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호 포커스 人

인류 진화 이끄는 공생
“바이러스도 예외 아니다”

한국연구재단 김희수 생명과학단장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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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 ABC방송은 인류가 바이러스로 큰 고통에 시달리지만 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투쟁하는 가운데 진화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과학기술 진보의 계기가 되는 동시에 오랜 시간 몸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바이러스 출신의 유전인자들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한국인의 이동성유전인자를 규명한 김희수 생명과학단장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그는 공생과 다양성이 자연계뿐만 아니라 학문 발전의 열쇠가 된다고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기원 ‘이동성유전인자’

1990년 시작돼 2003년 완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인간 게놈의 모든 염기 서열을 해석한 초거대 생명과학 사업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참여한 이 국제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하나는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바이러스, 박테리아 유래의 ‘이동성유전인자’가 우리 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초에는 독립된 생활을 하던 박테리아가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로 영구 정착한 것처럼 바이러스 유전자가 숙주의 유전체와 공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Q레트로바이러스 유래의 이동성유전인자란 무엇인가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는 에이즈와 코로나 같은 감염병과 백혈병, 암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원래 모든 생물은 전사(transcription) 과정을 통해 DNA에서 RNA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레트로바이러스는 거꾸로 역전사를 통해 RNA에서 DNA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지요. 최근 레트로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이동성유전인자들이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능의 조절인자이자 생물종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핵심구성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Q현재 밝혀지고 있는 이동성유전인자의 역할은?

이동성유전인자는 특정 조건 내지 적절한 상태에 있다면 생물의 유전체 내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동성을 갖는 것이지요. 이런 특성에 따라 인간 유전체 내에서 RNA를 자르고 이어붙이는 스플라이싱(splicing)이나 새로운 프로모터(promotor)와 인핸서(enhancer) 등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엑손유전자의 생성과 결실, 중복유전자 재조합 등 염색체 안정화에 기여하는 한편 마이크로 RNA를 만들어내 다양한 질병의 원인유전인자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Q단장님의 주요 연구주제는 무엇입니까?

이동성유전인자는 류마티스관절염, 다발성경화증, 신경정신분열증, 남성불임, 당뇨병, 암 등 과 연관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들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작을 밝히게 된다면 유전자 차원에서 인간의 다양한 질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인간과 영장류의 유전체 및 조직, 세포 등을 통해 이동성유전인자의 다양한 정보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동성유전인자가 제공하는 프로모터를 대량 발굴해 그들의 활동성과 유전자의 발현을 비교분석해 암 바이오마커 등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국내 최초 영장류학자

우리나라 최초의 영장류학자이기도 한 김희수 단장은 그간 인간과 영장류의 다양한 비교분석을 통해 인간만이 가지는 이동성유전인자를 발굴하고 인류 진화의 신비를 풀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왔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이동성유전인자 발굴사업을 최초로 완성하며 한국유전학회 생명과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 정보서비스 인용색인 정보(SCOPUS)에 따르면 새로운 학문 분야인 레트로바이러스 유래 이동성유전인자 관련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Q국내에서 생소한 학문들을 전공하시게 된 계기는?

학부 방학 기간 중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를 견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저와 형제자매들의 학비를 대고 계신 상황이라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화학 장교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이 시기에 독학으로 영어와 일어를 공부하며 유학을 준비했는데 우연히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실험동물학을 전공한 예비역장교 한 분이 동원훈련에 들어오며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도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할 거라는 그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Q낯선 학문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당시 제 선택에 많은 영향을 준 게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란 책입니다. 인생은 허세가 아니라 배짱으로 사는 것, 배짱이란 감상적인 마음이 아니라 자기다움으로 사는 것이라는 내용이 큰 영감을 주었지요. 덕분에 드라마나 책에서 나오는 하버드나 옥스퍼드의 학생들처럼 공부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일문과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한 끝에 부산·경남 지역에서 2명이 선발된 로타리클럽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의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Q영장류학에 이어 이동성유전인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가 유전자의 신비한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척박한 사막과 빈곤한 천연자원, 아랍권과의 전쟁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오로지 과학기술의 힘으로 선진국에 오른 나라였습니다. 특히 와이즈만 연구소는 수시로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빙했는데 대학원생, 신진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얻기에 충분한 토론과 학습의 장이 됐습니다. 또 와이즈만은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로도 유명한데 심지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과학자들의 오줌을 이용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조절단백질과 수용체 등을 탐지하고 상품화하는 모습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생명과학이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 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인간이 싫어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곳에 오히려 중요한 보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까지 별 쓸모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동성유전인자의 새로운 기능을 밝히는 연구가 등장했습니다. 큰 흥미를 느껴 관련 논문을 즐겨 읽던 중에 마침 말로만 듣던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관련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배짱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도전했고 결국 이동성유전인자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균등한 연구개발 기회”

옥스퍼드 대학에서 발견한 이동성유전인자 연구의 불씨를 한국으로 옮겨온 김 단장은 자신의 연구에 주력하는 한편,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의 저변확대에도 큰 힘을 쏟았습니다.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 주관의 K-MOOC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생명과학 분야 최초로 명품강좌에 선정된 ‘생명의 프린키피아’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전공서적부터 대중적인 동화책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출판물들을 통해서도 생명과학의 신비와 가치를 전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이런 그에게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장 선임은 또 다른 의미의 꿈이자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Q생명과학단장에 부임한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실질적인 핵심기관에서 국가 연구개발 방향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큰 영광입니다. 동시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와중에 생명과학단장의 첫발을 딛게 된 만큼 더욱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고 적응한다면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위기인 동시에 생명과학과 인류 모두 더 나은 미래로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Q단장님께서 바라보시는 국내 생명과학 연구개발의 발전 방향은?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세계는 ‘인간과 환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기후변화와 신종 감염병 출현 등 환경변화에 따른 인류의 건강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과학 연구개발은 보건의료 서비스 등의 국민 안전에 더해 의약 및 에너지 등 국가 미래 경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점점 더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과 나노기술의 발전 역시 생명과학 연구개발의 새로운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입니다. 이런 자연환경과 사회 변화상에 발맞춰 생명과학 역시 보다 창의적인 융합을 통해 세계적 이슈에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Q생명과학단장으로서 계획하고 계신 목표를 소개해주세요.

우리나라의 생명과학분야 연구지원은 다소 유행에 민감한 편이며 종종 관심과 지원이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공생하며 진화하고 있는 인류처럼 생명과학 역시 어느 한 곳 소외됨 없이 골고루 발전해야 합니다. 생명과학단의 소관 분야인 기초과학, 분자생명, 농수산, 식품 등 모든 분야가 균등한 기회 속에 연구에 주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단장 부임 후 연구재단이 이미 소관 분야 전반에서 균등한 기회와 공정성 기반의 연구지원제도를 잘 준비해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각 분야 학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며 생명과학 전반의 보다 수준 높은 상생 발전을 위한 연구자 중심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연구지원 체계를 실현해 나가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About the interview

김희수 생명과학단장

부산대학교 생물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와이즈만 연구소와 옥스퍼드대학 존레드크립병원 분자의학연구소를 거쳐 1999년 부산대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부산대 유전공학연구소장과 자연과학대학장, 한국유전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유전학> <생명의 위대한 비밀> <침팬지는 낚시꾼> <진화학> <유인원과 유전체정보> <유전체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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