 모두 높아진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취업률의 효과는 희미해졌고, 특히 취업의 질적 측면에서는 누리사업의 긍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뼈아팠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를 회고해 보면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고, 이 지표가 사업의 핵심 평가 지표였습니다. 그러니 대학은 자연스럽게 졸업 직후 취업 여부에만 집중하게 되고, 학생들의 장기적인 노동능력을 향상시키도록 지도하는데 소홀했던 거지요. 대학이 유인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 유인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해요.

“유인 설계 함께 고민해야”

대부분의 사회경제적 활동은 계약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때 권한을 위임하는 자의 이익과 위임받는 자의 보상이 동일시 되도록 만드는 것을 유인 설계(誘引設計, Incentive Design)라고 합니다. 위임자가 원하는 목표에 수임자가 정확히 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남 본부장은 “사람은 유인에 반응한다!”는 경제학의 진리가 대학재정 지원사업을 더욱 효율적인 구조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Q본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학재정 지원사업의 변화 방향은?

그간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들은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됐고, 수혜자인 대학 역시 허술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성과지표가 강조되다 보니 대학 역시 단기적인 취업률 향상 등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대학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원 규모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유인 설계의 틀도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Q다양한 학문적 접근과 정책자문을 통해 우리 대학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해 오신 만큼 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장 부임의 느낌이 더 특별하실 듯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막연한 인식 내지 비과학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도전하고 싶은 연구자로서의 욕심이 있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결과들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고, 또 그 생각이 맞는다면 이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 어떠한 유인설계 구조를 갖추어야 하는지 개선책을 찾는데 노력하겠습니다.

Q학술진흥본부장 부임 후 꼭 한 달 만에 뵙게 됐는데요. 그 사이 지내시기는 어떠셨나요?

사실 저는 지난 30여 년 간 제 연구실 안에서 논문을 쓰고 강의 준비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해본 일이 없습니다. 주로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연구재단의 일은 2조 3천억 원에 이르는 국가예산(연구진흥 및 인재양성사업)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실무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일입니다. 행여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불필요한 주문으로 주위 분들을 힘들게 할까봐 걱정이 많습니다. 아내는 정시 출퇴근하는 저를 보고 가정적이 됐다고 좋아하는데 집에 돌아가면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와 녹초 상태가 되곤 합니다.

전환기 ‘BK21’ 태동기 ‘지역혁신사업’

한국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는 우리 대학들의 학술활동과 인재양성, 산학협력 전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해 1999년 시작돼 어느새 4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BK21 사업’과 새로 시작되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 등 굵직굵직한 대학재정 지원 사업들로 남 본부장과 학술진흥본부 80여 명의 구성원들 모두에게 어느 해보다 분주한 1년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QBK21 사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BK21 4단계 선정 작업은 올해 저희 학술진흥본부의 가장 중요한 사업입니다. BK21사업은 지난 20년 간 3단계를 거치면서 약 5조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습니다. 그간 이 사업을 통해 약 51만 명의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인력이 지원을 받았고 연평균 8,700여 명의 우수한 석·박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발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올해 시작되는 4단계 사업은 특히 ‘질적 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성과의 질적 평가 확대, 대학원생 학업·연구 환경의 질적 개선, 대학원 중심의 교육과 연구의 질적 혁신 유도,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국가·사회적 필요분야의 고급연구인력 육성 등의 4가지 기본방향으로 추진됩니다. 논문 역시 양적인 성과에서 학문발전과 사회문제 해결 기여도 등 질적 성과 중심으로 평가의 기준이 확대됩니다. 대학 스스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Q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새로 시작되는 지역혁신사업은 인구감소 등으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지방의 분산된 역량을 대학 중심의 협력기반 플랫폼으로 결집하려는 것입니다. 지역대학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 유관기관, 산업계가 모두 함께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모델을 구축해 공동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지원대상은 총 3개 지역입니다. 처음 시도인 데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한 시도인 만큼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극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선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Q끝으로 재단 구성원과 연구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학술진흥본부장에 선임된 후 받게 되는 전화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연구재단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지요. 한 달 정도 지내며 그간 몰랐던 연구재단 지원 업무의 어려움과 한계들을 알게 되면서 평상시 연구자와 직원 간 소통의 문제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조금씩 파악을 해가고 있습니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다루는 연구재단은 무엇보다 원칙과 규정이 중요합니다. 안타깝지만 태생적으로 자율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에게는 보다 넓은 이해를, 동료 직원들에게는 단번에 “노(No)”를 말하기보다 좀 더 차분히 규정과 원칙을 안내할 수 있는 이해심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지원하는 사람과 지원받는 사람 모두 내 업무, 우리 대학 교육 사업이 공동체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제 임무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방적인 요구나 지시가 아니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유인 설계를 통해서 말입니다.

About the interview

남기곤 학술진흥본부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1995년부터 한밭대에서 교육경제학과 노동경제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 정책자문위원회 위원과 국가교육회의 고등교육전문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관리위원회 위원장, 한국경제발전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세계경제의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 <실사구시 한국경제> 등이 있으며, 2013년 ‘대학진학은 서울로: 합리적 선택인가?’라는 논문으로 학현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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