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 포커스 人

“우리 시스템 미·일·EU보다 공정…
필요한 신약개발 보조제는 소통”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김상현 신약단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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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탄생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합니다. 평균개발기간 12.5년, 평균투자비용 1조 7천억 원, 하지만 성공확률은 0.02%에 불과합니다. 1만 개 후보물질 중 단 한두 개만이 신약 개발의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은 천문학적인 편익과 파급효과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헬스를 미래 먹거리인 ‘빅(Big)3’ 중 하나로 선정해 신약 연구개발 현장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예고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김상현 한국연구재단 신약단장은 내년 시작되는 대형 과제들의 3가지 키워드로 ▲협업 ▲플랫폼 ▲표준화를 꼽고 있습니다.

신약개발과 미래세대

최근 정부는 내년 국가 R&D 예산을 올해보다 12.3% 늘어난 27조 2천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살 길은 연구개발 뿐이라는 판단 아래 다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수립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약 4조 원이 국가신약개발과 감염병 대응 등 범정부 차원의 바이오·의료 연구개발 지원 체계 구축에 쓰이게 됩니다.

Q신약단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과제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수행 중인 사업(바이오의료 기술개발·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혁신신약 파이프라인 발굴·가속기기반 신약개발지원·신약분야 원천기술개발)들에 더해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두 개의 대형 과제가 곧 본격화됩니다. 하나는 국내 신약개발 기반과 생태계 구축, 임상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위해 내년부터 10년 간 2조 원 가량이 투입되는 ‘국가신약개발사업’입니다. 또 하나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등 미래의료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재생의료 분야를 전주기적으로 지원하는 ‘범부처 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입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확산예측부터 진단,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전주기적으로 아우르는 신·변종 감염병 대응 플랫폼 핵심기술 개발 사업도 내년부터 수행될 예정입니다.

Q대규모 사업을 앞두고 신약단이 특별히 관심을 쏟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전에 없이 큰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신약단 모두가 물샐 틈 없는 시행 절차와 내용 마련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연매출 1조 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급 국산 신약을 탄생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과제가 어떻게 기획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신약개발은 특히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먹거리인 까닭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고른 발전이 중요합니다. 한국이 잘해온 응용 분야는 더 발전시키고, 소외되거나 미진한 원천기술 분야는 양지로 끌어내는 조화와 균형의 대전제를 이루는데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Q신약단의 중장기적 전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신약단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술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연구자들이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보다 원천성이 있는 논문 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이렇게 창출한 국책사업의 연구성과를 최종적으로 사업화까지 이끌어가려면 어떤 연계방안이 효과적일까? 마지막으로 신약개발이 미래 먹거리라 표현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별적인 소규모 연구만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약개발은 화학, 생물학, 약학, 의학, 분석과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성공을 논할 수 있는 종합학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상당한 융합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게 할 것 입니다. 따라서 이런 신약개발의 오픈 이노베이션과 장기적 투자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가 큰 화두입니다. 여전히 많은 물음표가 남아 있는 질문들이지만 가장 근접한 답은 역시 ‘철저한 기획과 결과검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약(藥)과 독(毒)은 한 몸

신약 개발의 역사는 ‘동굴에서 살아남기’와 비슷합니다. 방향을 분간하기 힘든 캄캄한 동굴 속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 온 극한 도전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오랜 세월 스스로 수많은 임상실험을 감행해왔습니다. 주변의 물질들을 하나하나 직접 맛보며 효능을 확인했고, 또 그 이상으로 많은 부작용에 고통을 받으며 질병 치료와 수명 연장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습니다. 약물의 원리와 효과를 밝히는 학문인 약리학(pharmacology)의 어원이 약과 독의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는 고대 그리스어 ‘파르마콘(pharmakon)’에서 비롯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Q협업과 함께 제시하신 ‘플랫폼’ 구축과 ‘표준화’의 목표도 소개해주세요.

신약 개발 분야에서 한 약물에 대한 연구 과정의 축적, 이른바 플랫폼 기술은 유사한 약물의 개발 과정을 단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폐암 치료제를 만드는 플랫폼 하나가 잘 구축돼 있다면 간암과 췌장암 같은 다른 장기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 기술의 유용성은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미 겪었던 것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연구로 플랫폼 기술이 마련되면 향후 갑작스런 신·변종 바이러스 발생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표준화는 이렇게 앞서 어렵게 쌓아올린 협업과 플랫폼 구조를 사장시키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Q단장님의 연구 분야인 ‘독성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독성학은 약리학의 한 범주로 독성약리학이라고도 합니다. 약리학은 생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에 관한 학문인데 여기서 물질은 자연계나 인간이 만들어낸 약물일 수도 있지만 독물(toxin)일 수도 있습니다. 또 많은 물질들이 용량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오용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는 ‘모든 약은 독이다. 세상에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독성은 숱한 신약개발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약은 결과적으로 효능보다 안전성이 성공과 실패를 좌지우지합니다. 만일 후보물질의 기초연구부터 약효와 함께 안전성 확보를 위한 독성 연구와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 약물별 개인 유전체 반응 및 역할에 대한 학문) 연구 등이 함께 이뤄진다면 큰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임상 단계에서 좌절하게 되는 경우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Q독성학을 전공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원에서 함께 약학을 공부하던 동료들 사이에서 신약의 실패 이유가 자주 화제에 오르곤 했습니다. 대개는 유효한 물질의 검증부터 독성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전문가가 없던 독성 분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독성학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대학이 4곳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독성학 전문가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시민권자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던 미국 연방정부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회의·토론 거리낌 없어야”

김상현 단장이 근무한 NTP(National Toxicology Program, 미국 국가독성프로그램)은 FDA, NIH, CDC, EPA 등의 독성 및 신약 안전성 평가를 총괄하는 연방정부 산하 독립기관입니다. 이곳에서 발간하는 백서는 정부의 관련 정책 입안에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김 단장은 박사과정 중에 발표한 논문이 세계적 학술지인 ‘독성학 및 응용약리학회지’의 최다인용 논문상을 수상할 만큼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며 NTP의 영입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양국 관계 부처의 보증으로 2년간 면역독성 분야의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게 된 그는 과제기획, 예산확보, 연구자 선정, 성과관리, 추적평가부터 백서발간까지 국가 R&D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Q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 업무와 미국에서의 경험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실은 신임단장 면접 인터뷰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미국 외에 EU, 일본의 국제 자문위원회 경력도 많으니 궁금하셨던 것 같은데 제 대답은 “한국의 연구비 배분이 더 공정하다”는 것, 그리고 “연구재단의 지원 프로세스가 가장 선진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연구자 풀이 미국에 비해 작고 심사위원의 전문성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의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정성과 연구재단의 선진화된 시스템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비교우위에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배울 점도 있습니다. NTP에 근무하면서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게 엄청나게 많은 토론과 회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사전 기획 단계에서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게 결과적으로 낯선 분야에 대한 확실한 개념정립과 과제 선정을 둘러싼 잡음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연구재단에 와서도 힘닿는 대로 주변 단장님들, 연구현장의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최근 관심을 두고 계신 독성학 분야의 국제적인 이슈는 무엇인가요?

주요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나노독성’입니다. 요즘 나노신약, 융합신약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약물에 나노물질을 붙이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노화 시켜서 약물효능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간의 사용을 통해 안정성이 확보된 약물의 효능을 더 높일 수 있고, 효능이 높아진 만큼 환자의 약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약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성과 함께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노물질의 첨가 또는 나노화에 따른 예기치 못한 독성 발생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후보물질이 미국 FDA에 승인을 요청했는데 아직 사용이 허가된 사례가 없습니다. 나노의 미시세계는 우리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관련 신약의 독성과 안전성 검증 역시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는 세계 모든 나라가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해결 능력을 확보한다면 전 세계의 신약개발 생태계 질서를 재편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Q끝으로 신약개발 연구자들과 연구재단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경험하고 있는 연구재단의 과제선정 과정은 어느 나라보다 공정하고 신뢰할 만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 선배 단장님들과 재단 구성원들, 그리고 믿고 따라주신 연구자들이 함께 이룬 결과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자들은 연구자들대로, 재단 구성원들은 재단 구성원들대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 즉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제는 모두가 자신감을 가져도 될 때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부족한 부분은 계속 채워나가면 됩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역대 최연소 단장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만큼 제가 모르는 것을 묻거나 배우는 데 더 거리낌이 없기도 합니다. 단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통과 토론과 의견청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제게 편하게 말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About the interview

김상현 신약단장

우석대학교 약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독성약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보건복지부 국가독성프로그램 프로젝트 관리자, 한국연구재단 의약학단 전문위원, 식약처 위해평가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한약리학회 최초의 학술상 2회 수상자(2007, 2012)이며 첫 번째 수상은 조교수에게 학술상이 수여된 최초 사례로도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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