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포커스 人

“1% 오류 집착하다
교각살우는 안 돼”

한국연구재단 박종완 의약학단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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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세계는 새로운 노벨상 수상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자국의 기초연구 수준을 점검하기에 분주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를 때가 많습니다. 노벨상만큼이나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하는 국정감사 준비 때문입니다. 채 1%도 되지 않는 소수의 잘못과 실수로 99% 연구자들의 땀과 눈물까지 폄훼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박종완 의약학단장이 특히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이 지점입니다.

산소의 두 얼굴

올해 6월 부임한 박종완 의약학단장은 지난 30여 년 간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온 기초의학자입니다. 은퇴시기를 앞두고 호스피스와 상담심리 봉사, 몸을 움직이며 일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사까지 다양하게 제2의 인생을 모색하던 그는 학계의 천거와 더불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리를 맡게 됐습니다.

Q의약학단장 지원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전에 거쳐 가신 단장님들이 그간 공정의 원칙을 세우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워낙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과 남은일, 새로운 계획도 많아서 이렇게 큰 변화를 맞이할까라는 예상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마음을 고쳐먹게 됐습니다. 여태껏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하고 상을 받고 좋은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게 다 국가 연구개발 시스템 덕분인데 연구지원사업을 통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거죠. 비록 짧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간 축적해온 경험과 지식을 주변과 나눌 수 있어 은퇴를 앞둔 제게 더없이 값진 기회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Q웹진 독자들을 위해 단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를 소개해주세요.

제가 집중해온 연구는 인체의 산소항상성 기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산소는 생명유지의 필수요소이자 지구상의 생명체가 번성하게 된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과하거나 모자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산소의 과·부족을 감지할까 하는 게 관심사였습니다. 이런 산소항상성 유지 기능을 가지는 시스템을 산소감지체(oxygen sensing system)라고 합니다. 산소감지체의 규명은 호흡·순환장애 같은 저산소증 관련 질병의 예후를 판단하고, 특히 태생적으로 저산소증인 암과 관련성이 높아 암세포 억제와 치료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작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이 분야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Q단장님은 어떻게 산소항상성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1995년에 세계 최초로 HIF(hypoxia-inducible factor)라는 산소감지체가 발견됐습니다. 저산소 환경에서 단백질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인데요. 저는 다음해인 1996년 미국 하버드의대에 연수를 가면서 HIF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와 독자적인 연구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연구를 본격화하고 2년 만에 논문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제 미국의 동료 연구자들이 거꾸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지난해 생체 내 산소감지시스템 연구의 업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갈등이란 에너지 낭비

전 세계 산소감지체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박종완 단장은 지난 2003년 세계 최초로 HIF 억제를 통한 암세포 성장 제어 가능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암 조직의 산소감지체 억제에 관한 후속 연구들로 한국연구재단 우수성과(2010), 새울학연구정보센터가 선정하는 국내 바이오성과 TOP5(2011), 보건복지부 장관표창(2013), 아산의학상(2015) 등을 연거푸 수상하게 되는데요. 수억 원 규모의 상금을 모두 후학 양성을 위한 미래인재의학상 제정에 쏟아 부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Q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BK21+ 사업인 서울대 의생명과학사업단을 이끄신 바 있습니다. 이 기간 내내 매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단장님께서 생각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사업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사업을 들 것 같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던 국내 대학원의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이 사업을 계기로 대학원 교육의 질적 수준과 학생들의 역량 발휘가 크게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략일 수도 있으나,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지원신청 학교에서는 사업 선정에 도움이 될 만한 인력 중심으로 사업 신청 과정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업의 목표대로 대학원의 체질이 바뀌려면 교수진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탈락의 위험이 있어도 100% 모든 교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학사 개편 등에 더 역점을 뒀습니다. 모두를 다 참여시킨다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늘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참여와 배제가 나뉘면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갈등 에너지가 사라지니 오히려 각자의 역할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된 결과라고 믿고 있습니다.

Q부임하신 지 100일이 조금 지났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출퇴근을 반복하는 단순한 생활이지만 2년 간 나라에 봉사하는 군 복무 한 번 다시 한다 생각하고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점이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 중에 외출도 자제해야 해서 숙소에서는 주로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사이버대학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큰 매력을 느끼고 있어 요즘 관련 서적들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연구자의 생활도 재미있지만 은퇴 후에는 좀 새로운 일, 특히 육체적인 통증보다 마음을 위로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연구재단 직원들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업무량과 민원에 지친 직원들을 면담하고 조언도 해주곤 하는데 이를 상시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재단 여러 구성원들과도 의견을 나누는 중입니다.

Q의약학단이 추진 중인 사업에서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의약학단은 의학, 치의학, 한의학, 약학, 간호학 등의 연구를 포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목표는 전임자들이 구축해 놓으신 공정과 신뢰의 원칙을 더 정교하게 시스템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정밀의료, 유전자·세포치료, 빅데이터·AI의 활용 등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의약학 분야를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구상 중입니다. 문제는 국내에 관련 연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인데요. 이런 분야들은 연구지원 이전에 인력양성부터 시급한 만큼 국비 장학생과 해외 포닥 유치를 포함해 긴 호흡의 연구자 육성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와 함께 의과학 분야 전반에서 더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좋은 과학 먼저 생각하라

몇 해 전 방한한 보리예 요한슨 전 노벨상 심사위원장은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민들에게 이렇게 조언한 바 있습니다. “노벨상을 생각하지 말고 좋은 과학만 생각하라. 그렇게 매진하면 어느새 스톡홀름에 와 있을 것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는 그의 말은 연구비 지원·관리의 본질에 대한 박 단장의 고민과도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Q기초연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적어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과거보다 전공자를 구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유도나 간섭보다 기초의학을 선택한 학생들을 믿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외우고 익히고 활용하는 것보다, 아무도 모르던 것을 알아내고 남들에게 알리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이들이 마음 놓고 그들의 관심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연구지원과 관리의 방향성은 기성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Q끝으로 웹진을 통해 연구자와 재단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가와 사회 어디에나 에프학점 집단은 있기 마련입니다. 인위적으로 바로잡을 수 없는 파레토의 법칙 같은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기는 할지언정 그로 인해 시스템이 흔들리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소수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너무 집중하는 것이 자칫 나머지 대다수의 건실한 이들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관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연구비 부정 등을 막는 엄정한 관리감독과 단호한 신상필벌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1%의 잘못에 집착해 수시로 시스템을 바꾸다 보면 성실한 다수마저 본연의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좋은 과학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효율적인 연구지원과 관리 방안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About the interview

박종완 의약학단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서울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8년 미국 하버드의대 혈액종양학교실 연수 이후 산소항상성의 기전과 HIF 전사인자 연구에 천착해 왔다. 관련 연구와 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아산의학상, 화이자의학상, 가송의학상 등 다수의 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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