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부여되는 ‘능력주의’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기본가치 중 하나입니다. 대학교육은 이런 기회균등과 공정한 출발선의 원칙을 지탱하는 강력한 제도적 사다리로 작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계층 이동이 활발했던 고성장 시대가 저물고 학령인구 또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대학의 미래 역시 큰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남기곤 학술진흥본부장은 한국연구재단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이 그 혁신을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추동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먼저 본부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인 교육경제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교육경제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종종 교육도 시장 논리로 해결하자는 거냐며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고요. 교육경제학은 간단히 말하면 경제학의 사회과학적 틀로 교육이라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금융이나 노동, 산업 분야의 문제들을 분석하는 것처럼 교육 분야를 대상으로 여러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논리나 효율성에 맞춰 교육을 바꾸자는 선험적인 주장을 강조하는 학문 분야는 아닙니다.
교육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02년 미국 UCLA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전에 알지 못했던 교육경제학의 새로운 시도들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지요. 교육이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 혹은 준실험(quasi-experiment) 분석에 필요한 소재들이 매우 풍부한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연실험이란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실험을 하는 것 같은 현상을 말하는데, 이를 분석에 잘 이용하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미국에서는 범죄율이 갑자기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매달리다시피 하며 그 원인이 경찰인력 증원, 처벌강화, 예방교육 등이 아닐지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레빗이란 경제학자가 조금 색다른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1970년대부터 허용되기 시작한 낙태가 범죄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낙태가 허용되면서 20여년 후 범죄자 공급 풀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구 결과였겠군요?
재미있고 흥미로운 발상이지요. 이러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도 매우 신선했습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이 아니라 각 주별로 낙태 허용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졌습니다. 진보 성향의 주는 빨리, 보수적인 곳은 늦게 낙태가 허용됐지요. 스티븐 레빗은 이런 지역별 낙태 허용 시차와 범죄발생률 간의 상관관계를 비교분석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마치 낙태와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기획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실험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교육 분야 연구에 이런 자연실험 분석이 많이 있다는 말씀인가 보네요.
그렇지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저소득 계층의 자녀에게 사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보조를 해주는 바우처(voucher)제도가 있는데, 이를 이용해 사립학교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사립학교 진학 기회를 주는데, 이게 꼭 실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연구 소재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제도를 통해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 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해 공립학교에 머무르는 학생들을 추적 조사해 보면 사립학교가 학생의 교육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연구들마다 결과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사립학교 효과는 잘 확인되지 않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