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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와 함께 ‘문학하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김성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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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와 함께 ‘문학하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김성택 교수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절절한 외침이다. 세차게 근대화 바람이 불었던 파리, 그 도시의 우울을 견디다 못해 어디론가 떠나고자 했으나 시인은 정작 자신의 방안에서 상상여행만을 다녔고, 그 결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시들이 탄생하였다.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던 우울의 가상 장기(臟器), 멜랑콜리의 언어들은 요즘 와서 더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익숙해진 칩거, 깊어가는 우울증

코로나 상황에 처한 우리는 시인 보들레르와 같은 처지다. 무엇인가를 상실한 듯 멍한 상태로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라고 외치며 컴퓨터나 휴대폰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전 세계가 국내외 여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 대부분 상상여행으로 자족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의 만남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억제할 수밖에 없다. 점차 칩거하는 데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그만큼 개개인의 우울증도 깊어가고 있다. 소위 ‘코로나 블루’라는 징후이다. 그런데 200년 전의 시인처럼 우울함이 창조적 생산을 하고는 있는 것일까?

“어머니 / 저는 당신 물속에서 / 가득 충전되어 / 이 세상에 나왔는데 / 이곳은 너무 건조하군요.” 이재훈 시인은 이렇게 인간의 우울한 숙명을 그려내고 있다. 처음부터 상실로 시작하는 실존적 상황은 우울함에서 벗어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뜸해져 가는 것도 본연의 우울증을 격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 ‘코로나 블루’는 이제 우리에게 상실의 공간을 대체물로 채워야 하는 임무를 준 것이다. 창조적 작업이 필요하니 상상력을 발휘하여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자.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염원으로 만들어낸 갈라테이아처럼 순수한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할 시간이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는 왜 사라졌나?

그런데 얼마 전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는 윤리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영역에 문제를 남기고 출시한지 3주 만에 사라져 버렸다. 이루다가 갈라테이아가 될 수는 없었다. 단지 개발자의 윤리의식과 사용자의 악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인류학자 르르와-구랑이 말했듯이 인간이 발명한 모든 도구는 인간의 몸과 뇌의 분비물이다. 챗봇인 ‘이루다’와 예술품인 갈라테이아는 모두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이루다는 우울함을 잠시 잊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에 반해 갈라테이아는 내면의 간절함을 승화시킨 작품이며, 따라서 신화에서 보듯이 마법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재탄생한다. 도구와 인격체는 챗봇 ‘이루다’에게서 드러난 것처럼 주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책임의 문제에서 달라진다.

챗봇 ‘이루다’는 우울을 소비하는 인공지능 기술이다. 대화할 친구를 대체하는 이 챗봇은 사람들의 우울이 지닌 에너지를 가상현실의 세계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소비하게 한다. 자기파괴적인 분노를 챗봇 ‘이루다’는 무비판적으로 학습하고 아무런 습기 없이 ‘건조하게’ 내뱉는다. 생산과 소비의 무한구조 속에서 인종차별과 여성비하의 말들이 ‘견딜 수 없이 가볍게’ 재생산되면서 자본과 과학기술이 결합된 괴물이 태어나는 것이다. 21세기의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우리와 닮은 괴물이고 ‘크리쳐’이다.

(이미지 출처 : ‘이루다’ 페이스북 페이지)

우울한 날들을 제대로 지나가려면

“내가 죽도록 훔쳐보고 싶은 건 바로 나예요 자기 표정은 자신에게 가장 은밀해요”. 김상혁 시인의 이 독백은 나의 정체를 “맑게 훔쳐보고” 싶어 하는 각성의 언어다. 미국의 인공지능 챗봇 ‘테이’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발언을 쏟아낸 것도 알면서 20대 여대생의 대화들을 훔쳐 립 서비스하게 만든 챗봇 ‘이루다’의 제작자들, 그들은 자신들의 ‘크리쳐’가 순식간에 인기를 누리자 서로 은밀히 나누었을 승리의 미소를 스스로 “맑게 훔쳐보고” 싶었을까? 그렇게 할 생각이나 했을까? 챗봇 ‘이루다’에게 자신의 가장 썩은 내 나는 가학적, 피학적 단어들을 배설하고 또 거기에 응수하는 건조한 답변에 자위하는 가련한 우울증 환자들은 그 순간 자신들의 넋 빠진 표정을 관조할 수 있었을까? 소비사회의 순환 고리는 고립과 고독을 해소하는 기계적인 대화상대 피조물을 생산하여 이 괴물이 우울마저 단순한 배설 행위로 소비하게 만드는 교묘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

바둑 천재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와 챗봇 ‘이루다’는 다르다. 게임에서는 오직 승리만이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는 오히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도 하다. 친구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정한 친구는 나에게 쓴 충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속에 뛰어든 챗봇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주체여야 하지만 우리는 그 챗봇에 책임 지울 수 없다. 우울한 날들을 제대로 지나가려면 아직은 시를 짓거나 시를 읽는 ‘문학하기’가 더 낫다. 챗봇에서 우울을 소비하는 우리를 “맑게 훔쳐보기” 위해 오랜만에 김명수 시인의 시 한 편 떠올려보자. “앵무새 부리 속에 혓바닥을 보았느냐? /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 /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 번 하고 싶은 / 분홍빛 조봇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

김성택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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