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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지(夷堅志)』를 통해 본
송대(宋代)인들의 질병 관리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최해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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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지(夷堅志)』를 통해 본
송대(宋代)인들의 질병 관리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최해별 교수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 속에서 질병을 관리하며 건강을 유지하였을까? 코로나19팬데믹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이 뒤흔들린 지금 질병 관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생활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상적인 질병 관리에 대해 역사 속의 경험에서 시사점을 찾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자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견지』는 중국 남송南宋(1127-1279) 시기 사대부인 홍매洪邁(1123∼1202)가 여러 지역에서 지방관으로 재직하며 보고 들은 일화를 수집하여 엮은 책이며, 그가 수집한 일화에는 보통사람들의 생활과 사유세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걸렸던 질병과 그 치료 과정 및 치료법에 대한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홍매가 『이견지』를 통해 다양한 질병 치료의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관련 의학 지식의 확산을 도모하고자 했음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견지』 의 관련 일화를 보면 대체로 임상 사례의 서사를 강조한다든가, 의서에는 없는 민간의 경험방을 전한다든가, 생활 속에서 우연히 얻게 된 치료법을 알린다든가 하는 등 임상 경험이나 일상 경험에서 온 지식이 가지는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 의서에서는 볼 수 없는 송대인들의 질병 치료 경험을 엿볼 수 있다.

의서를 넘어서는 임상 사례의 서사

건도乾道 원년(1165) 금위의 병사 성고盛皐는 극심한 가슴통증을 느꼈고 의사를 불러 진료했지만 모두 그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200 여 일이 지났을 때 의술이 뛰어난 외과의 유경낙劉經絡이 그를 진료하였고, 그는 성고의 병이 ‘폐옹肺癰(폐에 농양이 생긴 병증)’이라 하였다. 유경낙은 이를 뜸이나 탕제로 고칠 수 없음을 파악한 후 화침을 시료하기로 한다. 당시 화침 시료는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했던 치료 방법이다. 홍매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화침의 시술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그 치료효과가 매우 신통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는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의 ‘폐옹’을 설명한 부분을 인용하며 권위 있는 관방 의서에서도 폐옹은 치료가 힘들며 오직 화침의 방법이 있지만 병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시료를 못하여 결국 난치병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홍매는 유경낙의 화침 성공 사례를 자세히 전함으로써 폐옹의 치료에 화침이 좋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는 임상 사례의 서사를 통한 이해는 의서 등을 통해 ‘입이나 귀로 배워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강조함으로써 의서를 통한 의학 지식 전파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신앙과 결합된 민간 경험방

『이견지』에는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했다거나 기존 의서에 나오지 않은 처방이라고 명시한 치료법과 관련한 일화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경우 이 의학 지식은 민간의 치료 경험에서 얻게 된 경험방經驗方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방을 통한 치료 과정의 서사에는 어김없이 민간 신앙에 기댄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관음신이나 관우신 등이 꿈에 나타나 이 처방을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홍집洪輯의 어린 아들 홍불洪佛은 가래가 껴 숨이 찬 증상을 보였다. 주변의 의사들이 이를 치료하지 못했고 이 어린아이는 닷새 동안 밤낮으로 먹지를 못해 위독했는데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 말하길, “어찌 인삼호도방人參胡桃方을 쓰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하였다.

깨어나 그녀가 말한 대로 끓인 탕을 아이에게 먹이니 가래가 멈추었고 병이 곧 나았다. 이 일화는 남송 시기 의사 장고張杲의 『의설醫說』에 수록되며 이후 여러 의서에 수록되어 전승된다. 『의설』에 의하면 꿈에 등장한 ‘한 부인’은 관음이다. 홍매는 관음이 전해준 ‘인삼호도방’이 다른 방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인삼과 호도의 효능에 대한 부연 설명을 잊지 않았다. ‘인삼호도방’은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의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아닌 민간의 경험방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새로운 의방 지식의 획득 경로는 꿈을 통해 나타난 관음으로 서사되었다. 홍매는 이러한 경험방을 실어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 처방은 이후 『의설』 뿐만 아니라 명대 『명의유안名醫類案』이나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실려 전승되었다.

일상의 경험에서 우연히 얻게 된 치료법

『이견지』 의 일화를 보면 일상의 경험에서 우연히 얻게 된 치료 지식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식은 기존의 의서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며, 『이견지』를 통해 알려진 이후 후대 의서에 수록되면서 의학지식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자산趙子山이 천왕사天王寺에 잠시 머물 때 촌백충寸白蟲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의사들은 그저 이병은 술을 끊어야 한다고만 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던 그는 술을 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는데 목이 타서 급히 마실 것을 찾다가 마침 복도에 놓인 항아리에 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러 잔을 따라 마시고 잤다. 새벽이 되어 벌레들이 입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뱃속이 갑자기 맑아진 것 같았고 그렇게 오랜 병이 나았다. 이유를 알고 보니 이 절의 한 시종이 매일 짚신을 홍등紅藤 뿌리 물에 담가 두었는데 항아리의 물은 바로 그 물이었던 것이다. 조자산의 일상 경험에서 새로운 촌백충 치료법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일화는 남송 말 장고의 『의설』에 수록되었고, 또 이후 명대 『본초강목』에도 수록된다.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서 홍등에 살충 효과가 있음을 설명하면서 『이견지』의 이 일화를 인용하며 근거로 들었다. 남송 시기 생활 속 경험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지식이 명대에는 본초학 분야의 중요 의학 지식으로 정리되었던 것이다.

홍매가 『이견지』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확산시키고자 했던 의학 지식은 의서의 기록을 넘어서는 임상 사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의서에는 없는 민간의 경험방이나 민중들의 생활 속 경험에서 우연히 얻게 된 치료 지식을 포함했다. 전통적 혹은 관방의 권위를 넘어 민중들의 일상 경험에서 얻게 된 유용한 지식을 공유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 어찌 보면 홍매가 『이견지』를 통해 보여준 질병 관리의 또 하나의 대안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이 쉬이 끝나지 않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 질병 관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물어볼 일이다.

최해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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