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탄생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합니다. 평균개발기간 12.5년, 평균투자비용 1조 7천억 원, 하지만 성공확률은 0.02%에 불과합니다. 1만 개 후보물질 중 단 한두 개만이 신약 개발의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은 천문학적인 편익과 파급효과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헬스를 미래 먹거리인 ‘빅(Big)3’ 중 하나로 선정해 신약 연구개발 현장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예고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김상현 한국연구재단 신약단장은 내년 시작되는 대형 과제들의 3가지 키워드로 ▲협업 ▲플랫폼 ▲표준화를 꼽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내년 국가 R&D 예산을 올해보다 12.3% 늘어난 27조 2천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살 길은 연구개발 뿐이라는 판단 아래 다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수립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약 4조 원이 국가신약개발과 감염병 대응 등 범정부 차원의 바이오·의료 연구개발 지원 체계 구축에 쓰이게 됩니다.
신약단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과제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수행 중인 사업(바이오의료 기술개발·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혁신신약 파이프라인 발굴·가속기기반 신약개발지원·신약분야 원천기술개발)들에 더해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두 개의 대형 과제가 곧 본격화됩니다. 하나는 국내 신약개발 기반과 생태계 구축, 임상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위해 내년부터 10년 간 2조 원 가량이 투입되는 ‘국가신약개발사업’입니다. 또 하나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등 미래의료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재생의료 분야를 전주기적으로 지원하는 ‘범부처 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입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확산예측부터 진단,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전주기적으로 아우르는 신·변종 감염병 대응 플랫폼 핵심기술 개발 사업도 내년부터 수행될 예정입니다.
대규모 사업을 앞두고 신약단이 특별히 관심을 쏟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전에 없이 큰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신약단 모두가 물샐 틈 없는 시행 절차와 내용 마련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연매출 1조 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급 국산 신약을 탄생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과제가 어떻게 기획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신약개발은 특히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먹거리인 까닭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고른 발전이 중요합니다. 한국이 잘해온 응용 분야는 더 발전시키고, 소외되거나 미진한 원천기술 분야는 양지로 끌어내는 조화와 균형의 대전제를 이루는데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신약단의 중장기적 전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신약단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술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연구자들이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보다 원천성이 있는 논문 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이렇게 창출한 국책사업의 연구성과를 최종적으로 사업화까지 이끌어가려면 어떤 연계방안이 효과적일까? 마지막으로 신약개발이 미래 먹거리라 표현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별적인 소규모 연구만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약개발은 화학, 생물학, 약학, 의학, 분석과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성공을 논할 수 있는 종합학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상당한 융합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게 할 것 입니다. 따라서 이런 신약개발의 오픈 이노베이션과 장기적 투자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가 큰 화두입니다. 여전히 많은 물음표가 남아 있는 질문들이지만 가장 근접한 답은 역시
‘철저한 기획과 결과검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